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투수가 한 게임 100구 가까이 되는 공을 모두 전력투구 할 수 없듯이 내가 쓴 60개가 넘는 브런치 글 중에서도 조금 더 정이 가는 글과 아닌 글이 나뉜다. 오늘 쓴 글은 마음에 드는 글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기억을 하나하나 꺼내서 썼다. 잊지 못할 많은 일들이 있었던 곳, 릴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지구 반대편의 나라에서 혼자 살아야 한다니. 텅 빈 방에 처음 도착했을 때 막막함 뿐이었다. 얼추 방의 구색을 갖추고 마음이 조금씩 편해지기 시작하는 데엔 며칠이 걸렸다. 사진 속 여름의 모습과 달리 내 방은 겨울이 되어 굉장히 춥고 꿉꿉해졌지만 그럼에도 나만의 방이라 좋았던 것 같다.
3일 내리 마트만 갔고 물건을 구매하면서 지금까지 관성적으로 살아왔구나 느꼈다. 어디선가 선물로 들어온 치약, 가족이 사둔 샴푸를 사용했던 내가 프라이팬부터 세제, 밥그릇까지 직접 구매했다. 사본 적이 없으니, 딱히 선호하는 브랜드도 없었고, 글자도 읽지 못하니 번역기를 돌려 저렴한 걸로 골랐다. 사는 동안 굳이 사지 않아도 되는 건 최소화했다. 곧 떠날 거라는 생각이 항상 마음속에 있었기 때문이다.
첫날엔 빈 방에 혼자 누워 이곳에 왜 왔을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3층에서 승희를 처음 만나고 마음이 놓였다. 그제야 예쁜 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릴 가톨릭 대학교는 프랑스의 가톨릭 대학교 중 가장 크다. 그래서인지 학생의 도시라는 별명이 있었는데 학기 시작부터 끝까지 온갖 파티들이 있었다. 내가 다니는 단과대 말고도 다른 단과대 파티와 기숙사 파티도 갔다. 그리고 친구의 생일파티도! 사실 파티는 몇 번 가다가 안 갔다.
사실 파티보다 매일매일을 재밌게 했던 건 요리였다. '떼주모'라는 이름을 지은 기숙사 친구들과 추석, 김장 등 자체 이벤트를 만들며 놀았다. 내 생일 때는 쿠키를 만들고 싶다고 했고 모두가 흔쾌히 동참해 주었다. 기숙사에 머무는 날도 매일 즐겁게 놀다 보니 친구들 없이 혼자 기숙사에 있어야 하는 날에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릴에선 몰랐는데 한국에 돌아와서 매일을 자극적으로 살았다는 걸 가장 크게 느꼈다. 친구들과 밥 해 먹고, 같이 공부하고, 옆방 가서 누워있던 사소한 일조차 엄청 큰 자극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기숙사를 골라서 떼주모를 만났고, 덕분에 교환학생을 잘 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교환학생을 간다 했을 때 한국인보다 외국인들과 놀라는 조언을 여럿 들었다. 그렇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적은 고학년임에도, 나와 다른 걸 배우고, 다른 성향을 가진 한국인 친구들을 만나서 시야를 더욱 넓힐 수 있었다.
교환학생에서 꼭 외국인 친구들을 많이 만나야겠다고 다짐했었다. 현지 친구들은 어떻게 노는지 궁금했고, 그걸 느껴볼 수 있는 기회였다. 11월에는 한 달 내내 여행 계획 없이 외국인 친구들만 만났었다.
월드컵의 분위기를 현지에서 느껴봤던 게 가장 먼저 생각난다. 월드컵에 관심도 없었기 때문에 겨울 월드컵이 뭐가 특이한 건지도 몰랐지만 친구들을 따라 축구에 관심을 갖게 됐다. 프랑스 - 영국, 프랑스 - 모로코, 프랑스 - 아르헨티나 결승까지 세 경기를 모두 프랑스에서 봤다. 친구들과 나가서 길거리에서 모르는 프랑스인들과 경기를 보기도 하고, 친구네 집에 가서 케밥을 시켜 먹으면서 보기도 했다.
