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샤를드골 공항에 도착했다. 파리는 처음이었지만 샤를 드골 공항은 처음이 아니었다. 2020년 코로나로 인해 독일에서 급히 귀국할 때 샤를 드골 공항에서 경유하느라 잠시 머물렀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 그렇게 가보고 싶었던 파리 입국 도장을 받고도 공항에만 머물러야 한다는 게 아쉬웠는데 이번엔 프랑스에 살아보러 왔다는 게!
솔직히 비행기를 타는 순간에도, 타서도 확신이 없었다. 교환학생을 왜 가는 걸까? 여행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혼자 잘 살 수 있을까? 비행 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공항에 내려서 출구를 찾아가는데 갑자기 별로 안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짝을 지은 사람들 속에 혼자 있었는데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인 P와, 이탈리아인 D, 칠레인 S를 만나다.
어렵지 않게 택시를 타고 예약해 둔 파리의 숙소로 가는 길에 사진을 찍었다. 아이폰 카메라에서 요란한 찰칵 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것도 좋았고, 완전히 새로운 풍경이 내 눈을 사로잡는 것도 좋았다.
그런데 파리 외곽 생드니 지역을 지날 때 도로에서 돈을 달라는 사람들에게 기사님께서 창문을 열어 돈을 줄 때는 무섭다고 느꼈다. 설상가상으로 숙소 앞에 내려 에어비앤비 호스트에게 연락을 하니 30분 정도 기다리라고 하셨다. 커다란 캐리어 두 개를 들고 헤매고 있는 내 모습을 숨기고 싶었다. 이때 파리의 첫인상이 별로라고 동생에게 카톡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다행인 건 호스트 분은 다행히 너무 좋은 분이셨다.
4인만 이용하는 작은 호스텔이어서 다른 여행객들과 인사를 나눴다. 이탈리아에서 생일을 맞아 놀러 온 D와 보르도에서 일하고 있는 P를 만났다. 간단하게 인사를 나눴고 '이따가 다 같이 마시러 갈래?' 하고 묻길래 알겠다고 하고 길을 나섰다. 센강 노을을 볼 계획이었다.
파리의 여름은 들은 대로 길었다. 9시가 다 된 시간이었는데도 해가 지지 않은 건 신기했다. 택시를 타고 일찍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이후로 파리에 몇 번 왔을 때도 이렇게 예쁜 센강의 일몰은 다시 보지 못했다.
사진을 조금 찍고 센강의 일몰을 감상하는 사람들을 봤다. 혼자여서 그런가 어쩐지 조금 외로웠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들과 달리 나는 이 앞에서 사진을 찍을 수도 없었지만 멋진 풍경을 봤다는 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호스텔에 돌아오니 P와 D 그리고 칠레에서 프랑스로 공부하러 온 S까지 다 같이 만날 수 있었다. 다 같이 맥주를 마시러 갔다. 사실 첫날이라 혼자 밤에 돌아다닐 용기가 없기도 하고, 바로 시차적응을 하고 싶어서 비행기에서 한숨도 자지 않은 터라 센강 일몰만 보고 쉬려고 했는데 외국인 친구들을 만나 미드나잇 인 파리처럼 파리의 밤 골목을 걸어볼 수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정말 충분했다!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이 모여서 그런가 당연히 문화 차이가 대화의 소재가 되었다. 이탈리아인 친구 D는 커피는 진해야 한다며 아메리카노와 면을 반으로 잘라서 만드는 파스타 얘기에 기겁을 했다. 또 D는 나에게 한국에서는 처음 만나면 악수한다는 걸 배웠기 때문에 나와 처음 만나서 악수를 한 거라고 알려줬다. 당시에 내가 D가 악수를 했다는 걸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고마웠다.
또 한 친구가 한국의 회식문화에서 거절을 하지 못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나 혼자 아시아인이었기 때문에 이런 문화를 이해시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일본인 여자친구를 사귀어본 친구가 아시아에선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내 이야기에 힘을 실어줬다.
시차 때문에 하루 30시간을 살았던 날이었다. 파리에 도착한 첫날부터 영어를 사용해서 대화하다니, 밤거리를 걷다니! 모든 게 그저 신기하고 재밌었다.
한국인 언니 E를 만나다.
P는 새벽에 보르도로 가는 기차를 타러 간다고 했다. 일어나니 이미 떠난 후길래 잘 가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 나는 아이스커피를 파는 카페를 찾아놨기에 오픈 시간에 맞춰 숙소를 나섰다. 카페 앞에 도착하니 나를 반기는 건 'Summer break back August 30th!' 안내... 휴가의 나라임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그다음으로 가려던 빅토르 위고 저택으로 향하며 길에서 마주친 카페에 들어갔다. 'take away?'라는 질문에 No! 를 외치고 앉아 메뉴판을 보고 대충 아무거나 시킨 커피는 역시나 따뜻했다. 야외 좌석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일기를 썼다.
