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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잊은 그대가 하는 뜨개질

두바이에서 생긴 일

by 야초툰

시작은 분명 게임 대신 선택한 뜨개질이었다. 남편이 가상현실보단 현실세계에 머무르는 게 더 나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뜨개질도 일단 시작하긴 어렵지, 시작하고 나면 점점 뜨개질의 마력에 빠져들게 된다는 걸 보고 말았다. 그것도 바로 내 눈앞에서.


그렇다. 남편은 ‘뜨친자’가 되었다. 분명 한 시간만 하겠다고 말했는데, 하다 보면 끝을 보고 싶어 붙잡고 있게 된다던가. 나는 A를 남편에게 의뢰했는데, 남편은 A+알파를 생각한다든지. 그리고 밤새 자기가 무엇을 만들지에 대해 생각하다 밤을 새우곤 했다.


집안의 모든 물건에 그의 뜨개질 작품으로 탈바꿈이 되었다. 이것이 진정한 뜨친자의 세계였다.


뜨친자인 그는 한 가지 작품을 시작하면, 남편은 멈출 수 없었고, 그래서 우리는 매일 같은 장면을 연출하게 되었다. 나는 남편에게 빨리 가서 자라고 잔소리하고, 남편은 여기까지만 하고 잔다며 새벽까지 뜨개질을 하는 장면.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승준이가 매일 뜨개질에 빠져서 잠도 안 자서 미치겠다고 하소연을 했더니, 보이지 않아서 모를 뿐, 엄마도 별반 다르지 않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우리는 해결방안을 찾아야 했다. 공장장인 나로서는 두 공장이 과로로 문 닫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졌다. 코드 블루였다. 나는 응급외상센터 백강혁이다. 떠올려야 해! 그나마 실낱 같이 떠오르는 아이디어 사이에서 그들을 살릴 수 있을 것 같은 아이디어를 핀셋으로 간신히 끄집어내었다.


이른바 ‘작업 공유제 도입’이었다.


엄마와 남편은 시작할 때 서로 사진을 보내고, 끝났을 때 서로 끝이라고 결과를 공유하고 다시 뜨지 않기로 약속했다. 사진으로 각자의 작업을 공유해서 좋고, 공장장인 나는 기술자들에게 어디까지 되었는지 독촉하지 않아도 되었다.

또 뜻밖에 수확도 있었다. 기술자들이 작품을 서로 공유하다 보니 뜻밖에 경쟁이 붙어 작품이 끝나자마자 새로운 작업을 바로 시작하기도 했다. 나 역시 나름 뜨는 과정을 보니 어떤 게 나오게 될까 상상하는 재미까지 더해졌다.

이것이 바로 내가 바라던 모습이었다. 덕분에 뜨지요를 기획하면서 내가 상상했던 모습이었다.



불면증


너는 코를 골고

나는 눈을 뜨고


너는 꿈을 꾸고

나는 미모를 잃고



남편이 새벽 근무를 할 때면 나는 선잠을 잔다. 혹시 남편이 알람을 못 듣고 일어나지 못할까 봐 라는 불안이 나의 깊은 잠을 방해한다. 일종의 PTSD였다. 특히 겨울이 되면 예민 지수는 급격히 치솟는다.


남편은 겨울이 되면 더 잠귀가 어두워지기 때문에.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 알람이 울리고 남편이 기척이 없으면 나는 불안함에 눈을 뜬다. 떨리는 목소리로 남편의 이름을 부른다.


"승준아, 자니?"

"이제 그만 좀 해라. 벌써 옛날일이다."


남편은 투덜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는 그런 남편에게 소리친다. ‘어떻게 잊냐? 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너의 이름을 불렀는데 네가 뭐 됐다며 소리를 지르며 일어난 적이 두 번이나 있었는데.’ 나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각이라니. 잔혹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결혼 초에는 잠귀가 어두운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알람이 그렇게 울리는데 잘 수가 있는 것일까? 그렇다고 일찍 자라고 하면 또 잔소리한다며 투덜거렸다. 내 꿈은 현모양처였는데, 남편은 점점 나를 포악한 악처로 만들었다.


"나. 내일 못 일어나면 어떻게? 혹시 여보 너도 알람 맞춰줄 수 있어?"

“안돼!”

나는 그의 제안을 단칼에 잘라버렸다. 일어나는 것도 회사 생활의 일부라고 그를 꾸짖었고, 남편은 알람 하나 정도는 맞춰줄 수 있지 않냐고 서운해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알람이 울려서 깬 나는 다시 잠들 수 없었기 때문에.


일종의 트라우마였다. 두바이에서 나도 모르게 생겨버린.

알람이 울린다.
나는 무조건 일어나야 한다.


새벽부터 출근해야 하는 날이 많았던 호텔 두바이. 나는 매일 밤, 두려움에 떨며 알람을 맞췄다. 내일 내가 못 일어나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보다 늦는다는 변명을 매니저에게 영어로 설명해야 한다는 게 더 악몽이었다.


그래서 늦잠을 잘 수가 없었다. 점점 습관처럼 내 몸에 스며들었다. 남편은 알람을 듣고 일어나는 나를 보고 로봇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알지 못했다. 사람이 로봇처럼 되기 위해 얼마나 자신의 뇌신경을 예민하게 깎아야 하는지, 나를 대신해 출근해 줄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사실이 사람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드는 지를 말이다.


나에게 두바이에서의 기억은 번지 점프와 같았다. 출발할 때는 새로운 도전과 희망에 휩싸여 뛰어내렸지만 막상 마주하는 건 끝없는 추락과 약간의 반동뿐인 생활. 나를 묶고 있는 줄에 의지한 추락의 반복. 자존심을 붙잡은 채 떨어지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