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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꽃 Dec 06. 2022

굿바이 층간소음 맘충

이제 드디어 단 한 번의 주말만이 남았다. 남들은 다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주말. 하지만 나에게 1년 반째 주말은 내 가슴을 답답하게 조이고 꽉 막히게 짓누르는 신호탄이었다. 듣는 주말 서운할까 싶어 제대로 정정한다. ‘주말’ 이 잘못이 아니라 위층 층간소음 유발자 ‘맘충’ 이 정확한 원인이다. 이제 이 ‘맘충’과 천장을 공유할 주말이 단 한번 남았다는 것이다. 며칠 후면 우리 가족은 앞 동으로 이사를 한다. 




부동산 거래 절벽인 이 시점에 더구나 지금 살고 있는 집이 팔리기도 전에 앞 동의 집을 사버렸다. 그만큼 간절했고 그만큼 괴로웠다. 이 말로 다 표현이 될까. 아파트에 처음 살아보는 것도 아니고 그동안 조용한 이웃들만 만나 온 것도 아니다. 이건 단순한 층간소음 문제가 아니었다. 아직도 소름 돋던 그날의 기억들이 생생하다. 큰 아이 1학년 때부터 같은 반 학부모로 알고 지내온 언니에게서 걸려온 전화가 이 불쾌한 사건의 시작이었다. 통화내용인 즉 그 당시 3학년인 우리 딸이 1학년인 위층 맘충 딸을 몇 차례에 걸쳐 밀어 넘어뜨렸다는 것. 언니의 작은 아이와 맘충 딸이 같은 반이었고 나랑 언니가 아파트에서 함께 다니는 모습을 자주 본 맘충이 언니를 통해 나에게 일방적인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학교폭력으로도 끌고 갈 사안이지만 위아래 사는 입장에서 일단 개인적으로 잘 풀고 싶다며 나랑 통화를 원한단다. 1퍼센트의 혹시나 하는 걱정 따윈 개나 줄 수 있었던 게 위층이 이사 온 건 고작 1년도 안된 시기였고, 무엇보다 그 시기는 코로나로 서로 대면하는 일조차 극도로 꺼리던 상황인지라 내가 아이 등교 때마다 엘리베이터에 사람 없는 것 확인하고 하루하루 데리고 다녔었다. 


또한 마스크로 꽁꽁 싸매고 다닐 때여서 원래 알던 지인이 아닌 이상 새로운 사람은 서로의 이목구비를 확인할 수 도 없는 시기였다. ‘그래 일단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하는지 들어나 보자’ 하는 생각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에 혈압 올라 쿵쾅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최대한 차분한 척 전화를 걸었다. 아, 그리고 통화 전 녹음 버튼 누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정말 차분했던 것 같기도 하다. 


고상한 척 수화기 너머로 자기 딸 말만 늘어놓는 맘충은 언니에게 전해 들은 대로 상대방 말은 전혀 들을 자세가 안 되어 있었다. 무슨 상황 설명을 하던 이미 자기 딸 말이 100퍼센트 맞고 우리 딸은 1학년 애를 밀어

다치게 한 ‘가해자’였다. 침착하고 치밀한 내 성격을 십분 발휘할 때다. 일단 그쪽 이야기를 다 들어 보자가 목적이었고 정말 다 들었고 다 녹음해두었다. 참 우스웠던 건 1차 주장에 의하면(1차가 안 맞으니 2,3차 주장이 새롭게 등장한다) 돌봄 교실에서 아랫집 언니가 자기를 몇 번이나 밀어 멍들게 했다는데(우리 아이는 그 아이 얼굴조차 모르는데 아랫집 언니가 확실하다고 주장한단다) 유감스럽게도 3학년은 돌봄 대상자가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는 단 한 번도 돌봄을 해본 적이 없다. 학교에서 간식시간이라는 표현이 적용되는 것은 돌봄 교실뿐인데 맘충은 그 시간이 돌봄 시간인지도 모를뿐더러 몇 학년까지 돌봄 대상인 지조차 알아보지도 않고 내게 학폭을 들먹였던 것이다. 

이러한 내용들을 내가 친절하게 하나씩 알려줬더니 이젠 갑자기 돌 봄시 간이 점심시간으로 바뀐다. 그쪽 담임선생님을 통해 돌봄이 아닌 점심시간에 그랬다고 하길래 그럼 이번에도 친절히 알아봐 드리리라 마음먹었다. 우리 아이의 담임선생님께 코로나로 세분화된 학년별 아이들의 점심시간과 1학년과 3학년의 점심시간 접점 가능성이 있는지 파악을 부탁드렸다. 

