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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부는 왜 도시락통까지 뜨게 되었는가?

모두에게 있는 시작점

by 야초툰


나는 매주 쫓긴다. 마감이란 녀석에게. 쓴 것도 없는데 쫓기다 보면 금세 땀으로 온몸이 축축해진다. 잠을 자면 떠오를까? 뒤척이길 한 세월, 커피를 마시면 기가 막힌 문장이 생각날까? 연거푸 마셔보지만 어정쩡한 생각들은 글감을 주어오긴커녕 남의 문장만 탐닉하게 된다. 그러다 어차피 잡힐 거라면 기왕이면 아주 멋지게 뒷목이나 내어주고 싶어진다. 불안과 초조 사이에서 시곗바늘은 춤을 추듯 똑딱거린다. 그때, 문뜩 내 눈앞에 불쌍한 먹잇감이 포착된다.


"여보! 이번엔 뭘 뜰 거야? 네가 떠야 내가 글을 쓰지?"

"아… 그러게."


그 말은 들은 남편은 내 앞을 지나가다 죄인처럼 고개를 조아린다. 좋아, 걸려들었어. 사실 쓸 주제는 넘쳐나는데, 네가 못 만들어서 글을 못 쓰고 있다며 보기 좋게 그를 타박한다. 그럼 이제 또 남편이 쫓기기 시작한다. 이번 주 토요일까지 만들어야 한다며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한다. 쫓고 쫓기는 인생. 요즘 우리 부부의 일상이다. 매주가 그냥 쌩 라이브다. 나름 스릴도 있다. 지나간 시간을 붙잡을 수 없어서.


나는 일단 남편에게 그동안 모은 소재들을 던진다. 요즘 유행하는 안경 넣는 바구니로 할까? 아님 다시 가방을 만들까? 그 뭐시냐, 지디 스카프가 요즘 유행이라던데. 정신없이 레퍼런스를 쏟아내는 나에게 갑자기 남편이 먼 산을 바라보며 이런 말을 한다.


"그래, 내가 다 너를 위해 만들어줄 수 있지. 하지만 우리야, 생각해 보면 너무 신기하지 않아? 우리가 함께 무언가를 하고 있다니 말이야."


노을이 지는 해 질 녘이라서 그런지 남편의 감정은 순식간에 그의 눈을 물빛으로 번지게 만들었다. 아니, 시간도 없는데 난 네놈의 감상을 들을 시간은 없다며, 나는 단칼에 그의 눈에 뿌리까지 도려낸다.

"뭐가 신기해? 다 할 때가 되니까 한 거지. 나는 이게 조금 더 나은 거 같은데 말이야.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 "


넌 잘하고 있어. 엄청난데?라는 대답을 기다리다가 구겨진 아내의 표정에 그만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만다.


"무심해. 감정 없는 로봇 같은 마누라!"

"훗"

그가 나에게 날린 솜털 같이 가벼운 펀치가 우스워 다시 물었다. "뭐라고? 다시 말해봐 " 남편은 황급히 주제를 돌렸다.


"사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함께 하기 시작한 건 미싱스타부터였어. 네가 나를 감옥에 가두 듯, 강제로 문화센터에 다니게 했잖아. 너 설마 그때부터 내가 뜨개질을 하게 될 거라고 예상한 거야?"

인정하지 않으면 끝이 나지 않으리, 예감하고 눈을 감았다.


"그래 맞아, 다 예상한 일이지."


거짓말이었다. 예상은커녕 미싱이라도 제대로 끝내길 빌고 또 빌었다. 양은 냄비 같은 남편의 성격이 달궈질까 봐 노심초사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미싱이 생각보다 남편의 적성에 잘 맞았다. 자신의 성격은 삐뚤어졌지만 선이 삐뚤어지면 못 참는 겉과 속이 다른 성격과 무엇이든 잘한다고 말하면 춤이라도 출, 얕은 타인에 대한 경계심까지. 그에게 찰떡이었다.


그래서 이왕 하는 거 공식적인 곳에 기록해야겠다.라는 생각에 브런치에서 '키가 주니는 미싱스타'라는 소재로 연재를 시작했다. 성격 급한 아내와 그녀를 따라가기 바쁜 남편의 대환장 파티. 급하게 그리게 된 만화라 선은 다소 엉성했지만, 남편을 괴롭히며 작품을 뽑아내는 거라 나는 매일 스릴이 넘쳤다.


