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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힘행 Oct 09. 2021

물건의 의미

"무슨 짓이야?

"엄마, 나는 정리 좀 하려고 한 건데?"

"놔둬! 나는 빈 공간을 보는 게 싫어. 벽이 휑하니 비어 있으면 보기 싫어. 방에 물건들이 가득했으면 좋겠다고!"


내가 거실 찬장에 물건들을 꺼내 정리하려 했을 때 엄마는 언짢은 목소리로 소리치셨고, 내 손에 들려있던 머그잔을 뺏어 가셨다. 엄마 입장에서는 당신의 공간을 누군가가 휘저어 놓은 것이었다. 이민하고 9년 만에 한국에 들어가서 내가 고작 한 짓이 엄마 물건 버리기였다니… 


9년이나 엄마와 함께 하지도 못했으면서 나 대신 엄마 곁에 있었던 고마운 존재들을 치워 버리려 했구나... 엄마의 어떤 찻잔은 결코 찻잔으로 사용된 적이 없다. 엄마는 항상 같은 머그잔에 커피를 드신다. 예쁜 컵이 있는데도 엄마가 사용하는 컵은 못난이 컵이다. 언젠가는 예쁜 잔들도, 못난 그릇들도 모두 나에게 물려주시겠지… 그런데 찬장 속에 고이 모셔 둔 예쁜 잔을 보면 엄마를 떠올릴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아니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커피를 타 잡수셨던 빛바랜 못난이 잔이 엄마를 추억할 수 있는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물건 버리기로 말다툼을 벌인 후, 나는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물건들이 그 존재의 가치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뭐든 잘 못 버린다. 마음 한 편에 미니멀리즘을 동경하면서도 물건들을 내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건을 함부로 버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를 찾는다면 절약하는 습관 때문인데 이 또한 내가 하찮은 물건까지도 아끼는 마음이 있어서다.  물건을 버리지 않는 이유는 물건을 사지 않기 위함이다. 물건을 버리면 언젠가는 필요에 의해 물건을 사기 마련이지 않은가. 큰딸이 입던 옷을 네 살 아래인 둘째 딸이 입을 수 있다. 그래서 큰딸 옷은 약 4년간 보관된다. 큰아들 옷을 세 살 아래인 작은아들이 물려 입을 수 있으므로 역시, 약 3년간 보관된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 옷을 사지 않고 보관하고 있다가 때에 따라서 꺼내 입힌다. 큰애가 입은 옷을 둘째가 입었을 때는 옛날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그 옷을 입고 어디에 갔었지… 아이들은 자기가 입은 옷을 언니가 입었다고, 형이 입었다고 사진을 보면서 찾아낸다. 똑같은 옷인데 어울리는 녀석이 있고, 안 어울리는 녀석이 있는 것도 재밌다. 캐나다에서는 날씨가 맑은 주말이 되면 차고 문을 열고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을 내놓고 가라지 세일을 한다. 이민 초기에는 호기심으로 가던 길을 멈추고 구경하곤 하였다. 얌전히 물건을 사용하고 포장 박스와 사용설명서를 고이 간직했다가 단 몇 푼이라도 받고 되파는 사람들이 신기하였다. 나는 가라지 세일을 사랑하여 교회에서 열리는 바자회나 마을회관에서 열리는 큰 규모의 야드 세일 날짜를 챙겨 놨다가 찾아갔다. 장롱 속에 수년 동안 처박혀 있다가 햇빛 구경을 하는 물건들이 기지개를 펴는 듯했다. 때로는 박물관이나 골동품 가게에서나 만날 것 같은 증조할머니 적 물건들도 선보인다. 구경도 재미나게 하고 기념이 될 만한 물건도 건진다. 한 번은 88 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가 박혀 있는 머그잔을 발견하고는 보물을 찾은 것처럼 집으로 소중히 가져왔다. 먼지  앉지  않게 덮어  놓을 수 있는 뚜껑까지 있어 커피를 따르고 뚜껑을 덮어 남편 책상 위에 갖다 놓으면 내가 남편을 융숭하게 대접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가 물건을 아끼는 또 다른 이유는 환경을 걱정하는 마음을 깔고 있어서다. 우리 애들이 두 번씩을 열심히 입고 나면 더 이상 물려줄 수가 없게 될 만큼 옷이 허름해진다. 내가 지지리 궁상맞게 이렇게 하는 이유는 단지 돈을 아끼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나는 물건을 새로 사는 것에 매우 부정적이다. 요즘 파는 물건은  대부분 품질이 형편없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흔한 표현을 붙이지 않아도 가격 대비 물건의 가치는 몹시 떨어진다. 싸게 만들어서 싸게 팔고, 사람들은 몇 번만 사용하고 쉽게 버린다. 나는 그렇게 하는 것에 반대다. 물건들이 내 손에 머물러 있는 동안 한 번 더 사용하고 아껴 써서 그 물건이 오롯이 제값을 다 치르게 하고 싶다. 새 물건이 계속 소비되어,  또다시 새 물건이 만들어지는 물질만능주의 사회 구조에 한 젓가락만큼도 보태기 싫다. 나는 미약하지만 지구 환경을 보호하는 데 일조하고자 한다. 내 취미 생활 중에 사진 앨범 꾸미기가 있다. 여기서도 나는 환경을 생각하여 스티커를 사서 붙이지 않고 신문에 끼여 들어오는 전단지나 잡지에서 필요한 사진을 오려서 사용한다. 스티커를 사지 않으니 돈 안 써서 좋고, 잡지도 재활용하니 일석이조다. 일회용 용기에 아이디어를 얹어서 공예품으로 다시 태어날 때도 뿌듯하다. 일회용으로 만들어졌을지는 몰라도 한 번만 사용되고 버려지지 않고 다시 대접받는 물건들이 대견스럽다. 가급적 새 물건을 사지 않은 채 살고 싶다. 최소한의 물건으로 살면서 이 땅에서 살아 있는 동안 최소한의 쓰레기만을 남기고 싶다. 


