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좀 가져줘. 나한테.
<내가 빌런이 된 이유>
"이 아이는 주의가 산만하니.
부모님의 많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어릴 때, 내가 받아온 가정통신문에 항상 나오는 문장이었다. 신기한 건, 남편도 그랬다고 한다. 그런 사람 둘이 만나 결혼했다? 결과는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뜻밖에 그 둘은 아직도 잘 살고 있다.
왜일까? 그건 아마도 세모와 세모가 만나 부딪힐 것으로 생각했지만 세모와 뒤집힌 세모가 만나 네모가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그게 무슨 말인가 하면 남편과 나는 서로 다른 이유로 산만했다.
먼저 남편은 복잡하게 얽혀있는 정신 회로가 주의를 산만하게 만들었다.
생각의 흐름대로 행동하는 사람. 그게 바로 남편이었다. 예를 들면, 만약 남편이 나에게 산책하러 가자고 말한다고 치면 적어도 나는 밖에서 15분은 기다려야 한다. 나가자고 한 남편이 나오지 않아서. 한참 뒤에 나온 남편에게 왜 이렇게 늦었어? 따져 묻는다면, 돌아오는 남편의 답은 아마도.
“갑자기 설거지할 그릇이 보여서 설거지하다가 갑자기 쌓인 세탁물이 떠올라 세탁기를 돌리고 나니 배가 고파서 오늘 저녁을 뭘 먹을지 생각하다가 내가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서 나왔지." 라고, 말할 것이다. 그의 행동은 매번 이런 식이었다.
멈추지 못한 채 미친 듯이 달리고 있는 정신 그 자체.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 샛길로 세거나 너무 많은 선택지가 있으면 선택하지 못한 채 포기하고 만다. 또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잊어버린다. 그랬다. 남편은 성인 ADHD였다.
그런 남편을 보고 있으면, 하루 종일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소용돌이와 같았다. 그 모습을 볼 수밖에 없는 나로선, 언젠간 나도 휩쓸려 가지 않을까 싶었지만, 나는 그 속에서도 평온했다. 나는 익숙하니까. 나야말로 정리를 못 해 혼돈 속에 사는 여자. 주변을 치우지 못해 주의가 산만한 사람이었다.
남편은 처음 접하는 나의 이상 행동을 마주했을 때, 학창 시절 내 가방 검사를 하던 선생님과 같은 표정을 짓곤 했다. '뭐 이런 애가 다 있지?' 만약 결혼 상대로 이런 여자를 피하고 싶다면 그녀의 가방이나 컴퓨터를 열어보라. 아마도 난잡하게 어지럽혀 있는 것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남편 역시 여러 차례 목격했고, 좌절했다. 미리 이상 증후를 파악하지 못한 자신에게. 신혼 초에는 이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는지 나에게 메시지도 남겼었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은 절대 이 혼돈의 여자를 바꿀 수 없다는 걸. 어느새 결혼 10년 차, 이런 생활이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나는 어지르고 남편이 정리하고, 남편이 다른 길로 새면 내가 거기가 아니라며 다시 끌고 오고. 그게 분명 나와 그의 역할이었는데, 뜨개질하고 나서 남편의 모습이 조금 달라졌다.
내가 예상한 그의 모습은 처음에 좋다고 하다가 금세 하기 싫다고 투정 부리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뜨개질할 때면 어떠한 불만도 없다. 십 분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는 남편인데, 시간이 한 참 지나도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 앉아 뜨개질하고 있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변한다는데 어쩌면?이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의 변화였다. 나는 너무 신기해서 어느 날 그에게 물었다.
"요즘 왜 이렇게 열심히 해?"
"재밌어."
"뭐가?"
"주인공이 되는 게."
그랬다. 남편은 정신없이 돌아다녀야 했던 조연에서, 한자리에 묵묵히 서 대사만 읊으면 되는 주인공이 되어가는 기분이라고 했다. 나는 ‘아, 그럼 백마 탄 왕자님이신가요?’라고 나는 너스레를 떨었지만, 그는 나의 이런 비아냥에도 환하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런 남편의 얼굴을 보니, 저러다 또 말진 않을 것으로 보였다.
이번 연재는 문제가 없겠다는 생각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남편이 혹여나 하다 그만둘까 봐, 혼자 뜨개질 독학하고 있었는데 적성에 맞진 않았다. 혼돈의 여자라서 그런가 가지런히 떠야 하는 사슬 뜨기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그래서 괜히 남편 옆에 앉았다. 그가 휘감고 있는 것을 보았다. 오래전 사라진 내 머리끈들이었다. 머리끈에 빨간 실을 감아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이번에 무엇을 만드는 것일까?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지금 만들고 있는 게 뭐야?"
"아! 오랜만에 마누라 가방 정리를 했는데, 아휴 말도 마라. 머리끈 다발이 엉켜 있더라고. 그래서 정리도 할 겸. 찾기 쉽게 머리끈을 곱창 밴드 만들라고. 네가 하면 예쁠 것 같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