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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나를 위해 만드는 아! 주머니

당신의 비밀 주머니

by 야초툰


<오직 나를 위한 아! 주머니>


언제부턴가 나에겐 남편의 행동을 읽는 초능력이 생겼다. 일종의 남편 전용 독심술이랄까? 그의 모든 행동은 예측가능한 범위 내에 있었다.


심지어 이런 적도 있었다. 남편이 퇴근길에 전화해서 웃음 띈 목소리로 '그러니까.ㅎㅎㅎ'라고 말을 시작했다. 나는 대뜸 '나 안 해!라고 소리쳤다.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지 머릿속에 문장이 그려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밖에 한 말이 없는데, 화가 난 내 목소리에 놀란 남편이 물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줄 알고?"

"'그러니까 지금 가니까 밥 해!'라고 말하려고 했잖아."

"어. 어떻게 알았어?"

"너는 항상 뭐 시키려고 할 때 끝에 웃더라고, 지금 시간에 네가 나한테 시킬 건 밥 밖에 없잖아!"


남편은 '맞네'라고 한참 깔깔깔 웃었다. 그는 이런 내 초능력이 불편해 보이지 않았다. 사실 초능력이라기 보단, 그가 유리처럼 투명한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에게만 보이는 투명한 유리.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얼굴 마주 보고 살다 보면 내 얼굴 보단 그의 얼굴이 보는 날이 많았으니까.


화가 날 땐 광대부터 빨개진다거나, 놀리기 전에는 히히히라는 이상한 웃음소리를 낸다. 혼자 심심할 때는 잠귀가 예민한 내 옆에서 괜히 왔다 갔다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제 습관이 되었다. 그의 행동을 읽는 것이. 식당에서 밥을 다 먹고 일어나다가도 습관적으로 그의 행동을 읽는다.


'저 녀석, 분명 다 먹었다고 하지만, 나갈 때 여기 하나 남은 크로켓 아까워서 '아이고 하나 남았네.' 하며 입에다 넣고 나갈 거야.'


그럼 역시 그는 예외 없이 크로켓을 입에 넣는다. 내 예지력은 100%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그에게 나는 전혀 어디로 튈지 예측할 수 없는 청개구리였다. 최근까지도 그에겐 나는 매일의 연속이다. 얼마 전에 일이다. 남편은 나를 감동시킬 목적으로 주머니에서 핫팩을 데우고 있었다. 적절한 시기에 맞춰서 내 손을 쓰윽하고 잡아끌어서 그의 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나에게 '넌 감동이야'라는 말을 기대했다. 하지만 그에게 날아오는 건 '너만 추운데 따땃하게 오셨써요?' 비난이었다. 또 어떤 날은 갑자기 머리하고 오겠다고 미용실에 가더니, 대뜸 전화해서 카드를 안 가져왔으니 결제하러 오라고 전화를 하지 않나. 계획형인 그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평생 이 여자와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절망할 법도 했다. 아니면 예측할 수 없이 날뛰는 청개구리에게 돌을 던질 만도 했건만, 그는 짱돌 대신 작은 주머니를 들기 시작했다. 아내가 만드는 빈틈을 메꾸기 위해. 그는 외출할 때마다 주머니를 챙기는 습관이 생겼다. 예측할 수 없는 청개구리를 위한 물건들을 그 안에 담는다. 심지어 그의 주머니 속에는 우연히 만난 팬에게 내가 사인을 해 줄 수 있게 펜과 종이까지 있다. 그래서였을까? 남편은 처음 능숙하게 뜨개질을 하게 되었을 때, 엄마에게 제일 먼저 손가방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해 보면, 엄마는 뜨개질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마음의 선물이라고 말 한적 있었다. 추운 겨울 따뜻하게 보내라는 소망과 그래도 누군가가 자신을 생각하고 있다는 따뜻함이 담긴 응원이라고.

남편도 뜨개질로 나에게 그럼 응원을 보내고 싶었던 건 아닐까?

아직은 미확인 생물체인 너지만, 난 항상 너의 글을 응원하고 있다고. 다른 변수는 자신이 챙길 테니 너는 따뜻함이 담긴 글을 쓰라고 말이다.


외출을 할 때마다 큰 키에 작은 가방을 든 남편이 귀엽기도 하다. 어쩌면 내가 가진 독심술보다 아내를 위해 심술 가득한 표정으로 이거 챙겨야지 나를 따라오는 남편이 더 멋있게 느껴졌다.


엄마가 만든 주머니


<유리 같은 남자>


마음까지 투명한 너

내 손 닿으면 파르르 금이 가는데도

넌 여전히 나를 비추는구나



<남편 몰래 숨겨 두었던 비밀 주머니>


세상에 제일 재밌는 건 남의 싸움 구경이고,
한 번 열면 닫을 수 없는 게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일이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2024년 12월 10일


난 빛이 있는 곳보다 어둠에 더 익숙하다. 라식 수술 후유증이 원인이었다. 야맹증. 어둠 속에서도 빛 번짐 현상 때문에 쉽사리 불을 킬 수 없었다. 그래서 어둠이 익숙해져 버렸다. 새벽에 잠이 깬 날은 익숙하게 손 끝의 감각으로만 화장실을 찾곤 했다. 그런데 그날은 유독 화장실 반대편 방문에서 빠져나오는 실낱같은 빛이 내 눈을 찔렀다.


보이지 않아도 선명하게 그려지는 그림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숨소리도 삼킨 채, 조용히 빛이 새어 나오는 방문의 문을 열었다. 역시나 남편은 나에게 들킬까 봐 컴컴한 방에서 불을 켜지 못하는 컴퓨터 모니터의 빛만을 의지한 채 게임을 하고 있었다. 불쌍한 생명체. 그는 앞으로 다가올 자신의 캄캄한 미래를 예상하지 못 한채 어둠 속에 모니터만 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남편에게 상냥한 인사를 건넸다.


"안녕? 나야..."

"엄마야! 뭐야? 놀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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