우리가 물질 만능주의 시대를 관통해서 살고 있지만 물건을 아끼는 사람들의 작은 마음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 있다. 비싼 물건만 귀한 물건 취급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물건의 용도로서 대우를 받는다는 생각이 든다. 잘난 사람만 대접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사람이라서 귀한 것처럼 말이다. 시집올 때 지인들이 결혼 축하선물로 준 물건들을 1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그중에 엄마가 준 ‘키친아트’ 냄비 하나는 내가 즐겨 사용하는 물건 중에 하나다. 튼튼하던 녀석이었는데 어느 날 뚜껑 손잡이가 헐거워지면서 결국엔 손잡이가 나사를 붙들지 못하고 국 속으로 빠뜨렸다. 여러 차례 뚜껑 손잡이를 돌리다가 홧김에 뚜껑 손잡이를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이후에 뚜껑 손잡이 없는 ‘키친아트’는 더 이상 내 요리에 동참하기 힘들어졌고, 싱크대 구석에 쳐 박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키친아트와 완전히 이별하지 않는 이유는 중고가게에만 가면 냄비 뚜껑도, 뚜껑 손잡이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종류 물건의 부품이 거의 다 있다 해도 무방하다. 이 동네 중고가게에 없다면, 저 동네 중고가게에 있을 테니까. 한 번은 전자레인지에 찜질팩을 데우고 아이한테 가져다 달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아이가 찜질팩을 꺼내다 그만 전자레인지 안에 들어있던 회전 유리가 같이 딸려 나와 와장창 깨져버렸다. 회전 유리 없이 쓸모없는 전자레인지를 버려야 하나 고민하다가 우연히 들른 중고가게에서 각종 회전 유리만 모여있는 선반을 발견하고는 쾌재를 불렀다. 우리 집 전자레인지에 맞는 회전 유리를 두 번 교환한 후에 찾아내었다. 두 번의 수고는 했지만 잘 맞는 회전 유리를 장착하고 문제없이 작동되는 전자레인지를 버리지 않아도 되어서 너무 좋았다.  


물건에 대한 의미는 내가 소중히 여기는 마음의 정도에 따라 존재의 가치보다 좀 더 깊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생명이 들어 있지 않은 물건에 의인화를 하는 것이 생뚱맞을지도 모르지만 내 눈에 그렇게 비친다. 브랜드 이름표를 단 물건들은 부자 부모를 만난 금수저처럼 보인다. 쇼윈도에 진열된 채 수개월이 지나도 팔리지 않는 물건들은 백수처럼 보이고, 가끔 길을 지나다가 공터에 버려진 가구와 살림살이를 발견하면 그 옛날 고려장으로 버려진 노인들처럼 보여 쓸쓸하다 못해 처량해 보인다. 하다못해 자동차도 표정을 짓고 있다. 운전연수를 하고 있는 자동차 뒤태를 보면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는 게 느껴지고, ‘우리 집 애는 학교에서 우등생입니다’라는 스티커를 붙인 차 뒷모습은 어쩐지 눈은 치켜뜨고, 턱은 쳐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신호 대기에서 일부러 엔진 소리를 한껏 부풀린 스포츠카 옆이라도 잠시 멈춰 설 때면 어김없이 까칠한 반말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가까이 오지 마, 다쳐!”라고.  물건들은 물건 이상의 의미가 있다. 물건은 단지 생활 속에 소비재로써만 존재하지 않고 내 인생의 추억 저장고로도 존재한다. 할 수만 있다면 인간의 손으로 만든 물건들을 사용하고 싶다. 기계가 만든 물건이 아닌 내 손으로 물건을 만들어 쓰고 싶다. 고장 난다면 고쳐서 쓰고 싶다. 내 손때가 묻은 물건들이 나는 정겹다. 엄마의 공간에서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었던 것들, 일상에서 나를 도와 열 일했던 물건들에 애착이 간다. 정들어 버린 존재들을 나는 함부로 내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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