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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삐 Dec 15. 2021

레몬이와 주먹이

2. 희생

 센터로 돌아온 우석이는 밤낮으로 정성껏 벌레들을 간호하였다. 구토와 식은땀을 흘리는 등 밤새도록 앓는 그들을 센터 안 병원에 데려가고 싶었지만 의사들은 이미 퇴근했던지라 우석이 혼자 해결해야만 했다. 다행히 우석이는 벌레들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시험까지 쳤기에 응급처치는 가능했다. 그는 12시간 동안 벌레들에게 아무것도 먹이지 않은 상태에서 얼음조각을 조금씩 핥게 했고 그 결과 이틀 동안 사경을 헤매었던 벌레들은 조금씩 눈을 깜빡이며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정신이 좀 들어요?"

"누구시죠... 혹시 저희들 죽은 건가요...?"

"아니요, 여러분들은 잘 버텨주어 살았어요. 저는 토성 유기충 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우석입니다. 해왕성에서 바람에 휩쓸려갈 뻔한 여러분들을 이곳으로 데려왔어요."

노란색 벌레는 멍한 표정으로 우석이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눈에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집도 날아가고... 남은 게 아무것도 없어... 어떻게 모은 건데..."

"누나, 괜찮아! 지금 우리가 살아있는 게 중요한 거지, 안 그래? 우석님, 고맙습니다."

노란색 벌레는 소리내어 하염없이 울었다. 노란색 벌레를 달래주던 초록색 벌레는 당황하고 있던 우석이를 데리고 옥상으로 갔다. 초록색 벌레는 우석이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인사를 했고 차분히 그들의 사연을 이야기했다.

"우석님, 우석님도 위험했던 상황 가운데서 저희 남매를 구해주셔서 정말로 고맙습니다. 제 이름은 주먹, 저희 누나 이름은 레몬이에요. 누나가 지금 저렇게 울고 있는 건... 평생을 고생하여 마련한 모든 것들이 다 한순간에 없어졌기 때문이에요."

"누나가 8살이고 제가 5살 때 저희 부모님은 블랙홀에 빠져 사라지셨어요. 혹시 '부부 벌레 블랙홀 사건' 기억하세요? 뉴스에서도 나왔었는데.'

"네, 기억나요. 그때 블랙홀에 빠질뻔한 아기 벌레를 어른벌레 2마리가 구하고 대신 빠졌잖아요. 혹시 주먹씨 부모님이세요...?

"맞아요. 그때 빠지려던 아기 벌레가 누나였고 어른벌레 2마리가 저희 부모님이세요. 저희 가족이 함께 은하수로 놀러 가던 중, 제가 애착 인형을 떨어뜨렸데요. 그때 인형이 블랙홀 가까이로 흘러갔고 누나는 인형을 잡으러 더 가까이 가다 블랙홀에 빠지려 했어요. 뒤늦게 그걸 발견한 부모님께서 누나를 꺼내시고 빠져나오지 못해 갇히게 되었죠."

"그럼 그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 두 분이서 산거예요? 친척들은 없었나요?"

"다행히 조부모님 집으로 가게 되었어요. 하지만 제가 18살 때 두 분 다 돌아가셨어요. 그 후 둘이서 살게 되었는데 누나는 본인과 저를 먹여 살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좋아하던 공부를 포기하고 자퇴했어요. 그 후 하루도 쉬지 않고 돈 될만한 일들은 전부 했어요. 다른 벌레들이 독하다고 할 정도로 말이죠. 그리고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고 모두 저금했어요. 게다가 투자에는 눈이 어찌나 밝던지... 적금은 이자가 얼마 안된다며 틈틈이 주식 공부도 열심히 해서 돈을 엄청 불렸죠. 그러다 주택청약에 당첨되었고 그간 모은 돈으로 대출 없이 집을 샀어요. 저희는 이제 행복할 일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집과 모든 재산들이 해왕성에 휩쓸려가는 바람에 모든 것을 잃었으니 누나가 저럴 수밖에 없는 거죠..."

"그렇겠네요... 이해가 되어요. 한순간 모든 것을 잃은 그 기분, 저도 알아요... 그나저나 레몬씨 정말 대단한데요?! 어린 나이에 쉽지 않았을텐데..."

"그렇죠. 제 학비, 생활비, 용돈 전부 누나가 벌어서 줬고 어디가서 꿀리면 안된다며 항상 좋은 것만 입히고 먹였어요. 정작 본인은 길거리 음식 하나 먹는 것도 엄청 고민했으면서 말이에요. 그러니 제일 존경하는 벌레가 누구냐고 물으면 저는 항상 망설임 없이 저희 누나라고 이야기해요. 항상 고맙죠, 누나한테."

 그의 말을 들은 우석이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리고 지난날 자신을 돌아보았다. 태어났을 때부터 부족함 없이 자랐던 그는 그 모든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을 포함한 친구들 전부 부모님의 노력, 사랑을 당연시 여기며 받았지만 사실 그 모든 것은 당연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과연 자신이 누리던 모든 것을 다 누릴 수 있었을지 생각해봤을 때 절대 아니라고 우석이는 생각했다. 그제야 그는 진심으로 가족들에게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날 밤, 집을 떠나 단 한 번도 가족에게 전화하지 않았던 우석이는 주먹이와 레몬이가 자는 것을 보고 조용히 옥상으로 나왔다. 그리고 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걸었다.

"엄마...?"

"우석이니? 너 이제껏 어디에 있었던거야? 살아있다니 그걸로 되었다."

"저 토성 유기충센터에서 봉사하는 중이에요. 저는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마요."

"어렸을 때부터 벌레를 좋아하더니 결국 그곳으로 갔구나."

"그러게 말이에요. 저기 엄마..."

"응?"

"고마워요, 낳아주고 키워주셔서."

"...."

"가족들한테도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꼭 직접 말하고 싶지만 다들 바쁘니까..."

"그... 그래... 우석아, 고맙다. 연락해줘서 고맙고... 이런 말 해줘서 너무 고마워."

수화기 너머로 떨리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은 우석이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연락 한 번 안한 아들이 밉지도 않았는지 고맙다는 말만 하는 어머니를 보니 그동안 이 말을 한 번도 하지 못한 것에 미안함을 느낀 것이다. 그는 목이 부풀어 오름을 느꼈고 곧 눈물이 차올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참 동안 정적이 흐르고 그는 편지와 연락을 자주하겠다는 약속을 하며 전화를 끊었다. 차갑고 무거운 우주의 밤공기에 우석이는 미안한 마음을 털어내었다. 그리고 다시 레몬이와 주먹이 곁으로 가 서류준비를 하고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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