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다시 뉴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다시 Sep 30. 2022

[그때 그 노래] #11

죽고 싶진 않아 - Reflections of My Life

경쾌한 장조의 멜로디에 힘찬 타악기 반주까지 곁들여지는 노래라면 으레 내용도 밝고 희망찰 것이라고 예상하게 된다. 그런데 의외로 가사가 슬픈 경우가 있다. 1969년 베트남 반전 운동이 한창이던 때 젊은 두 뮤지션이 만들어 발표한 Reflections of My Life도 밝은 멜로디와 슬픈 가사가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빚어내는 노래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7wO5G9b3fGw


햇빛은 달빛으로 바뀌고(The changing of sunlight to moonlight)

거기 비친 내 삶의 모습들이(Reflections of my life)

오, 얼마나 내 눈을 가득 채우는지(Oh, how they fill my eyes)

곤란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안부 인사를 건네고(The greetings of people in trouble)

거기 투영된 내 삶의 모습들이(Reflections of my life)

오, 얼마나 내 눈을 가득 채우는지(Oh, how they fill my eyes)


무심하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세상만사는 변한다. 눈부시게 빛나던 태양이 어느새 저물어, 햇빛은 달빛에게 자리를 내어주었다. 그 모습이 꼭 스러져가는 자신의 인생 같다. 저마다 곤란한 일을 겪고 있는 중에도 잘 지내냐고 안부를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 또한 자신의 모습을 본다.


노래 가사에 흔히 쓰이지 않을 ‘reflection’이라는 단어가 이 노래에서 주제를 드러내는 단어로 선택된 점이 눈에 띈다. ‘반사’나 ‘반영’이라는 뜻인데, 물이나 거울 같은 것에 ‘비친 모습, 상(像)’, 또는 ‘묘사’라는 의미가 될 때도 있고, 거울에 비친 것처럼 꼭 닮은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니 ‘reflections of my life’는 ‘어딘가에 비친 내 인생의 모습’이다. 노래의 주인공은 햇빛이 달빛으로 변하는 광경(시간의 흐름과 변화)과 어려운 처지에도 안부를 물어오는 사람들의 모습(다른 이들의 인생)에서 그와 다르지 않은 자신의 삶의 여러 모습을 보고 있다.


‘reflection’은 어떤 것에 대한 ‘생각, 의견’ 또는 ‘심사숙고’, ‘성찰’을 뜻하기도 하는데 이때는 심사숙고할 대상 앞에 주로 on을 붙여, ‘reflections on human destiny and art(인간의 운명과 예술에 대한 성찰 - 출처: 옥스퍼드 사전)’와 같이 쓴다. 또  어떤 것이 반영된 결과로 일어나는 일을 뜻하기도 한다. ‘A healthy skin is a reflection of good health in general(출처: 옥스퍼드 사전).’이라고 하면 ‘건강한 피부는 전반적으로 좋은 건강 상태를 반영한다,’ 즉 몸이 건강하면 그 결과로 피부도 건강해진다는 의미이다.


오, 나의 비통함(Oh, my sorrows)

슬픈 앞날들(Sad tomorrows)

내 집으로 다시 데려다줘(Take me back to my own home)

오, 나의 울음(Oh, my crying)

나는 죽어가고 있는 것 같아(Feel I'm dying, dying)

내 집으로 다시 데려다줘(Take me back to my own home)


노래 속 주인공은 희망을 노래해야 마땅할 듯한 힘찬 멜로디에 맞춰 ‘오, 나의 비통함이여’라는 의외의 말을 소리 높여 외친다. 지금도 너무 슬프지만 내일도, 그다음 날도 여전히 슬픈 날들이 이어질 것만 같다고 노래한다.


스코틀랜드의   밴드 마말레이드((Marmalade)  포드(Dean Ford) 20대의 새파란 청년이던 1969년에 같은 멤버였던 주니어 캠벨(Junior Campbell)  노래를 함께 만들어서 발표했다. 1969년은 미국에서 어떤 해였나? 1955년에 시작한 베트남 전쟁이 계속 이어지자 1965 미국이 군대를 파병했고, 기성세대의 통념을 부정하는 히피족이 생겨났고, 곳곳에서 반전 시위가 일어났다. 1969년에는 히피족이 주도하는 우드스톡 페스티벌이 처음 열렸다. 그러는 와중에도 과학기술은 부지런히 발전해 인류 최초로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하기도 했다.

이 노래의 주인공도 그런 격동과 혼란 속에서 부대끼고 있다. 너무나 힘든 나머지 죽을 것 같다고 느끼며 이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외친다. 그토록 그리운 ‘집’은 무엇을 의미할까? 말 그대로 어떤 이유에서든 떠나와 있는 자신의 집일 수도 있고, 행복하던 어린 시절, 잔인한 전쟁이 일어나기 전의 평화롭던 시절, 히피족이 주장하는 ‘자연’ 상태의 이상향 등 여러 가지로 해석해 볼 수 있다.


나는 바꾸고 있어, 정리하고 있어(I'm changing, arranging)

바꾸고 있어(I'm changing)

모든 것을 바꾸고 있어(I'm changing everything)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Everything around me)


무언가를 가지런히 배열하고, 정돈하고, 어떤 일이 진행되도록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는 것이 arrange라는 동사이다. 주인공은 삶의 끈을 완전히 놓아버리려고 주변을 정리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래도 살아가기 위해 다시 심기일전하고 있다는 의미일까?


세상은(The world is)

힘든 곳이야(A bad place)

힘든 곳이지(A bad place)

살기 끔찍한 곳(A terrible place to live)

오, 하지만 나는 죽고 싶지 않아(Oh, but I don't want to die)


답이 이어진다. 혼자서 오롯이 감당해야 할 삶의 비애가 너무나 버거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존재가 자기 혼자뿐인 것은 아님을 알기에, 죽고 싶지 않다. 끔찍할 정도로 살기 힘든 세상일망정, 내 삶의 모습도 다른 이들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알기에.


https://youtu.be/Dn9bAvWS4RU


딘 포드가 젊은 시절에 마말레이드 멤버들과 함께 부른 이 노래를 편곡해 2014년 68세에 혼자 부른 버전을 보면 왠지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핑 돌기도 한다. 그가 살았을 세월이, 그 세월 동안의 희로애락이 이 한 곡에 잔잔히 배어나는 듯하다. 떠나왔던 집으로 다시 돌아갈 준비를 이제야말로 다 마친 사람처럼 여유로우면서도 쓸쓸한 표정과 목소리가 마음을 울린다.


2018년 12월 31일, 딘 포드의 딸은 ‘온화하고 훌륭한 아버지’였던 딘 포드가 파킨슨병의 합병증으로 73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음을 알렸다.


다시뉴스 필진 최주연


매거진의 이전글 [고구마 세 개] #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