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노잼 시기를 1년째 겪는 사람이 여기 있네?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저녁 8시에 퇴근한 날.
녹아내리듯 침대에 누웠는데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딸, 이제 퇴근했어? 밥은 챙겨 먹었고?"
방금 집에 들어왔고, 밥은 아직 안 먹었지만 먹었다고 둘러댔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기침처럼 한 마디가 나와버렸다.
"아빠 나... 인생이 재미가 없어"
당황한 아빠는 그래도 그 안에서 재미를 찾아보라고, 그것도 네가 선택한 인생이라고 몇 마디 말을 허둥지둥 붙였다. 그러고는 본인도 요즘 사는 게 재미가 없다며 말을 마쳤다. 내 마음속 짐을 덜자고 꺼낸 말이었는데 오히려 아빠의 고민을 들어버린 기분.
그러니까 나는 인생 노잼 시기를 대략 1년째 겪고 있다.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 일은 하고 있는데 막상 성장하는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고 상사들에게 인정받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사는 내 인생이 크게 만족스럽지도 않다. (도대체 누굴 위해 땀 흘린 건가?) 목표로 하던 회사에 왔지만 내가 원하던 직무는 아니었다. 그래도 괜찮을 거라며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마음속에 모난 돌은 깎이지 않고 여전히 내 마음을 쿡쿡 찔러댄다.
대한민국에서 직장 생활하면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어?라고 생각하며 위로를 한다. 스트레스를 받는 날에는 엽기 떡볶이 덜 매운맛을 시켜서 눈물 콧물 쏙 빼며 후루룩 거린다. 금요일만 바라보며 하루하루 버틴다. 특히나 힘들 때는 중간중간 저녁에 영화 예매를 하거나 약속을 잡는다. 그래 돈 쓰는 재미라도 있어야지 하면서. 진짜 고민을 뒤로한 채 직장인의 포근한 가면 속에 숨어버린다.
내 특기는 활자 속 세상으로 도망치는 일. 책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책을 사고, 읽고, 기록했다. 좋은 문장은 필타했고, 다이어리에 적어두기도 했다. 나보다 잘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치 내 것인 양 두르고 살았다. 정작 내 안에 꿈틀거리는 욕망은 외면한 채로 말이다. 진짜 나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인생을 어떻게 하면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을까?
욕망이 증발한 느낌이다. 특히나 목표 지향적인 사람인 내가, 추구해야 할 목표가 사라진 지금 나는 거대한 바다에서 부유하는 것 같다. 모든 해결책은 내 손안에 있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나라는 나무를 키우는 뿌리들을 하나씩 찾아보면 어떨까. 그 뿌리 중에는 끝을 모르게 이어진 것도 (자그마치 2n년 만큼 자란) 있을 테고, 갓 만들어진 것도 있겠지. 하나씩 찾아가다 보면 나라는 사람의 형체를 어렴풋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Series. 20대 직장인의 뿌리 찾기 프로젝트
내 안을 채우고 있는 한 가닥을 찾아보는 과정.
그 한 가닥이 내 노잼을 뒤흔들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