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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메, 오늘도 우리 모두 수고 많았스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사진 한 장

by 야초툰

"이번엔 이걸로 해보갔쓰, 딸내미“

내가 보낸 여러 가지 사진 중에 엄마는 마음에 든다며 한 장의 사진을 선택했다. 오랜만에 듣는 엄마의 단호한 결심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엄마가 선택한 건 평소에 들지 않은 검은색 가방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웬 검은색 가방?"

"딸이 프라다 가방을 안 사주니, 직접 만들어야지 뭐."


엄마는 웃으면서 딸에게 살을 날렸다. 나는 가난한 사장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다급하게 화제를 '잘했구먼 잘했어'로 전환했다. 그래도 명색이 사장이라도 가방을 뜬다는데 실을 사야 했다. 나는 인터넷에서 급하게 검은색 가방의 재료가 될 루피실을 찾았다.


**루피 실(Luffy Thread)**은 종이로 만들어진 특수한 실로, 일반적인 섬유 실과는 다르게 가볍고 환경 친화적인 특성을 가진다. 이 실은 주로 친환경 섬유, 공예, 패션, 포장재 등에 활용되며, 종이의 질감을 유지하면서도 높은 내구성을 갖도록 가공된다.


루피 실로 그 가방을 만들려면 적어도 40g *3개의 실이 필요했다. 장바구니에 넣으니 배송비까지 해서 3만 원 가까이 되었다. 평소 실을 다 다 있소에서 사다 보니 3만 원이라는 가격대가 다소 비싸게 느껴졌다. 하지만 명품 가방과 비교했을 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실을 구매하고 엄마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기술자 어머님, 이번엔 비싼 실을 보내드렸어요. 아껴 써 주세요."


백수인 딸의 비상금이라는 말까지 굳이 메시지에 구깃하게 넣어가며, 그녀의 빠른 완성을 희망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엄마는 진행 사항에 대한 보고가 없었다.

"어머님, 혹시 잘 되고 있으신가요?"

"...."

"왜 문제가 있으실까요?"

"한 개두 안 보인당께~“

"뭐가요?"

"에잇, 검은 실로는 더는 못하겠다."


생각지도 못한 이유였다. 엄마는 낮에는 하루 종일 뛰어다니느라 바쁘고, 저녁이 되어서야 뜨개질을 할 수 있었는데, 밤에는 검은 실이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또 종이 실이라서 그런지 실이 잘 찢어진다는 하소연이 이어졌다.


엄마의 목소리에서 뜨고 싶은데 뜨지 못하는 분노가 느껴졌다. 뜨개인들은 분노한다. 생각처럼 뜨개질이 잘 안 될 때. 일단 작전 상 후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천천히 떠 주세요 라는 메시지에 아쉬움을 담아 보냈다. 그런데 며칠 후 엄마가 뜻밖에 영상을 보내왔다.

영상의 제목에는 <둘째 딸을 위한 아빠의 마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영상에 이어 엄마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딸내미, 글 쓰는데 보탬되라고 엄마가 뜨개질하는 거 보고, 헝클어진 실 풀어서 다시 감아주는 아빠여. 어뗘? 오직 둘째 딸을 위한 마음이겠지요?"

"에이~그게 왜 나를 위해서야. 다 엄마를 위해서 그런 거겠지."


아빠의 응원이 어색하다. 잘하고 있어라는 말보단, 밥 먹자라는 그가 건내는 말이 더 익숙했으니까. 아빠는 그랬다. 말보다는 행동으로 모든 걸 표현했다. 어렸을 때는 그의 마음을 읽지 못해 속상한 적도 있었다. 관심의 표현이 오히려 나에게 짓궂은 괴롭힘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아빠를 이해하고 싶어졌다.

"아빠는 왜 나를 위해
저 긴 실타래를 풀고 다시 감아주셨을까?"

<아빠, 전 떡볶이를 싫어해요.>


친정에 오면 남편은 엄마에게 말한다.

“어머니, 저 떡볶이 해 주세요.”

“그래.”

