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써 시간을 내는 것에 개성이 담긴다
처음 만나는 사람과, 정확히는 친해지고 싶은 사람과 밥을 먹는 자리. 꼭 물어보는 게 있다.
"OO님은 '굳이' 하는 일이 있나요?"
평소 좋아하는 유병욱 카피라이터의 인스타그램을 보다가 이 단어를 발견했다. 꼭 필요하진 않지만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일 앞에 우리는 저 두 단어를 붙인다. 그리고 그 이유를 듣다 보면 이 사람이 무엇을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한 동료는 퇴근하고 샤워할 때 음악을 듣지 않고 그날 하루를 조용히 되짚어 본다고 했다. 그러다 보면 일과 중에 놓친 일들이 하나 둘 떠오르고, 다음 날에는 그것부터 처리한다는 것이다. 이 습관이 일하는 자아를 구성하지 않을까.
화살표를 나에게 돌려보면, 나는 굳이 사진을 찍는다. 점심 식사를 할 때나 마음에 꼭 드는 카페에 갈 때는 물론이다. 출퇴근길에 문득 우울하면 카메라를 꺼내 하늘을 담는다. 매일 보는 비슷한 하늘이라도, 그렇게 한 번 올려다보면 하루가 다소 낭만적으로 느껴진다. 오늘은 더 까맣구나, 어제는 안 보였던 별이 오늘은 보이는구나. 내가 사는 동네는 운 좋게도 하늘을 나는 비행기가 종종 보인다. 우연히 앵글 안에 비행기가 들어차는 순간이면 굳이 행복하다.
무언가를 크게 원한 적 없었다. 좋은 대학에 가고 싶다는 것 말고, 어디를 가고 싶다거나 무언가를 갖고 싶다거나 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목표만 이루면 되니까. 그런 내가 대학생이 되어서 처음 갖고 싶었던 게 카메라였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평소의 나라면 카메라를 사서 어떤 어떤 방식으로 활용해 커리어에 투자를 해야지 싶었겠지만, 사진을 향한 마음에는 가식이 없었다.
3년 정도 카메라 배터리를 잃어버렸다. 어이없게도 집 안에서 배터리를 찾았는데, 그 안에는 멈춰진 나의 순간들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일본에서 공부할 때 굳이 찾아갔던 고흐 미술전도 있었다. 에둘러 가더라도 여유가 좋았던 아침 7시 고쇼의 안개도 담겨있었다. 분명히 핸드폰으로도 찍었겠지만, 그 파일들은 온데간데없다. 굳이 들고 다녔던 카메라 안에 하나 둘 남았다.
Series. 20대 직장인의 뿌리 찾기 프로젝트
내 안을 채우고 있는 한 가닥을 찾아보는 과정.
그 한 가닥이 내 노잼을 뒤흔들 수 있다면.
프롤로그_ https://brunch.co.kr/@a0bd4d3b8469449/48
연재 요일 _ 화 /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