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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수기 Mar 25. 2023

너의 결국은 꽃

<40일간의 글쓰기>

다이소에서 백일홍 씨앗을 사 왔다. 몇 해 전 자전거를 타고 가다 어느 집 대문 앞에 활짝 피어 있는 백일홍 무리를 본 적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형태의 꽃은 아니지만 알록달록 다양한 색깔의 꽃들이 어울려 피어 있는 모습이 예뻐서 우리 집에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다.

처음  백일홍 씨앗은 바짝 마른 낙엽처럼 가벼웠고 탑시기처럼 초라했다. 이름 없이 있었다면 누군가 씨앗인 줄도 모르고 그냥 '' 하고 불어버릴  같은 모습이었다.

집 앞 화단에 풀을 뽑아준 뒤 바람에 날리듯이 씨앗을 뿌려주었다. 봉투 안쪽 구석에 달라붙어 끝까지 떨어지지 않는 한 녀석은 봉투에 물을 담아 그대로 땅 위에 쏟아부었다. 그리고 그 위에 여름 홑이불 덮은 듯이 흙으로 살짝 덮어 주었다.

그렇게 백일홍 씨앗을 잠재워 두고, 나는 다음날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다. 3일째 되던 밤은 문득 내가 심어 두고 온 씨앗들이 잘 있나 궁금해서 마음이 뒤척이기도 하였다.

5일 만에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정말 깜짝 놀랐다. 잠자던 씨앗은 어느새 이불 밖으로 나와 연초록 새싹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렇게 금방 싹이 돋다니. 몇 달씩 기다려야 하는 구근만 심다가 이렇게 금방 싹이 나는 백일홍 씨앗이 신기하기만 했다.

봉투 뒤에 설명을 읽어보니, 꽃이 피려면 두 달은 걸리는 것 같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너의 결국은 꽃이 될 거라고, 활짝 핀 백일홍 사진을 언약의 말씀처럼 새싹들에게 보여주었다.

'너의 결국은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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