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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ownangle Dec 05. 2023

EP.0 "아빠, 인생이 재미가 없어"

인생 노잼 시기를 1년째 겪는 사람이 여기 있네?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저녁 8시에 퇴근한 날.

녹아내리듯 침대에 누웠는데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딸, 이제 퇴근했어? 밥은 챙겨 먹었고?"

방금 집에 들어왔고, 밥은 아직 안 먹었지만 먹었다고 둘러댔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기침처럼 한 마디가 나와버렸다.

"아빠 나... 인생이 재미가 없어"


당황한 아빠는 그래도 그 안에서 재미를 찾아보라고, 그것도 네가 선택한 인생이라고 몇 마디 말을 허둥지둥 붙였다. 그러고는 본인도 요즘 사는 게 재미가 없다며 말을 마쳤다. 내 마음속 짐을 덜자고 꺼낸 말이었는데 오히려 아빠의 고민을 들어버린 기분.


그러니까 나는 인생 노잼 시기를 대략 1년째 겪고 있다. 매일매일 최선을 다해 일은 하고 있는데 막상 성장하는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고 상사들에게 인정받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사는 내 인생이 크게 만족스럽지도 않다. (도대체 누굴 위해 땀 흘린 건가?) 목표로 하던 회사에 왔지만 내가 원하던 직무는 아니었다. 그래도 괜찮을 거라며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마음속에 모난 돌은 깎이지 않고 여전히 내 마음을 쿡쿡 찔러댄다.


대한민국에서 직장 생활하면 다 거기서 거기 아니겠어?라고 생각하며 위로를 한다. 스트레스를 받는 날에는 엽기 떡볶이 덜 매운맛을 시켜서 눈물 콧물 쏙 빼며 후루룩 거린다. 금요일만 바라보며 하루하루 버틴다. 특히나 힘들 때는 중간중간 저녁에 영화 예매를 하거나 약속을 잡는다. 그래 돈 쓰는 재미라도 있어야지 하면서. 진짜 고민을 뒤로한 채 직장인의 포근한 가면 속에 숨어버린다.


내 특기는 활자 속 세상으로 도망치는 일. 책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책을 사고, 읽고, 기록했다. 좋은 문장은 필타했고, 다이어리에 적어두기도 했다. 나보다 잘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마치 내 것인 양 두르고 살았다. 정작 내 안에 꿈틀거리는 욕망은 외면한 채로 말이다. 진짜 나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인생을 어떻게 하면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을까?


욕망이 증발한 느낌이다. 특히나 목표 지향적인 사람인 내가, 추구해야 할 목표가 사라진 지금 나는 거대한 바다에서 부유하는 것 같다. 모든 해결책은 내 손안에 있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나라는 나무를 키우는 뿌리들을 하나씩 찾아보면 어떨까. 그 뿌리 중에는 끝을 모르게 이어진 것도 (자그마치 2n년 만큼 자란) 있을 테고, 갓 만들어진 것도 있겠지. 하나씩 찾아가다 보면 나라는 사람의 형체를 어렴풋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Series. 20대 직장인의 뿌리 찾기 프로젝트

내 안을 채우고 있는 한 가닥을 찾아보는 과정.

그 한 가닥이 내 노잼을 뒤흔들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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