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둘을 키우며 늘 친정 엄마의 손길이 고팠다. 결혼 후 타지에서 첫 아이를 출산하고 육아하면서 그동안 장녀로 참아내고 살아왔던 고달픔이 보태져 우울증이 찾아왔다. 우울증에 강박증이 더해져 내 아이의 모든 것은 내 손을 거쳐야만 안심이 되었다. 내가 아프면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매사가 조심스러웠고 그만큼 예민해져 갔다. “그래도 괜찮아.”라는 친정엄마의 아니 어느 어른의 따뜻한 한마디만 들을 수 있었다면 그 정도로 날 선 모습의 초보엄마가 되지는 않았을 텐데.. 1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잠이 없던 큰 아이 모유수유를 하며 엄마 생각이 간절했지만 그런 마음을 나눌 만큼 엄마는 내게 살뜰하진 않았다. 늘 챙길 건 빠뜨리지 않고 챙겨주는 엄마였지만 우리 사이엔 무언가 알 수 없는 거리가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어릴 때부터 모든 일을 스스로 해오던 나는 엄마에게 한 번도 어리광을 부려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육아를 핑계로 적어도 내가 먼저 SOS를 치는 일은 없었지만 엄마가 먼저 그 힘듦을 고됨을 알아주길 내심 바랐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데.. 참고 견디는 나는 그 좋아하는 떡 하나 못 얻어먹고 둘째까지 묵묵히 키워냈다.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이 된 아들 친구 엄마를 보면 늘 부러운 마음이 든다.
친정엄마와 같은 아파트에 살며 주중엔 친정엄마와 함께, 주말에는 남편과 함께 육아하는 그 엄마는 무슨 복일까 싶다. 워킹맘이라는 이유로(뭐 모녀사이에 그 이유가 중요하겠냐마는) 아이들 케어며 매끼 식사준비까지 친정엄마가 해준다는 말을 들으니 유치하지만 질투심이 올라오기도 했다. 그럴 땐 괜스레 이른 나이에 얻은 관절염으로 아픈 손가락을 주물러댔다.
매일 아들과 함께하는 등굣길에 뵙는 아들 친구 할아버지는 하루도 빠짐없이 손자를 챙겨 다니신다.
저 연세에도 손자 등하교까지 책임지는 건강을 부러워하며 병원에 계신 친정아빠가 눈앞을 가린다.
아이들을 맡기는 사치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당신 스스로 걸을 수만 있다면 대화를 나눌 수 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루에도 수없이 생각한 게 어느덧 8년째다. 아빠 같은 남편은 부모에게도 부모 역할을 하고 살아온 나를 늘 안쓰러워한다.
어린아이가 친구 장난감을 부러워하듯
마흔이 된 아이 둘의 엄마가 다른 부모를 부러워한다.
그 부모의 배경이 아니라 그저 부모의 ‘든든함’.
단 한 번이라도 ‘나도 든든한 엄마아빠가 있어’, ‘실수해도 괜찮아, 쫄지 마!’
그 포근함을 느껴보고 싶다는 세상 가장 어린 마음을 잠시나마 품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