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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바늘은 승부다. 한 손은 내 승리를 거들뿐

그래, 보여주자. 방향치도 뜰 수 있다는 것을.

by 야초툰

남편은 1+1 상품을 선호한다. 한 개를 사는 비용으로 두 개를 산다는 욕심에 생각 없이 바구니에 담는다. 하지만 결국 덤으로 받은 하나는 냉장고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갔다. 굳이 하나 더가 필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그 순간 잠시 후회할 뿐, 그의 장바구니에 늘 청테이프로 묶인 상품이 가득했다.


그런 남편이었기에, 코바늘 하나로만 그의 성에 차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 더 상품이 있다는 걸 안 이상, 그는 무조건 대바늘을 들어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코바늘이 익숙해지니 그의 입에 시동이 걸렸다. 주변에 그의 입을 막을 청테이프가 없나 찾았지만, 너무 늦어 버렸다.


그는 이미 좁은 이마를 들썩이며 대바늘이 자기가 넘어야 할 마지막 고지인 것 같다며 침을 튀기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확히 내가 예상한 행동을 했다. 배우기도 전에 도구부터 사는 그런 짓을. 그렇게 다시 우리 집 현관문 앞에 플라스틱 봉지가 쌓였다.


*도르마무…”

* 일상적으로는 '계속 똑같은 상황을 무한 반복해서 빠져나갈 수 없는 상황 '


대바늘들은 마치 이산가족처럼 흩어져 있다가 다시 만난 대가족처럼 한대 모였다. 그러자 그는 모든 준비가 끝났다며 이번 주말에 장모님에게 가자고 말했다.


시작부터 장비발인 그가 다시 엄마를 찾았다. 엄마를 바라보고 앉은 그의 비장함이란, 흩날리는 눈발에도 흐트러지지 않고 무릎을 꿇고 있던 황장군이 떠오르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엄마가 이미 몇 차례 대바늘은 배우지 않는 게 낫다고 거절한 터라, 그는 자세는 사뭇 더 진지해 보였다.


“어머님, 저 대바늘도 배우고 싶어요.”

“글쎄. 아들, 대바늘은 코바늘과 좀 다른데. 괜찮겠어?"

“뭐가 다른데요?”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엄마는 그 말을 하고 나를 그윽하게 쳐다봤다. 엄마의 눈에 수많은 말들이 담겨 있었다.


아들, 우리 딸은 말이야,
남자친구를 사귈 때마다
엄마한테 목도리를 떠 달라고 가져왔었어.
그 남자친구들은 알라나?
자신이 두르고 다녔던 목도리가
여자친구가 아니라 미래의 장모님이 될 뻔한
사람이 떠줬다는 사실을 말이야.
그 놈들은 지금 뭐 하고 있으려나?

입으로 히히히 요상한 웃음소리를 내면서도 누구보다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실 나도 노력은 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그런데 대바늘로 뜨다 보면, 이상한 무늬가 되거나 항아리 모양으로 들쭉 날쭉하게 떠졌다. 엄마는 그게 아니라며 내 손을 고쳐주었지만, 나는 곧 또 내 나름의 방식으로 뜨개질을 했고, 그럴 때마다 목도리가 아닌 여기저기 혓바늘이 돋아 있는 목도리도마뱀의 혀를 만들곤 했다.


어떤 문제이거나, 해결을 하려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아야 고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결국 알지 못했고, 엄마는 그런 나에게 뜨개질을 가르치다가 몇 번이나 뒷목을 잡았다. 그래서 효녀인 나는 엄마의 정신 건강을 위해서 엄마에게 넘긴 것이었다. 물론 나에게는 다 지나간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 엄마는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사람은 절대 고쳐 쓸 수 없다는 사실을. 엄마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다시 남편에게 물었다.


“그래도 해볼텨?”

“네, 야초 엄마도 같이 ~”

“아들, 포기해. 쟤는 안돼.”