바람이 부는 8월 말의 파리는 추웠다. 빅토르 위고 저택을 갔다가 보주 광장의 잔디에 앉아 로컬처럼 책도 읽고 시간을 보내다가 문구점으로 향했다.
파리 마레지구에 위치한 papier tigre라는 문구점은 이곳만의 개성이 담긴 문구들이 많았지만 디자인이 내 취향은 아니었다. 사실 문구점을 다 보고 점심을 먹어야 했었는데 아직은 파리가 낯설었다. 기숙사 서류 신경 쓰랴, 이런저런 출국 걱정에 찾아놓은 맛집도 없었고 파리에서 혼밥은 아직 자신이 없었다.
근데 여기 문구점에서 혼자 구경하시는 분 중에 한국인 같아 보이는 분이 있었다. 문구점을 다 보고 밖으로 나가는데 문구점 앞에서 그분이 혼자 핸드폰을 보고 계셨다. 그래서 혹시 한국인이시냐고 말을 걸었더니 맞다고 하셔서 괜찮으시면 점심을 같이 드실래요? 하고 여쭤봤다. 언니가 수락해 주셨고 혼자 가려고 했던 레스토랑이 있는데 거기 가는 게 어떻냐고 하셔서 그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이게 E 언니와의 첫 만남이었다.
레스토랑이 오픈하려면 시간이 좀 남아서 잠깐 걸었다. 걷다가 보인 마트에서 납작 복숭아도 사고 보주 광장도 다시 들렀다. 여기서 언니가 내 사진도 찍어주었다.
오픈 시간에 도착한 레스토랑은 '르 쁘띠 마르쉐'라는 곳이었다. 몰랐는데 한국인들에게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소문대로 한국인이 정말 많았다. 오리 스테이크랑 치즈가 들어간 파스타(?) 두 메뉴 다 정말 맛있었다. 오리 스테이크는 나중에 가족들이 파리에 놀러 왔을 때 다른 식당에서도 먹었는데 개인적으로 여기가 더 맛있었다. E 언니 덕에 거리에서 점심도 먹고, 화이트 와인도 마셨다. 혼자였다면 절대 낮술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같이 지하철을 타고 루브르 박물관 쪽으로 이동해서 카페 키츠네에 갔다. 언니가 프랑스어도 조금 할 줄 알고 와본 경험도 있어서 같이 있는 동안 파리에 조금 적응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이스 라테를 마셔서 기분이 좋았다. 여기서 언니와 헤어졌다. 이날 친구가 없으면 친구를 만들자는 교훈을 얻었다. 사실 거절 당할 확률이 더 높지만 거절당할 수도 있는 거지 생각했다.
친구들한테 한국인 E 언니를 만나 밥 먹은 얘기를 하니까 어떻게 말 걸 생각을 했냐고 했다. 그때의 나는 누군가에게 말 거는 것보다 파리라는 낯선 공간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던 것 같다. 날 잘 모르는 친구들은 나를 당찬 사람으로 보지만 난 사실 이렇게나 겁이 많은 사람이다. 그렇지만 동시에 이겨낼 수 있는 사람!!
파리에 대한 낯선 두려움이 조금씩 걷히자 알록달록함이 눈에 들어왔다. 튈르히 정원 분수 앞의 초록 의자에 앉은 사람들이 너무 여유로워 보이고 좋았다. 나는 오랑주리에서 모네의 수련을 보고 콩코드 광장을 지나 센강을 따라 걸었다. 사실 다음 목적지까지 꽤 되는 거리였지만 해가 너무 좋아서 계속 걸었다. 찍는 사진도 다 잘 나왔다. 파리의 태양은 최고의 필터라는 생각을 했다. 너무 많이 걸은 탓에 피곤함이 몰려왔다. 샌드위치와 파나코타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서 쉬고 있는데 연락이 왔다. S가 보낸 연락이었다. D와 함께 에펠탑을 보러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갈 건지 물어보는 연락이었다. 전날 저녁에 맥주를 마시면서 에펠을 보고 싶다고 얘기했는데 시간이 너무 늦어 가지 못했었던 걸 기억하고 물어봐준 게 정말 고마웠다. 알았다고 답장한 후에 준비하고 에펠탑으로 향했다.
가까이서 보는 첫 에펠탑이었다. 에펠탑을 본 직후에 쓴 일기장을 펼쳐보니 '불 꺼진 탑은 사진으로 찍으면 왠지 장난감 같기도~'라고 적어두었다. 에펠탑까지 가면서 한국인 언니를 만나 밥 먹은 얘기를 했다. D가 자기들한테도 물어보지!라고 말하며 내일 괜찮으면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해서 알겠다고 했다.
건너편 트로카데로 광장으로 가서 친구들과 사진도 서로 찍어주면서 10시 정각에 불이 들어오는 걸 기다렸다. 버스킹을 들으며 반짝이는 에펠탑을 보았다. 버스킹을 들으며 D가 'always Ed sheeran'이라며 뻔하다는 듯이 말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S와 D, 나는 서로 정적을 채우려고 굳이 노력하지 않으며 각자의 방식으로 에펠탑을 바라봤다.