거실에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달짝지근한 고추장과 설탕이 섞인 떡볶이 양념 냄새와 갓 지은 밥 냄새가 주방에 가득하다. 엄마가 떡볶이를 들고 왔다. 식탁에 놓는다. 성인 남자 5명이 먹어도 남는 양이었다. 남편은 신이 나서 젓가락을 집었다. 엄마는 천천히 먹으라고 말한다. 식탁 여기저기서 나무젓가락이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탁탁탁' 나는 쳐다보고 웃는다. 떡볶이가 저렇게 좋을까?라는 생각과 함께. 그런데 이상하게 한 곳에서 젓가락 소리가 나지 않았다. 아빠를 쳐다보았다. 그는 떡볶이를 물끄러미 쳐다보고만 있었다. 젓가락도 들지 않은 채.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나는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빨리 밥 드셔~”

"... 이게 뭐 단가?"

"떡볶이지."

“막내딸은 딴 거 주셔.”

“?”

“막내딸은 떡볶이를 안 좋아하네.”

그 말에 나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다. 벌써 20년도 지난 이야기였다. 하지만 아빠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의 일을. 가슴속에 찍힌 필름처럼.

20년 전 그날. 아빠는 한참을 떨어져 걷고 있었다. 남이 보면 마치 타인인 것처럼, 나는 생각했다. 아빠는 딸과의 어색한 대화를 피하기 위해 멀찍이 떨어져 걷는 게 아닐까? 하는. 하지만 나 역시 늘어진 걸음만 걷고 있었다. 이럴 거면서 왜 따라나섰는가? 그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었다. 노트북을 사줘서 고맙다고. 따라나서기 전 거울 앞에서 어색한 미소와 함께 한참을 연습했다.


“고맙습니다.”

아니 “고마워.”

아니다. “잘 쓸게.”


말 한마디 건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니. 오히려 비싼 노트북을 선물 받는 게 더 쉬웠다. 두바이로 떠나기 며칠 전 고기를 사준다고 가는 길에 충동적으로 들어간 디지털 플라자였다. 하지만 아빠는 마치 몇 날 며칠을 연습한 사람 마냥 자연스럽게 직원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여기서 가장 비싼 노트북이 뭐요? 당장 보여주쇼.”

엄마, 나와 언니 일제히 당황해 아빠를 쳐다보았고, 직원은 빨간 노트북을 가리켰다.

“손님, 이게 제일 요새 잘 나가는데 가격 대가 한 200만 원 정도.”

“당장, 그걸로 주쇼.”

그 말에 우리 모두 놀랐다. 너무 비싸기도 했고, 그 정도 사양까진 필요하지 않았다. 괜찮다고 하는 나에게 아빠는 대뜸,

“전자제품은 제일 최신이 최고야. 그러니까 노트북도 최고 좋은 걸로.”


너무 당황해 어버버 하는 사이 나는 빨간 노트북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내 생에 첫 노트북이었다. 그런데 고맙다는 말을 못 했다. 그래서 먼 곳으로 떠나기 전에 그에게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었다. 잘 쓰겠다고. 그런데 정작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아빠 뒤만 졸졸 따라가고 있는 꼴이라니.

어색한 분위기에 주변을 둘러보니 서로를 놀리며 장난치는 어린아이들, 팔짱을 끼고 다정하게 걷는 연인들, 서둘러 학원을 향하는 고등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그들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 피었고, 이 모든 이들이 횡단보도 앞에서 멈춰있었다. 신호등이 빨간 불이었다. 아빠도 그곳에 서 있었다. 나 역시 저만치 떨어져 섰다. 보이지 않는 선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곧 신호등이 초록 불로 바뀌었다.


“아빠, 같이 가.”


처음으로 용기를 내 아빠에게 말했다. 그런데 막상 같이 걷고 보니 우리 사이에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없었다. 나는 언제나 엄마에게만 전화를 걸었고, 아빠와 통화는 그저 잘 지내냐? 밥은 먹었고? 가 다였다. 어색하게 걷는 이 길에 엄마가 함께 있었다면 둘째 딸이 고맙다고 전하면 끝날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내가 직접 하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같이 걸으니 그와의 멀어진 거리가 새삼 느껴졌다.


언제부터 이렇게 어색해졌지? 생각을 해보면 사이가 살가웠던 적도 있었다. 아빠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서 하도 조잘대서 아빠가 “이빨 빠진 덜렁방구”라고 불렀으니까. 나는 그 별명이 몸서리치게 싫었다. 아빠가 방구라고 부르면 내 몸에서 방귀 냄새가 나는 기분이었다. 아빠는 나를 방구야~라고 부를 때면, 나는 득달같이 달려가 아빠의 팔을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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