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은진 Dec 01. 2022

여름을 돈 주고 사버린 10월 프랑스 남부 니스 여행

프랑스 남부 니스에서 여름을 사다. 니스 바다와 르누아르 생가.

프랑스 북부에서 살고 있다 보니 빠르게 추위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래도 서울보다는 덜 춥지만 다른 유럽 지역에 비하면 훨씬 빠르게 가을을 만났다는 게 어쩐지 손해 보는 느낌이 들었다. 친구들은 이미 각자 바르셀로나 해변과, 몰타에 가서 수영을 하고 왔는데 하루라도 더 따뜻할 때 나도 바다를 가고 싶었다. 그때 마침 승희가 니스에 간다길래 하나와 나도 니스행 비행기를 끊었다.

 

떼제베 맥스가 있는 친구들은 기차로도 가는 것 같은데 나는 맥스가 없는 지라 비행기를 샀다. 프랑스 안에서 이동하는 거라 저렴하기도 했고, 1박 2일 여행이라 시간도 확 단축되는 점이 좋았다. 니스에 처음 도착해서는 릴보다 확실히 따뜻하다고 느꼈고, 한편으로는 왠지 내가 너무 관광객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1일 차

찍을 땐 몰랐는데 글을 쓰면서 보니 가로등 위에 갈매기가 앉아있다.

반팔 위에 입고 온 맨투맨을 벗고, 점심을 먹고 숙소에 짐을 둔 다음 바다로 향했다. 가장 인기 있는 스팟은 사람이 많다길래 완전 성수기는 아니지만 여유롭게 놀고 싶어서 멀리 이동하지 않고 숙소 쪽 바다에서 놀았다.


2022년 10월 중순, 니스 해변에서 수영하다.

니스는 바다 물색이 진짜 아름다웠다. 에메랄드빛이 어떤 색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이런 게 에메랄드빛이려나? 생각하게 했다. 덩케르크 바다, 생말로 해변, 에트르타 바다까지 프랑스에 와서 많은 바다를 봤다고 생각했는데 니스 바다는 또 달랐다.


추울 수도 있지만 이겨내고 바다 수영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있어서 나와 친구도 용기 내서 바다 안으로 들어갔다. 10월 중순의 니스 바다는 냉탕에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텀을 두고 천천히 들어가다가 적응이 되면 신나게 놀 수 있는 그런 느낌! 오랜만의 수영인 데다가 바다 수영은 정말 정말 오랜만이라서 너무 신났다. 우리는 해가 쨍쨍하게 빛날 때 물에 들어가서 놀았는데 서서히 해가 사라질수록 점점 추워졌다.


그래서 적당히 놀다가 나와서 바다에 누워 있었다. 바다에 누워서 햇빛도 받고, 노래도 듣고, 책도 읽었다. 니스에서 읽은 책은 제일 좋아하는 최은영 작가의 책이다. 단편 소설집인데 그중 <숲의 끝>이 마음 깊은 곳에 들어왔다. 언젠가부터 영화와 책에서 핀란드를 자주 만나는데 언젠가 꼭 북유럽(특히 핀란드)에 가보고 싶다. 길게.


니스는 자갈 해변이다. 돌을 하나 쥐고 다른 돌에다가 글씨도 써봤다. 자갈 해변이라 발이 아프긴 하지만 물에서 놀고 나와서 몸에 모래를 묻히지 않아도 되는 점은 참 좋았다. 니스에서 맛본 감도 진짜 맛있었다. 유럽 감은 처음이었다.


숙소에 들어가서 다시 나갈 준비를 했다. 해가 질 때쯤 나와서 번화가 쪽으로 트램을 타고 갔다. 24시간 이용권으로 공항에서부터 번화가까지 트램을 탈 수 있으니까 숙소는 어디에 잡아도 별로 상관없는 것 같다. 내려서 걷는데 건물 사이사이로 산이 보이고 해가 지는 모습이 보이는 게 예뻤다.


밥을 먹으러 가기 전에 지는 해를 보려고 해변 쪽으로 갔다. 절로 탄성이 나왔다. 사실 핑크색 하늘과 해변의 조합은 별로 특별하지는 않지만 그냥 그 앞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던 것 같다. 여유로운 모습이 좋아 보였다. 1박 2일의 여행이라 그런지 너무 짧아서 '한여름 밤의 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니스에 다녀온 건 꿈같다. 여기서 찍은 영상을 유진이에게 보내줬는데 유진이가 'until i found you'라는 노래를 추천해줬다. 들어보니 정말로 니스의 일몰 바다 풍경과 잘 어울리는 노래였다.

 

밥을 먹고 나와서 다시 니스 바다에 누워서 별을 봤다. 솔직히 안경을 안 끼고 나와서 친구가 별자리를 알려줘도 어떤 별자리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떤 별자리인지 하나하나 구분할 수는 없었지만 밤바다에 누워 별자리를 보는 그 시간이 정말 소중했다. 이때 바다에 누워서 혼자 많은 생각을 했다.



2일 차

오전 8시 35분

이때까지는 아침에 눈이 일찍 떠질 때라 혼자 일찍 준비해서 밖으로 나섰다. 승희가 니스에 르누아르 생가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고, 나는 이곳에 온 이상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승희와 하나는 별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나 혼자 갔다가 숙소 체크아웃 시간 전에 돌아오기로 했다. 혼자 가야 하는 거라 넉넉하게 시간을 잡고 나와 트램을 타러 향했다. 그런데 강렬한 햇빛이 보이길래 나도 모르게 발을 바다로 옮겼다.