그래서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웃음부터 나온다. 나름 그렇게 재밌는 연재를 했고, 브런치 북에 남겨진 추억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제 막 브런치를 시작한 후배에게 문자가 왔다.


"언니, 키가 주니는 미싱스타 뭐야? 너무 재밌다. 미싱 스타 3은 언제 그릴 거야?"


그 문자가 잔잔한 마음에 너울을 만들었다. 그래? 그렇다 이거지. 나에게 생긴 신규 구독자의 의견을 놓칠 수 없었다. 미싱과 비슷한 게 무엇이 있을까? 생각했다.


남편을 컴퓨터 게임과 떼어놓으면서 집중할 수 있는 그런. 그때 엄마가 떠올랐다. 뜨개질의 선수지만, 도안이 아닌 느낌으로 뜨는 엄마. 그리고 선 긋기 줄 긋기가 선수인 남편. 이번엔 그 둘을 마에스트로처럼 지휘하고 싶어졌다. 그게 덕분에 뜨지요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남편을 지휘하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강하게 지휘봉을 휘들 수록 남편은 움츠려 들고, 부드럽게 토닥여주면 세월아 내월아 기다려야 한다. 성격 급한 나에게 기다림은 갓 나온 빵의 냄새를 맡아버린 빵순이와 같달까?


강약을 잘 조절하면서 휘둘러야 제 때에 작품이 나왔다. 오늘도 벌써 수요일, 내 연재는 토요일. 한시가 급하지만, 오늘도 내가 갖고 있는 모든 인내심을 끌어모아 남편에게 말한다.

"승준아, 너 그거 알아? 스티븐 잡스 님께서 말했지. 우리의 인생은 수많은 점을 찍다가 어느 순간 그 점이 모여 선이 되는 과정이라고. 어쩌면 너도 너의 인생에 중요한 선을 긋고 있는 중 일수도 있지 않을까?"

"맞아, 그런 것 같아. "

귀가 참 얇은 남편. 나는 속으로 웃었다. 문제는 그 선을 네가 그리는 게 아니라 내가 그리고 있다는 점이 중요한 건데 말이야.


남편은 내가 말한 말의 속뜻을 모른 채. 자신이 점을 찍고 있다는 말을 대뇌이며, 그제서야, 내가 그에게 건넨 레퍼런스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보통 뜨개인이 뜨개질을 하면 4단계의 과정을 거친다고 말한다.


1단계- 배우는 단계

2단계- 처음 배우기 때문에 신기하고 재미있는 단계

3단계- 배우긴 배웠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고, 3시간 이상을 떴는데 생각한 작품이 나오지 않아 힘든 단계

4단계- 어느 정도 배워서 이제 작품도 만들고 응용도 할 수 있어서 뿌듯한 단계


나는 연재를 하면서 두 달 동안 이 모든 단계를 남편과 같이 건넜다. 시시각각 변하는 남편의 감정을 주춧돌 삼아 한 걸음 한 걸음 건너왔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 생각보다 뜨개질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고, 2025년에는 뜨개질이 다시 유행할 거라는 영상을 자주 접하게 되었다. 그 속에서 나온 공통적인 이야기가 있었는데 "나 그거 떠줘, 그거 나 줘. 뭐 하러 뜨개질하고 있니 그냥 하나 사라."와 같은 말들을 싫어한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뜨개질은 남에게 선물할 수도 있지만 오로지 자신을 위한 선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나왔다. 실험해 보고 싶었다. 남편도 이제 뜨개인이니까. 나는 남편에게 물었다.

"나 그냥, 거기에 있는 안경 담는 바구니 만들어줘."

"그래."

"아니다. 언년이 언니한테 준 아! 주머니 나도 떠줘."

"그래."

"이걸 뜨개질로 언제 만들어 그냥 사줘."

"그럴까?"

어떤 말을 던져도 남편에게는 타격이 1도 없었다. 그래서 따져 물었다.

"너는 내가 떠서 달라는데 기분 안 나빠?"

"왜 나빠? 다 너에게 주려고 뜨는 건데."


생각해 보니, 남편은 자신을 위해 하는 뜨개질이 아니었다. 나를 위해 뜨는 뜨개질이었다. 하지만 이건 진정한 뜨개인의 자세가 아니잖아. 나는 이번엔 다른 걸 떠보라고 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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