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된 덫'과 ‘안정된 보호망' 사이
베이비 박스에 제 아이를 두고 가는 이가 있고, 그 아이를 입양 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버린 아이를 다시 찾으러 가는 엄마와 그 뒤를 쫓는 사람들을 그린 영화가 프랑스 유명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우리는 좀처럼 하지 않는 ‘입양’ 이야기를 일본인 감독의 입을 빌어 연출한 영화라고 하니 그 만듦새가 궁금하기도 합니다.
세 살 때 입양 간 나라 미국에서 삼십 년을 살고서도 불법체류자로 강제 추방되는,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안토니오 르블랑 씨가 주인공인 영화 <푸른 호수>는 달랑 4,655명이 극장을 찾았을 정도로 우리에게 불편한 주제가 바로 '입양'입니다.
두 영화는 모두 이 땅에서 제대로 품어주지 못한 생명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돌볼 수 없는 생명, 탄생부터 외면받아야 하는 생명의 배경에는 느닷없이 엄마가 되어 혼자서 아이를 키워야 하는 ‘홀맘’들의 삶이 있습니다.
가영 씨는 혼자서 네 살 된 아이를 키우는 스물두 살 엄마입니다. 지방 선거가 있던 날, 가영 씨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기저귀가 좀 필요한데 구할 수 없을까요?”
“기저귀 떼지 않았어요? 갑자기 웬?”
“아이가 병원에 입원했어요.”
한참을 말없이 있던 가영 씨가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공휴일이라 어린이집에 가지 않았던 아이는 방안에 굴러다니던 작은 콩알만 한 것을 가지고 놀았는데, 그게 그만 콧구멍으로 들어가 버렸고, 빼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더 안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어쩔 줄 몰라 무작정 택시를 타고 병원에 왔다는 겁니다.
“그게 대체 뭐였어요?”
“건전지래요. 아주 작은…”
“그런 게 아이 노는 방 안에 있으면 안 되지...”
가영 씨는 또 말이 없습니다. 홀맘들을 지지하고 돕는 봉사자가 기저귀를 구해서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가영 씨는 경계선 지능 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가영 씨 어머니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영 씨의 아이도 나이에 비해 언어발달이 많이 늦습니다. 말수가 적은 엄마와 살아서 그런가 생각해 봅니다.
가영 씨 가족은 장애인 등록을 꺼립니다. 어려서부터 놀림을 받아온 기억이 너무 많아서 ‘판정’까지 받아 버리면 정말 그대로 장애인이란 '낙인'이 찍힐까 봐 두려워서 그렇답니다. 가영 씨는 특성화 학교를 1학년까지만 다녔습니다. ‘도움반'에서는 배울 수 있는 게 없었고, ‘일반반'에서는 수업을 따라갈 수가 없었습니다. 가영 씨는 ‘느린 학습자’였지만 그 속도에 맞게 배움을 제공하는 곳은 없었습니다. 그런 학생에게 따라붙는 놀림과 소외, 그리고 차별이 추워서 스스로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학교를 그만두고 일 년쯤 지난 어느 날, 옆구리 통증이 심해서 병원을 찾은 가영 씨는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육 개월이나 되었고, 결국 홀로 출산하고 나서야 아이 아버지 집안에 연락했습니다. 돌아온 대답은 ‘우리도 아이 키울 형편이 안 되니 알아서 키우던지 입양을 보내든지’였습니다. 그리고 그때 들은 말은 아직도 상처입니다. ‘우리 아인지 어떻게 아냐’는 말이었습니다.
가영 씨는 혼자서라도 아이를 키워보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렇게 가영 씨는 경계선 지능 장애를 가진 미성년 미혼 엄마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런 가영 씨와 인연이 시작된 것은 밥차에 나와서 저녁밥을 먹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하던 다혜 씨 덕분이었습니다.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친구가 있는데, 너무 힘들어해요. 같이 가서 봐주시면 안 될까요?”
가영 씨의 집은 연립주택 이층. 빛 한 줌 날아오지 못하는 큰 창과 환기창도 없는 화장실이 있는 집이었습니다. 돌도 채 안 된 아이와 살아가는 공간이라고 믿고 싶지 않은 곳이었습니다. 비릿하고 퀴퀴한 냄새에 집안으로 발을 들여놓기도 꺼려졌습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집안 여기저기에 뭉쳐있고 나뒹굴고 있는 쓰레기를 골라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기저귀는 빨래 더미에서도 나왔고 아이 이불속에서도 나왔습니다. 기저귀는 갈아만 주면 되는 건 줄 알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냄새의 원인을 제거하고 나서 옷과 이불을 모아 빨래방으로 가져갔습니다. 우리 사회가 만든 수많은 ‘방’ 중에서 빨래방이 가장 유용한 방이라는 생각이 든 날이었습니다.