해는 이미 하늘 높이 떠버렸지만 바다를 넓게 비추고 있는 오렌지빛 햇빛이 좋았다. 파도는 어제처럼 우람했지만 햇빛이 덮어버린 파도 색 때문에 어제의 푸른 바다와는 달리 온순해 보이는 느낌도 들었다. 시간을 넉넉히 잡고 나오니 한눈을 팔고 잠시 여유를 부릴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았던 것 같다.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르누아르 생가에 도착했다. 중간에 바다도 보고 왔는데 그래도 오픈까지 20분 정도 남았던 기억이 난다.


다행히 옆에 이 작은 벤치가 하나 있어서 여기에 앉아서 일기를 썼다. 일기장을 펴보니 여기서 쓴 일기의 제목은 '르누아르를 기다리면서...'이다. 그때 여기서 일기를 쓰는데 나만 관광객 같다고 썼다.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bonjour 인사를 했었는데 그때의 나는 그들에게 남프랑스에서 사는 기분은 어떤지 묻고 싶었다고 적혀 있는 게 웃기다.


10시가 되자 안에서 직원 분이 나오셔서 문을 열어주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26세 이하라 무료로 들어갔던 것 같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를 참고하길!


르누아르의 집보다는 나는 정원이 궁금했다. 사실 공원을 참 좋아하지만 유럽에 와서 너무 많은 공원을 봤고, 이제는 공원을 봐도 전만큼의 행복은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는데 르누아르 정원은 달랐다. 르누아르가 진짜 작품을 그린 곳에 와있는 것도 신기했고 그냥 너무 예뻤다. 햇빛이 딱 들어오는 아침 시간이고 아무도 없이 혼자 입장해서 더 신비롭고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르누아르 작품의 배경이 된 곳에서의 내 모습을 남기고 싶어서 핸드폰을 나무 밑에 설치하고 정원을 감상했다. 혼자 갔음에도 이런 멋진 사진과 영상을 남길 수 있어서 너무 만족스러웠다~


어딜 가도 사람이 많은 관광지와는 다르게 이렇게 조용한 곳에서 혼자 보고 싶은 걸 보고 싶은 만큼 볼 수 있다는 게 여기서 느낀 행복감의 이유 같았다. 유럽에서 여행을 하면서 많은 곳을 가보는데 그러면서 나의 여행 스타일과 내 취향을 점점 알아가고 있다. 모두가 추천하는 곳이지만 나한테까지 맞지 않을 수도 있고, 또 생각보다 기대하고 갔는데 별로인 일이 있을지도?


정원을 감상하고 건물 쪽으로 향했다. 엄청난 채광과 일조권이 부러웠다.


그림이 많이 있지는 않지만 그림도 감상하고,


르누아르의 방도 볼 수 있었다. 르누아르가 그림을 그리던 구조대로 남아 있던 방이었다.


2층에 올라가서는 테라스에 나가봤다. 문이 닫혀 있었는데 직원 분께 여쭤보니 친절하게도 직접 열어주셨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저 멀리에 수평선이, 그리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빽빽하지만 아름다운 마을의 모습이 나왔다.


마지막으로 해가 숨은 정원을 다시 한번 구경하면서 친구들에게 르누아르는 이런 정원을 보면서 그림을 못 그렸다면 그건 직무유기야! 하고 장난식으로 말했던 기억이 난다. 나도 그냥 르누아르 정원에서 그림을 그린 느낌만 내고 나와서 숙소로 향했다. 생애 마지막 12년을 이곳에서 보낸 르누아르는 어땠을까? 나도 그 느낌을 알고 싶었다.


샤갈 박물관에 다녀온 친구들과 다시 만나 번화가 쪽으로 향했다. 밥을 먹고 벼룩시장을 구경했다.


걷고 또 걷고, 사진을 찍고 또 찍으면서 남부 햇살 진짜 좋다. 니스 햇살 진~~짜 좋다 느꼈던 것 같다.


유명한 곳에서 라벤더 맛이랑 토마토 바질 맛 젤라또를 사서 비행기를 타러 가기 전 마지막으로 바다를 보러 갔다. 나는 라벤더 맛이 진짜진짜진짜 맛있고 내 취향이었다. 토마토 바질 에이드를 좋아하긴 하는데 내 입맛에 이 맛은 너무 달았다.


돌아가는 날이라 이날은 그냥 해변에 누워 있었다.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젤라또를 먹으며 니스 해변에 누워 있는 건 진짜 천국이었다. 이때 진짜 돈으로 여름을 산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한 시간 넘게 그냥 가만히 누워 있다 보니 이날 엄청 피부가 탔다. 마지막 니스 여행의 마무리까지 완벽했다고 생각한다.


걸어서 공항 가는 트램을 타러 갔다. 골목골목을 걸어 트램역에 도착했는데 이때 만난 아파트먼트를 보고 드라마 <디어마이프렌즈>가 생각났다. 유럽을 다니면 다닐수록 생각보다 비슷한 면도 있지만 그런 마음이 드는 와중에도 이곳저곳 가보며 또 다른 느낌의 도시와 나라를 찾는 게 재밌는 것 같다. 짧은 여행이지만 가장 좋았던 여행으로 손에 꼽을 수 있는 니스! 언젠가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라고 하더라도 꼭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와보고 싶은 곳~

매거진의 이전글 눈 쌓인 프랑스 북부 도시 '아미앵' 하루에 돌아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