결승 진출이 확정됐을 때 릴 그헝플라스에 간 게 가장 재미있었다. 프랑스의 애국가라는 '라 마르세예즈(La Marseillaise)'를 부르는 군중 사이에서 폭죽을 터뜨리고, 차를 막고, 카트를 타고 달리는 애들을 봤다. 혼돈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이게 월드컵 결승 가는 나라의 분위기구나 느꼈다.
친구들과 기숙사 TV룸에서 함께 본 결승은 아르헨티나한테 졌지만 가장 좋아하는 선수인 음바페의 월드컵 역사 두 번째 결승 해트트릭을 볼 수 있어 좋았다. 2018년 월드컵 송이라는 'Ramenez la Coupe à la maison'도 친구가 알려줘서 질리도록 들었고 (나의 최애 프랑스 노래가 됐다), 파리 KFC에 가서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게임 카드도 받았다. 5개월 비자로 프랑스 시민이 되어 월드컵 결승 분위기 느껴보기 성공!
친구들 집에도 자주 갔던 것도 기억난다. 이 날은 크리스마스 전에 모여 시크릿 산타를 했는데 나는 목도리를 선물하고, 연필 세트를 선물 받았다. 시크릿 산타는 우리나라의 마니또랑 이름만 달랐지만, 사이트에 나의 취향과 취미를 설명하고, 위시리스트를 담아놓는 기능이 있었다. 조금 더 디지털 했지만 마니또의 아날로그함은 덜 한? 느낌이었다. 쓸데없는 선물을 주는 트렌드가 생긴 우리나라와 다르게 되도록 필요한 것들을 선물했던 걸로 기억한다.
또 친구들과 놀면서 하나 느낀 점은 친구의 친구와 노는 게 쉬웠다. 사실 한국에서도 그럴 순 있지만 나는 그런 편은 아니었는데 친구가 직장 친구와 놀기로 한 보드게임 카페에 데려간 적도 있고, 일본인 친구들 기숙사에 가서 요리를 해 먹으면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도 했다. 근데 이건 교환학생이라는 특수한 상황도 조금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느낀다.
처음 친구가 집에 초대해 준 건 11월이었다. 친구랑 같이 퇴근하는 친구 동생을 기다려 차를 타고 마트에 갔다. 배고프냐고, 아페호(apero)를 먹을 수 있겠냐고 물어봐서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싶다고 했다. 맨 왼쪽 아페호 사진 가운데에 있는 게 건조시킨 고기 샤퀴트리이다. 샤퀴트리와 감자칩, 방울토마토와 함께 아페호 타임을 갖고 하클렛을 먹었다. 하클렛은 감자 + 치즈 + 햄의 조합! 맛이 없을 수 없다.
검색해 보면 라클렛(raclette)이라고 쓰여 있는 글이 많은데 프랑스의 R 발음은 ㅎ 소리가 나기 때문에 하클렛, 아페호라고 발음하면 된다. 프랑스어는 너무 어렵다 ㅜ.ㅜ
또 두 번째로 초대를 받은 건 크리스마스 때였다. 친구가 크리스마스 때 약속 없으면 오라길래 또 놀러 갔다.
청바지를 입고 있는 나에게 친구 동생이 드레스를 빌려줬다. 드레스 코드도 중요하구나 느낀 순간이었다. 이날은 친구의 할아버지를 처음 뵈었다. 프랑스 문화를 느껴보는 것도, 친구 할아버지와 대화하는 것도 다 너무 신기했다. 월드컵 얘기도 하고, 와인 얘기도 하고 언어가 완전히 통하지는 않았지만 이런저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한 가지는 선물을 챙겨가야 하는 걸 몰랐다! 저녁 식사를 초대받은 거라 고민하다가 화이트 와인을 사갔는데, 크리스마스에는 트리 밑에 선물을 두고 서로에게 선물을 교환하는 문화가 있었다. 친구와 동생이 나에게 선물을 준비해 줘서 나는 너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대신 못 챙겨줘서 아쉬운 마음에 한국에 돌아와서 고른 선물을 택배로 보냈다.
