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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꽃 Jun 21. 2023

내 남편은 청년농부

1학년 아들과 하굣길 아이스크림을 사러 들른 마트에서 반가운 과일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스크림 고르느라 정신없는 아들을 부른다. 세민아, 복숭아다!

백도 8개 12,000원 다른 상품은 황도 6개 10,000원. 나도 모르게 복숭아 개수, 종류와 가격을 머릿속에 담고 있었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던가. 대충 복숭아만 봐도 비품인지 정품이지 알아보겠다. 복숭아집 며느리로 시집을 갔는데 정신 차려 보니 남편이 1만 평의 복숭아 농사를 짓는 청년농부가 되어있으니 말이다.




결혼하고 첫 아이를 임신해 밤에 종종 남편과 운동 삼아 산책을 나가곤 했었다. 타지로 시집와서 외로워하는 나를 위해 다정한 남편은 퇴근 후 넥타이를 벗어던지고는 트레이닝복으로 환복 후 많은 시간을 함께 해주려 참 많이도 노력했다. 생각해 보니 매일 출근 때 하던 넥타이가 이제는 특별한 날에만 챙겨하는 물건이 되었고 퇴근 후 환복해 입던 트레이닝복이 이제는 남편의 출근룩이 되었다.

유난히도 밤공기가 따뜻했던 10년 전 어느 날 산책길, 남편의 꿈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최소 5년 후부터 그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싶다던 사람은 그해 겨울 그렇게 청년농부가 되었다. 남편은 자신의 꿈을 위한 첫걸음이었지만 사실 그 꿈을 인정해 주고 지지해 주기까지 나의 첫걸음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인 건 지금까지 성실한 농부의 삶을 살아오신 시부모님이 든든히 버티고 계셨고 무엇보다 남편의 꿈에 내가 손을 보태지 않아도 된다는 조건(?)이 당연히 받아들여졌다. 남편은 농부도 하나의 직업이기에 농사라고 해서 아내가 남편 일을 함께 해야 한다는 마인드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너는 너의 꿈을 펼치고 살라고 늘 응원해 주는 MZ세대(나이가 걸리지만 의미부여를 위함)식 청년농부다.




꿈을 향해 피땀눈물을 흘리며 달리다 보니 어느덧 10년이다. 세 살 꼬마는 12살 사춘기 소녀가 되었고 아들은 올해 1학년이 되었다. 지난 10년간 우리 가족은 제대로 된 여행 한번 가지 못하고 남편은 농장에서 나는 가정에서 그렇게 사계절을 채워가고 또 채워갔다.

봄꽃 향기 가득한 4월부터 한여름 8월까지는 월화수목금금금, 주말은 없다.

복숭아 농사를 짓는다고 하면 여름에만 바쁘고 나머지 계절은 한가하겠다고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과정 없이 이뤄지는 결과는 없는 것처럼 한 여름 구슬땀 흘리며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 봄, 가을, 겨울을 얼마나 열심히 살아내는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그 덕분에 사춘기 딸에게도 1학년 아들에게도 노력하지 않고 저절로 얻어지는 것들은 없다고 잔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엄마가 되었다.




일주일 전 올해 첫 수확한 복숭아를 들고 남편이 퇴근했다. 우리 입맛대로 먹으라고 물복(물렁한 복숭아), 딱복(딱딱한 복숭아) 골고루 한 상자를 채워왔다.

남보다 빨리 복숭아를 맛보고 평가하는 시간, 복숭아집 남매들의 특권이다.

덩치도 크고 인상도 약간(?) 험하지만 연애 때부터 내 눈에는 참 순해 보였던 남편이다. 그때는 뽀얗고 보드라웠던 손이 많이도 까매지고 거칠어졌다. 내 손도 혼자 아이 둘 키워내고 살림해 내느라 많이도 못생겨지고 이른 나이에 관절염까지 생겼다.

올해 첫 수확한 복숭아를 먹으며 우리 둘은 서로의 손을 말없이 주물러줬다. 아무 말하지 않아도 그냥 마음이 포근해졌다. 약간 눈시울도 붉어졌다면 오버일까 하하.

올해 수확도 마지막 열매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당신이 피땀 흘려 키워낸 정성이 이번에도 행복으로 돌아올 수 있기를 우리 가족 모두 늘 응원합니다.

내 남편 청년농부 그리고 달콤 복숭아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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