그렇게 청소로 시작된 가영 씨네와의 인연은 여전히 청소가 가장 중요합니다. 미혼모로 사회적 부조를 받고 있지만 청소와 빨래, 식사 같은 사적인 영역에는 한계가 있기에 일상의 사소하고 반복적인 돌봄은 공백으로 남는 실정입니다.
가영 씨는 잔소리가 늘어나는 엄마와 떨어져서 혼자 살고 싶어 했고, 결국 지원을 받아 작고 오래된 아파트를 구했습니다. 분가를 한 지 일 년이 안 된 어느 여름, 가영 씨가 다시 엄마 집에 와서 지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일주일이 넘도록 아파트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기에 어찌 된 일이냐고 물어보니 ‘벌레가 너무 많아서 무서워서 못 가고 있다’는 대답이었습니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나타나는 선한 이웃들과 함께 세간살이를 모두 밖에 내어놓고 완벽한 ‘박멸’ 프로그램을 가동한 후에야 가영 씨는 아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스무 살이 넘고 나서부터 오랫동안 연락이 되지 않던 다혜 씨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그냥 ‘일이 좀 있었다'는 말로 이년 여의 공백에 대한 알리바이를 때우고 나더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이혼은 어떻게 하는 거예요?”
“이혼은 결혼을 해야 할 수 있지.”
“농담 아녜요.”
“엄마 아빠 이혼하신대?”
“아니요. 저요.”
“나 참… 그사이에 결혼이라도 한 거야?”
“예. 그렇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제 이혼할 수밖에 없어요.”
“결혼한 지 얼마나 되었는데?”
“한 여섯 달쯤…”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던 와중에 연락이 없는 것도,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것도 무소식이 희소식이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지내왔는데 좀 느닷없는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그간 사정이 궁금해서라도 일단 만나 보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다혜 씨의 고등학교 자퇴 동기인 친구가 열여덟 살에 아이 엄마가 되었습니다. 어린 엄마는 더 어린아이 아빠의 무책임과 폭력에 지쳐 아이를 두고 집을 떠났습니다. 다혜 씨는 전부터 알고 지내던 아이 아빠 부탁으로 이따금 아이를 봐주었습니다. 그러다가 아이와 정이 들어서 별생각 없이 결혼식 없는 혼인신고를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물어봐도 신통한 답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냥 아이와 아이 아빠를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합니다. 그때는.
그렇게 ‘시집’으로 들어가 아이를 돌보고, 일 나가는 시부모 식사도 챙기면서 몇 달을 살았는데, 스무 살이 된 아이의 아버지는 책임감보다는 박탈감이 커서 술만 먹고 들어오면 폭력을 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미 가정 폭력의 상처로 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었던 다혜 씨는 '남편'의 폭력만큼은 받아들이기 힘들어 이혼을 결심했고, 결국 법률지원 단체의 도움으로 이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스무 살이면 이미 다 알고도 남을 '결혼'에 대한 사회적 맥락 이해가 부족해 보이는 다혜 씨에게 조심스럽게 ‘웩슬러 지능검사’를 제안해 보았습니다. 다혜 씨는 역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전에 같은 검사를 제안했던 활동가의 말로는 '판정' 이후에 내려질 ‘낙인’을 두려워했다고 합니다.
경계선 지능 장애가 의심되는 나 홀로 청춘들은 밥차의 주요 고객입니다. SOS 상황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좀 상식적이지 않았다거나, 일의 결과를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경우들은 일단 경계선 지능 장애가 아닌가 의심하게 됩니다. 조심스럽게 ‘검사’를 제안하지만, 대부분은 강한 거부의 입장을 보입니다. 그러다가 위태로운 상황들이 반복되면 그제야 검사를 받아보겠다고 입장이 바뀌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인구 대비 10% 정도에서 경계선 지능 장애가 나타난다고 하는데, 이이들은 언어장애나 자폐성 장애를 동반하고 있어야 장애 인정을 받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복지 혜택을 받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장애인이라는 낙인을 두려워하는 이들은 진단조차 기피하게 되고, 복지 지원이 절실한 이들은 생존과 존엄을 위해 낮은 지능을 과장해야 하는 것도 현실입니다.
이들은 사회의 다양하고 복잡한 맥락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여 결국 복지부가 아니라 법무부의 소관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전화 협박 사기 전달, 무지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임신과 출산, 영유아 유기, 아동학대, 무임금 감금 노동, 보도방 성매매는 이이들을 절벽 아래로 밀어버리는 우리 사회의 ‘인정된 덫’입니다.
* 청소년 SOS공감행동 비지트에 알음알음 후원을 원하시는 분은 인터넷 신문 다시 편집부(02-332-2693)나 다시배움 교육원(02-332-2692)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