이날은 처음으로 유럽의 긴 식사 시간을 직접 경험했다. 내가 소떡소떡을 요리하기도 하고, 할아버지가 만들어오신 요리를 먹기도 했다. 계속해서 나오는 음식에 마지막엔 배가 불러서 더 먹지 못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마지막은 꼭 먹어야 하는 '부쉬 드 노엘'로 장식했다. 내 인생 역대 최장 저녁 식사 시간, 5시간 달성!
마지막은 프랑스의 새해 문화, '갈레뜨 데 루아'이다.
'갈레뜨 데 루아'는 프랑스에서 새해를 맞이해 먹는 디저트이다. 자기가 먹은 갈레뜨 조각에 도자기 인형이 들어있으면 그날 왕이 되는 거라고 배웠다. 나는 첫 번째 친구들이 사 온 갈레뜨를 먹을 때 왕이 되었고, 두 번째에 친구들이 직접 만든 갈레뜨에선 왕이 되지 못했다. 이런 도자기 인형을 찾는 일이 프러포즈할 때 반지 숨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막연히 해외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을 코로나 때문에 뒤늦게 이뤄냈다. 한 학기면 아쉽지 않게 놀다 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더 놀다 오고 싶었다. 비자 기간 끝나기 열흘 전에 돌아오는 비행기표를 샀는데 꽉 채울걸!! 그런 생각을 했다.
릴에 있을 땐 작은 행복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떼주모 친구들과 프랑스어 공부를 한 이후로 pourquoi pas? 만 말해도 칭찬을 받았다. 해리 스타일스가 나오는 <돈 워리 달링>을 혼자 보러 가서 영어 대사와 프랑스어 자막으로 영화를 전부 이해했을 때 뿌듯함을 느꼈다. 프랑스인 친구들이 사진 찍어주실래요? 맥주 하나 주세요 등 식당이나 현지인에게 직접 말해볼 수 있게 도와주기도 했고, 망한 프랑스어 쪽지시험에 그림을 그려서 내면 교수님이 귀엽다고 joli!라는 코멘트를 달아주시기도 했다. 이 모든 게 행복이었다.
그뿐만 아니다. 떼주모 친구들이 오늘 메뉴 누가 골랐냐고 칭찬해 주면 더 신나서 요리를 했고, 친구들과 일본어로 소통하며 처음에 카와이, 키레이 밖에 모르던 내가 일본어 천재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일본어 훨씬 많이 늘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너무 기뻤다. 온갖 작은 것에도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이었다.
귀국 직전엔 일분일초가 아까워서 아침부터 나가서 로컬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내가 미래를 그려야 할 시기라 그런지 아침에 여기 앉아 있는 사람들은 뭐 하고 살까? 궁금했다. 하루는 친구와 카페에 앉아 한국에서 중요한 기준이 유럽에선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은 여전히 한국의 기준에 맞춰서 살고 있는 내가 있다.
코로나로 인해 2020년 교환학생 파견이 취소된 후 마지막 기회라며 2022년 릴에서 다시 한번 도전했다. 여름보다 추운 날에 우울한 날도 많았지만 월드컵을 즐겼다. 이 기숙사를 골라서 잊지 못할 친구들을 만나고, 2022년 2학기에 파견돼서 한국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돌아온 프랑스인 버디를 만났다. 만약 타이밍이 하나라도 어긋났다면 지금은 전부 다른 모습일 것이라는 무서운 상상을 한다.
한 때의 추억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고들 말한다. 정말 좋은 추억이지만 나는 릴에서의 추억에 머무르고 싶지 않다. 이 추억을 원동력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언제나처럼 무모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