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버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북커버
배가 불러야 문을 닫는 식당이 있다. 물론 메뉴도 양도 주인 마음대로. 자리에 앉는 순간 끊임없이 나오는 음식의 향연. 음식의 등장과 동시에 같은 말이 계속 들려온다.
"많이 먹어라. 차린게 별로 없지만."
도대체 제대로 차리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무서운 상상을 하게 만드는 대사. 그리고 다 먹고 자리에 일어나려고 하는 순간에도 원치 않은 반찬들이 쉴 새 없이 숟가락 위로 올라온다. 앉을 때는 마음대로 앉았지만 일어날 때는 마음대로 일어설 수 없다는 듯이.
손으로 찢은 김치, 한 알이라고 우기는 듯한 콩자반 부대, 실타래처럼 뭉쳐 있는 고사리 무침. 집에 가면 절대 쳐다보지도 않을 반찬들이 엄마를 뒤에 업고, 내 숟가락에 올라온다.
'네 녀석들이 감히, 썩 내 숟가락에서 사라지지 못할까?'
숟가락을 휘휘 흔들며, 엄포를 놓아보지만. 대화를 하다 보면 어느새 내 밥그릇 위에 가지런히 올려져 있다. 숟가락이 안되면 밥그릇이라도 침투하는 반찬들로 인해 결국 일어설 수 가 없게 되고 모두의 배가 부른 후에나 엄마의 식당은 문을 닫는다.
남편도 처음엔 식당의 운영시간에 많이 놀랐다. 하지만 이젠 그의 최애 식당이 되었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 때문에 다른 사람이 부족하게 먹게 되진 않을까?라는 마음에 천천히 먹다 남은 음식만 먹었는데, 장모님의 식당에 온 뒤로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먹는 것에 돈을 아끼면 안 된다는 엄마의 철학이 항상 배가 고팠다는 절절한 사위의 사연에 새로운 화학적 반응을 일으킨 것이다.
가뜩이나 많은 음식에 양까지 더 추가되다니. 식당은 밤새 문을 닫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뜨개질하면서 궁금한 점이 있어 찾아갔는데, 정작 수업은 어둠이 내려앉은 밤 11시에 시작할 수 있었다. 배가 불러야 문을 닫는 식당 때문에.
오늘도 영업을 무사히 마친 엄마는 손님을 어두침침한 지하로 끌고 갔다. 계단 끝에 다다르자, 불빛이 새어 나오는 문 하나가 보였다. 엄마의 방이다. 문을 열자 여러 가지 운동기구가 테트리스처럼 쌓여있었다. 트램펄린부터 제기차기, 안마봉. 맨손체조로 할 수 있는 모든 기구가 그곳에 놓여 있었다. 흡사 이곳은 체육관이고, 그 옆에 딸린 침대는 잠시 머물러 있는 곳처럼 느껴졌다. 마른 사람들이 더 한다더니.
"흥, 말라깽이들은 마른데 다 이유가 있구먼."
나는 침대 위에 굴러서 누웠다. 엄마는 그런 나를 한심하게 쳐다본 뒤 남편과 실타래 묶음을 들고 내 앞에 앉았다. 나는 관찰자의 신분으로 기술자들의 대화를 엿듣기 위해 그들의 뒤에 바짝 붙었다. 엄마는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아 빠르게 노란 실을 검지에 휘감고는 남편에게 물었다.
"그려. 그러니까 뭐가 어렵다고?"
고수의 느낌이었다. 옆에 두었던 흰 돋보기를 쓰니 눈에서 빛이 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엄마는 쓰윽 남편의 손을 쳐다봤다.
"어머니, 코를 보는 게 어려워요. 바늘을 어디다가 꽂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잘 봐봐, 코를 이렇게 잡아당겨봐. 그럼 구멍이 보이지 여기다가 꽂으면 돼."
엄마는 뜨개질을 하면서 늘리기도 하고 뒤집어 보여주기도 했다. ‘어머니, 그러다가 코가 늘어놔요’ 남편이 소리쳤지만, 엄마는 그럼 이렇게 당기면 된다며 자연스럽게 수업을 이어갔다.
생각해 보니, 남편은 코바늘을 할 때 행여 코가 늘어날까 봐 신줏단지 모시듯이 하곤 했다. 하지만 엄마는 마법사처럼 이까짓 것 잘못하면 풀면 다시 하면 된다며, 수업을 이어갔다. 남편은 그런 엄마가 멋지다 하며 엄지를 올렸고 엄마는 맨날 혼자 하는 건데 하며 멋쩍어했다. 생각해 보면, 엄마는 모두가 잠든 밤에서야 뜨개질을 들었다. 아무도 엄마가 뜨개질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고, 엄마도 보여주지 못했던 것이다.
이제 그 시간들을 모아 남편에게 전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선물은 보통 가게에서 돈을 주고 사지만 뜨개질은 뜨는 사람의 시간을 선물해 주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 사실은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은 엄마에게 수만 가지 질문을 쏟아냈다.
"장모님, 수세미 실은 코가 안 보이는데 어떻게 떠요?"
"그냥 그건 안 보이니까 손의 감각으로 뜨는 거야. 이렇게 만져봐."
"그러다가 코를 빼먹으면요?"
"그냥 대충 넘어가. 수세미 실처럼 코가 안 보이는 것들은 코 빼먹어도 티가 하나도 안나거든."
"하지만 그래도."
"아무도 몰라. 아들도 뜨다 보면 어디에 코 빠졌는지 모를걸? 그럼 된겨."
뜨개질에서 코를 빼먹어도 된다고 말하는 선생이라니. 아무래도 엄마는 혼자서 하던 뜨개질 시간을 온전히 남편에게 선물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는 사실을 알려줘야겠다. 나는 그들 뒤에서 말했다.
"내가 알지! 공장장이. 그렇게 하면 일당은 없어요."
"주지도 않을 거면서."
그 대답에 세명 모두 까르르 웃었다. 배가 부른 데다가 밤에 하는 뜨개질은 웃음의 경계선은 낮게, 인내심은 더 높게 만들었다. 우리가 함께 뜨는 이 시간도 모아 누군가에게는 선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시간을 선물하다니.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뜨개질이라는 취미가 멋있게 느껴졌다.
Due by ( 두바이)
배가 고팠어요
한참을
전화하고 싶었어요
수백 번을
쉼 없이 무너져도
눈물이 나를 쓸고 가도
나는 웃어요
잘 지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