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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힘행 Oct 09. 2021

제목이 붙으면 의미를 가진다

사진에 제목 붙이기


"인어 공주"


사진을 찍는 것은 모든 사진 과정 중, 딱 반이다. 

찍은 사진을 보정을 하는 것이 큰 일이다. 어떤 사진의 스스로 그러한 색깔과 빛을 입혀주는 작업이 보정에 해당한다. 경우에 따라서 사진 속 장면은 사진가의 멋에 따라 과장을 해야 제 맛이 난다. 

보정의 과정이 끝나면 제목을 붙이게 되는데 사진을 찍었을 당시의 사진가의 직관에 의해 어느 정도는 사진 속에 내재된 제목이다.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제목을 붙이면서 비로소 그 사진이 완성이 된다. 


대학 다니던 시절, 게시판에 졸업 전시회 포스터가 다닥다닥 붙을 즈음이면 미대에 아무런 연고도 없으면서 무작정 구경 갔었다. 실제로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았기도 했거니와 예술에 대한 허기감을 해소하고자 궁여지책 삼은 필살기였다. 알 수 없는 난해한 설치 작품들 사이로 걸으며 예술지망생들이 던지는 어설픈 화두를 타산지석으로 만들어 볼 요량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다고 느낀 것이 전시 작품 가운데는 '무제'라는 작품이 허다했다. 

왜 작가는 작품에 제목을 붙이지 않았을까? 

어떤 사진작가들은 관객이 생각할 여지를 빼앗고 싶지 않아서라고 말들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주장에 동의를 못하겠다. 


나는 내가 붙인 제목을 통해서 보는 이가 내가 만난 세상의 문고리를 열어젖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담이 모든 사물의 이름을 붙여 그 사물의 이름이 되었다고 하듯이, 아담이 여느 사물의 이름을 붙여준 순간, 그 사물은 비로소 존재의 정체성을 부여받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끼리도 이름을 불러주면 정이 생긴다.

작가는 작품에 이름을 붙여서 관객이 사유를 시작할 수 있도록, 그 시작을 도울 수 있는 제목을 붙여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의 사진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밴쿠버의 명물이었던 흰돌고래, 블루가를 찍은 사진이다.

밴쿠버 스탠리 공원 안에 있는 수족관에 이 블루가가 살았었다. 

수족관에서 이 존재를 보면서 심해 속에 저와 내가 하나가 되어 잠영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그날 너무나 단순한 그의 꼬리지느러미를 내 사진기 속에 담았는데 집에 가져와서 보면서 나도 모르게 인어를 상상했다.


사진 프레임 밖으로 찍히지 않은 장면을 상상할 수 있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사람들이 사진을 볼 때 사진 밖으로, 사진에 표현되지 않은 장면을,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머릿속으로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사진은 사진가가 만난 세상이고, 사진의 제목이 그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고리라면 문을 열고 들어가서 만나는 관객이 보는 세상은 사진가가 보았던 그것과 완전히 다르다.


나는 현실을 찍었던 사진이 비현실적 세계를 상상할 수 있게 만드는 사진을 찍고 싶다.

"인어공주"는 내가 마치 인어공주를 만났던 것 같은 착각을 만든다. 

블루가의 꼬리지느러미만을 사진 속에 담았기 때문에 그와 같은 상상의 여지를 만들어준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풍경이 만드는 풍경"



별 볼 일 없는 사진도 제목을 잘 만나면 한번 더 봐줄 만하게 될 수가 있다. 

이름을 잘 지어서 성공하는 경우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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