새삼 이 철덩어리가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낭만을 주고 있는 걸까 생각했다. 에펠탑이 반짝이는 모습 하나를 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는가. 난 원래 사람들이 많은 곳을 싫어하지만 여기서는 많은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게 너무 좋았다. 모두의 시선 끝엔 언제나처럼 반짝이는 에펠탑이 있었으니까!
프랑스인 B 그리고 중국인 언니, 오빠를 만나다.
3일 차 아침이 밝았다. 다음 날은 학교가 있는 릴로 떠나는 날이기에 나에겐 마지막 파리였다. 다시 올 수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나갈 준비를 다 했는데 갑자기 이제 막 눈을 뜬 프랑스인 B가 뭐 할 거냐고 물어봤다. 처음 만나자마자 하는 말이 뭐 할 거냐는 말이라서 조금 당황했다. 도서관에 갈 거라니까 자기도 같이 가도 되냐고 10분만 기다려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알겠다고 하고 길을 같이 나섰다.
B는 파리에 살지는 않지만 프랑스인이라 관광객인 나한테 이것저것 설명해줘야 할 것 같은 마음을 느꼈던 것 같다. 내가 가려던 도서관이 마침 쉬는 날이라 머쓱해져서 B가 소개해주는 대로 파리를 돌아다녔다. 노트르담 대성당도 보여주고, 루브르도 보여줬다.
D한테서 점심 같이 먹자고 연락이 와서 약속을 잡으니 약속 시간 전까지 생샤펠을 돌아보기엔 줄이 너무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았다. 대신 루브르 근처에 있는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를 마신 후에 이름 모를 성당에 왔다. 일요일이라 사람이 많았다. 해도 좋아서 성당 안으로 들어오는 햇빛마저 너무 좋았다.
D를 만나 B와 셋이서 점심을 먹었다. 나는 무화과가 든 갈레뜨를 먹었다. 크레페 가게라고 들어서 우리나라에서 보던 크레페를 기대했는데 웬 빈대떡 같은 게 나와서 처음엔 조금 놀랐지만 안 놀란 척하고 먹었다. 이때쯤 되니까 영어가 너무 힘들었다. D랑 B가 영어를 너무 잘해서 뇌가 너무 지친 탓에 셋이 만난 후부터는 둘이 대화하게 했다...ㅋㅋㅋ
그 후에는 B가 떠나기 전에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면서 같이 갈 거냐고 물어보길래 그러자고 했다. 파리 리옹역에 있는 카페에서 B의 친구들인 중국인 언니, 오빠를 만났다. 파리에서 일하고 있는 분들이었다. 다들 대화를 하는데 나는 이틀 동안 5만 보 걸은 것도 그렇고 이미 뇌가 영어에 지쳐있는 상태여서 말을 안 하고 있었는데 언니가 날 챙겨줬다. 왜 온 건지, 전공은 뭔지, 교환학생이라 하니 꺅트 쥰느 같은 혜택까지 알려줬다. 친절한 마음이 고마웠다.
B가 떠날 시간이 되어 카페를 떠나고자 각자 계산을 하러 갔다. 우리나라는 한 번에 결제하고 송금해 주는 편이 더 많은 것 같은데 프랑스는 각자 계산이 일반적이다. 내가 마지막쯤에 계산을 하려고 하는데 이미 계산이 다 되어있었다. 계산 착오 같아서 내가 언니에게 현금으로 돈을 주겠다 했는데 언니가 괜찮다고 'Welcome to Paris'라고 했다. 이때의 이 한 마디와 이 마음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다시 브런치를 쓰기 시작하면서 프랑스로 매거진까지 만들었는데 파리에 대해 쓰지 않은 걸 깨달았다. 파리를 여러 번 다녀왔지만 어떤 내용을 담을 수 있을까 고민해 보니 역시나 파리의 첫인상에 대해 가장 먼저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내가 만난 사람들이 있었다.
글의 초반부를 읽다 보면 여기저기 잘 다니는 모습과는 달리 생각보다 꽤나 겁쟁이 같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혼자, 처음, 파리에 와서 지낸 3일 동안 만난 7명의 인연들이 나의 여행을 더욱 다채롭게 만들어주었다. 사실 비행을 오래 한 것도 있고, 걷기도 많이 걸어서 너무 힘들고 피곤했을 때도 친구들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고 번번이 따라나섰지만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덕분에 용기를 많이 얻고 두려움도 많이 떨쳐냈다.
이렇게 만난 친구들을 이때 이후로 한 번도 다시 본 적이 없다. 첫 날 만났던 프랑스인 P는 내 교환학생이 끝날 때쯤 어떻게 프랑스에 왔으면서 보르도에 와보지 않고 돌아갈 수 있냐고 연락이 왔긴 하지만. 긴 인연이 되지 못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너무 아쉬워하지 않기로 했다. 교환학생으로서 새로운 일상을 앞두었던 내게 프랑스를 좋은 기억으로 시작할 수 있게 해 줘서 모두에게 고마움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