엄마는 고개를 대차게 저었다. 계속 자신의 딸임을 부정하는 듯한 모습에 나도 약이 바짝 올랐다. 이제 내 나이 마흔 하나인데 왜 못하겠냐며, 엄마가 들고 있던 대바늘을 뺏어 들었다.


허리를 곧게 펴고 실을 잡았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이상하게 엄지와 검지를 실에 넣는 순간 그래 이거였어.라는 생각이 스쳤다. 얼마나 많은 시간을 첫 코를 떴던가? 여기서 진도를 나가지 못해 얼마나 눈물 젖었던가? 갑자기 수학의 정석책이 떠올랐다. 매번 집합 부분만 봐서 앞부분만 새까매진 것처럼 내겐 검지와 엄지가 그랬나 보다. 눈물 젖었던 손가락은 기가 막히게 그 리듬을 기억하고 있었다.


"봐봐, 나 잘하잖아. 시작코 장난 없지?"


나는 보란 듯이 현란한 손기술을 보여줬다. 눈 깜짝할 사이에 10개의 코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엄마는 놀라기는커녕, 내가 뜬 코를 무심히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마치 다음 행동을 예상하는 사람처럼, 겉뜨기를 해보라며 나에게 하는 방법을 보여줬다. 그거야, 껌이지라고 말하며 나는 겉뜨기를 하려고 했는데, 엄마가 실을 감았던 방향이 도저히 생각나지 않았다. 오른쪽 바늘을 왼쪽 바늘에 찔러놓고 엄마를 쳐다봤다. 엄마는 너무나 냉정하게 나에게 말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감아."

나는 눈만 껌뻑였다. 엄마는 다시 나에게 소리쳤다.

"오른쪽에서 왼쪽."

"여기가 오른쪽인가?"


오른쪽이라는 말에 좀 전의 기세는 어디 가고, 나는 눈치를 보며 이쪽인가? 아니면 이쪽?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엄마를 곁눈으로 쳐다보았다. 엄마는 그런 나를 한심하세 쳐다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내가 하고 있던 실타래를 다시 매몰차게 빼앗으며 남편에게 말했다.

“아들 봤지? 오른쪽, 왼쪽도 모르는데 어떻게 뜨겠어?”

남편도 그런 나를 보고 고개를 끄떡였다.

“어머님, 이번에도 제가 해 보겠습니다."

“그려”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왜 뜨개질을 못 했는지에 대해서. 뜨개질을 잘하려면 방향 감각이 좋아야 했다. 몇 코를 떴는지 기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까지 떠온 방향대로 바늘을 움직여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왜 남편이 뜨개질을 왜 잘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남편은 버스 운전기사였다. 매일 방향 전환을 해야 하는 게 그의 일이었다.


그에 비해 나는 오른쪽과 왼쪽은 늘 두려운 존재였다. 필라테스를 할 때면 선생님이 오른쪽으로 도세요 하면 잔뜩 굳어서 왼쪽으로 돌기 일수고, 오른쪽 다리를 올리라면 당당하게 왼쪽 다리를 올렸다. 심지어 결혼할 때도 아빠의 오른쪽에 서야 하는 데, 왼쪽에 설까 봐 내 오른 주먹을 불끈 쥐고 입장했다.


방향을 선택하는 건 복불복과도 같았다. 맞으면 좋고, 틀리면 또 내가 그렇지 뭐라고 생각하게 되는.


그렇다고 해서 이제 남편에게까지 무시당할 순 없었다. 코바늘보단 대바늘은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름 서당개 경력자였다.


보여주겠어. 서당개 이십 년의 세월을. 이번 대바느질 연재는 아무래도 남편과의 치열한 경쟁이 될 것 같다. 과연 누가 더 잘 뜰 것인가? 어차피 승리는 무조건 나일 것이다. 늘 그렇듯 늦게 시작해도 승자는 나였고, 나는 또 한 번 치열하고 비열하게 또 무참히 그를 짓밟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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