이번에도 역시나 맞지 않는 소리였고, 이젠 방과 후 시간에 그랬다는 3차 주장이 등장했다. 앞뒤 시간에 받는 것으로 파악된 방과 후 수업 담당 선생님께 사정을 말씀드리니 오히려 펄쩍 뛰시며 특히 1학년은 수업 전후 

교실 문밖에서 다 살펴보시기에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하셨다. 도울 일이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시라는 

응원은 참고 있던 내 눈물샘 스위치를 건드렸다.



 

정작 피해자라 주장하는 이가 지금까지 말한 이 모든 사항들을 관계자에게 제대로 한번 알아본 적조차 없이 오로지 자기 아이 말만 믿고 우긴다는 사실이 참으로 비상식의 결정체였다.

아직도 이런 사람들이 있어 ‘맘충’ 이란 신조어가 생겼나 보다. 

뭐 하나 빠뜨리지 않고 샅샅이 다 조사하고 맘충에게 최종 전화를 걸었다. 좋은 말이 나갈 리 만무했다.

 “그동안 제대로 알아보셨어요? 그랬더니 맘충은 입에서 온갖 오물 덩어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야, 너 나보다 나이 어리지?” “야 이 무식아, 너 왜 나 피해 다녀?” “너 정신병이냐?” “그래 나 증거 없어, 

증거 없다고 퉤!” “너희 가족은 거짓말을 밥 먹듯 하냐?” “너는 거짓말하는 네 딸 말 믿어, 나는 내 딸 말 믿을 테니까” “누구든 내 새끼 건드리면 피를 볼 줄 알아” 그 맘충이 나한테 쏟아낸 오물 덩어리들 중 일부다. 

처음엔 지금껏 살면서 이런 수준의 말은 들어본 적이 없어서 꽤나 충격이었다. 그리고 아이를 놓고 거론한 일들에 피를 본다는 표현은 그냥 지나갈 일이 아니었다. 




마음을 다스리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이사 왔을 때부터 자정까지도 시끄럽던 위층에 참다 참다 딱 한번 관리실을 통해 컴플레인했던 일이 이 모든 일의 발단이 아니었나 싶었다. 그때부터 갖고 있던 일방적인 불만을 참 지저분하게도 부풀렸구나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 당시 경비실 인터폰에 대응하던 그 집 태도가 아직도 생각난다. 자정인 시간에도 인터폰에 대고 “어디서 우리 집이라고 했냐고요?” “제대로 알고서 인터폰 하세요” 라며 오히려 적반하장 고함치던 목소리.




남의 집에 이런 오물을 투척해놓고도 몇 달이 지나도록 제대로 사과 한마디 없던 맘충에게 참다 참다 남편이 전화를 했다. 처음에는 여전히 적반하장이더니 그럼 피를 본다는 그 말에 있어서는 법적으로 한번 검토해보겠다고 하니 갑자기 무슨 법까지 이야기하냐며 자기가 그 부분에 있어서는 죄송하다고 갑자기 꼬리를 내렸다. 

하지만 사람은 쉽게 안 변한다는 말이 맞는 듯싶다. 그 뒤로도 잠깐 잠잠하더니 경찰이 왔다갈 정도로 다시금 층간소음을 일으키고 술 먹고 객기 부리는 일이 다반사다. 고의적으로 하루 종일 쿵쿵대고 아이들 자고 있는 시간에 맘충이 직접 몸소 뛰어다니며 소음을 유발한다. 




벌레를 상종하며 내 아이에게 향해야 할 에너지를 그쪽으로 쏟고 사는 일만큼 시간 낭비하는 일이 또 어디 있을까 싶어 그래서 우리는 앞 동을 사버린 것이었다. 

처음에는 너무 화가 나고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에 우는 내게 딸이 그랬다. “엄마 나는 괜찮아, 내가 친구를 

괴롭힌 것도 아니고 다치게 한 것도 아닌데, 내가 진짜 안 그런 거니까 괜찮아.” “엄마도 신경 쓰지 말고 울지도 마.” 이러면서도 위에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는 안타는 녀석을 위해 이번에는 걸어 다녀도 되는 저층에서 살기로 했다.  

사계절 나무가 보이는 새로운 집에서 우리는 서로의 나무가 되어주며 지금처럼 사랑하며 살 것이다. 그 무엇보다 행복한 이사다. 우리 가족은 파랑새를 찾았다.

굿바이 층간소음 맘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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