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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꽃 Dec 06. 2022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30년 만의 이사다. 결혼 후 처음 내 집 장만해 자식들 낳아 기르고 30년 만의 이사다. 

오래된 집이다 보니 엄마는 겨울에도 반팔 입고 지내는 아파트로 이사를 꿈꿔 왔었지만 아빠에겐 늘 어림없는 소리였다. 그런 대쪽 같은 아빠가 자주 넘어지기 시작했다. 밥상머리  앞에서도 항상 호랑이 같던 아빠가 젓가락질이 안 되니 이빨 빠진 호랑이가 따로 없었다. 즐겨하던 술에 한껏 취해도 가사 한번 틀리지 않고 열창하던 아빠가 일상 대화조차 힘들게 되었다. 아빠는 심혈관(스탠트 삽입술) 시술 후 부작용이라고 했지만 병원에서는 파킨슨 쪽 진단을 내렸다. 아빠와 우리 가족의 일상이 흔들리며 버거워진 것이 어느덧 7년째다. 




청천벽력 같은 진단명에 슬퍼하기도 잠시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를 돌보듯이 우리는 아빠를 그렇게 매일 눈으로 마음으로 따라다니기 바빴다.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는 수차례 넘어지면서 결국 제대로 걷게 되지만 아빠는 넘어지며 다치다가 결국 더 못 걷게 되었다. 집안에서 아빠가 움직일 때면 온 식구의 눈이 다 아빠를 향했고 언제 넘어질지 몰라 늘 대기조처럼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집에서도 이 정도인데 바깥에서는 어땠을까. 


초등학생 때부터였을까. 큰 트럭을 운전하는 아빠가 어린 마음에 창피하면서도 눈이 오거나 비가 오면 늘 걱정이 되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추운 겨울 분위기 좋은 따뜻한 카페에 앉아있으면 괜한 죄책감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러다 이제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아빠가 아프자 남편과 아이들과 제대로 여행 한번 가본 적이 없다. 아픈 아빠와 그 옆을 지키는 엄마가 마음에 걸려 나 혼자 여유를 부리는 게 사치 같았다. 이런 속사정을 전해 들은 지인은 “너 참 대단한 딸이다, 누가 보면 아빠가 너한테 엄청 잘 한 줄 알겠다.”  “나는 설사 아빠가 잘했다 하더라도 너처럼은 못할 것 같아.” 




그렇다. 아빠는 지금껏 내게 다정하거나 내 속을 편하게 해주지 않는 존재였다. 자주 만취되어 퇴근하는 아빠가 무서워 어릴 땐 책상 밑에 숨어있었고 커서는 공부하다가도 자는 척을 했다. 술이 아니어도 어색하고 서먹한 부녀 사이였다. 하지만 어떤 의지가 발동해서인지 내가 먼저 아빠에게 늘 다가갔던 것 같다. 관계 개선을 위해 어릴 때부터 왜인지 홀로 노력했었다. 그래서 그나마 오늘날 이 정도 관계가 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엄마보다 더 의지하는 딸.



늘 내게 불안을 선물해주던 아빠가 요양병원으로 이사를 했다. 엄마는 자연스레 그렇게 바라오던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애착을 갖던 집에서 떠나야만 했던 아빠도 홀로 아파트로 옮겨야 했던 엄마도 그리고 나도 너무 슬펐다. 왜 늘 이렇게 마음 아픈 일들만 나누는 가족이 된 걸까. 왜 나는 단 한 번도 투정이란 걸 부려보고 살지 못하는 걸까. 


온갖 생각들이 싸놓은 이삿짐처럼 머릿속에서 뒤엉켜 돌아다닌다. 오늘도 요양병원에서 수많은 문자를 내게 보내는 아빠, 그런 아빠를 걱정하는 엄마를 보며 한번 꿈꿔 본다. 

걱정거리 말끔히 털어낸 가벼운 이삿짐 싸서 아빠 엄마 두 분 함께 살 새집으로 이사하는 꿈.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간절하면 내 소원도 들어주실까. 

아이들 선물 목록에 살짝 포개 내 마음속 소망도 산타할아버지께 전해 본다.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게 선물을 안주신대요.” 울지 말고 오늘도 힘내 K장녀!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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