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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Sep 09. 2022

[고구마 세 개] #8

인연의 무게 1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지난해 여름 바다가 있는 도시로 이사 간 지수는 그러고는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그 울음의 속내를 어떻게 가늠이나 할 수 있겠나 싶어서 아무런 대꾸의 말도 내놓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습니다.

건강은 괜찮으셨던 것 같은데 갑자기?
어제... 술 먹고 주무시다가 혼자...

고독사.


아버지의 부고를 전하는 짧은 지수의 말을 듣는데 손톱 거스러미처럼 까칠한 것이 생겨났습니다. ‘돌아가셨다’는 말. 그냥 ‘죽었다’고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지수는 분명하게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그 모든 원망을 다 흘려보낸 것인지 지수의 목소리는 슬펐고 울음은 길었습니다.


엄마도 형제도 하나 없는 지수는 별도 절차 없이 그다음 날 바로 아버지를 보내야 했습니다. 아직 스무 살이 안 된 청춘이 홀로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시련이었지만 더 어린 지수가 겪어야만 했던 날들은 이 이별보다 더 잔혹한 것들이었는지 모릅니다.


가출팸 5인방, 밥차 탐색 오다


가을 밥차는 늘 상쾌한 저녁 공기와 포근한 노을을 품고 시작합니다. 교복 상의 위에는 카디건을 걸치고 교복 치마 아래로는 체육복을 입고 밥차에 들르는 학생들은 재빠르게 라면이나 카레밥을 먹고 학원 시간에 맞추어 떠나지만, 학교도 학원도 갈 일이 없는 ‘학교 밖’ 들은 좀 더 늦은 시간에 좀 더 느긋하게 어슬렁거리듯 기웃거리며 텐트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합니다. 


밤공기가 소슬해지기 시작하던 그날 그렇게 다섯 인연이 처음 밥차를 찾았습니다. 이 인연이 그날 이후로 주욱, 사오 년을 더 이어갈 거라고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때는.


생소한 공간이 불안했는지 계속 두리번거리며 텐트 안을 훑고 있던 남자 1, 의자에 엉덩이를 비스듬히 걸치고는 한껏 거만한 품새로 의자에 몸을 넌 남자 2, 작은 체구에 눈매나 입매나 머리 손질한 매무새가 아주 매끈하여 단단한 차돌 같아 보이는 여자 1, 길고 말라서 걷다가 허물어질 것 같이 야리야리하고 눈만 커 보이던 여자 2, 그리고 제일 어려 보이면서 말투가 고분고분한 여자 3이 일행이었습니다. 여자 1은 여기가 뭐 하는 데냐고 반복해서 물었고 여자 2는 학교 안 다니는 애들이 와도 되냐고 물었습니다. 그이들은 아마도 이 공간이 자기네를 허용하는 곳인지 밀어내려는 곳인지 궁금했던 것 같습니다. 


대충 간을 다 보았던지 여자 1이 담배 피우러 가자고 선동하자마자 탐색 중이던 나머지 일행들이 일제히 텐트 밖으로 나갔습니다. 이들에게 밥차가 있는 밤의 공원은 흡연에 대해서만큼은 해방 구역입니다. 배고프면 뭐 좀 먹고 가도 된다는 말을 귓등 너머로 흘려보낸 다섯 아이들은 공원의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날의 활동을 돌아보는 모임에서 이 일행을 유심히 살펴본 활동가는 여자 3이 나가면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고 기억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이는 집 나온 중3 신분, 지수였습니다.


팔 개월 만에 다시 만난 지수


지수가 다시 밥차를 찾은 것은 첫 방문 이후 꼭 팔 개월 뒤입니다. 이 5인방은 그동안 ‘패밀리’를 구성했습니다. 다들 이렇게라도 뭉쳐서 살 수밖에 없는 처지였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보호시설을 나와서 줄곧 떠도는 삶을 산 지은, 고등학교를 자퇴하면서 보호시설을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은수, 아버지의 폭력으로 집에 있을 수 없어서 쉼터 살이를 하던 지수까지 비슷한 처지의 세 사람이 그중 나이가 많았던 선우가 마련한 월세 방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흔히 말하는 ‘가출팸’을 꾸린 것입니다. 그래 봤자 선우가 스물, 은수가 열아홉, 지은이는 열여덟 그리고 막내 지수가 열여섯이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들은 ‘당당한 알바가 아니면 하지 않고, 서로 챙겨주면서 살기’로 가훈을 정하고 그들만의 가정과 가족을 만들었습니다. 그 와중에 지수의 성장 내력을 다 듣게 된 은수가 어떻게 해서라도 도와야겠다는 생각으로 일행들과 함께 다시 밥차를 찾아온 것입니다. ‘밥차에 가서 상담이나 한번 해보자’는 은수 말에 지수는 ‘그동안 상담은 여러 곳에서 받아 보았지만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었다’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사정을 또 이야기하는 일이 싫다고 거부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상황이 너무 안 좋아. 이런 거는 우리가 도와주기 어려우니까 밥차 쌤한테 이야기라도 해보자.”라고 은수가 설득했다고 합니다.


지수는 중3 때 집을 ‘탈출’한 이후에 청소년 쉼터에서 지내다가 인문계 여자고등학교로 진학은 했지만, 한 학기 만에 학교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실은 그가 살아야 하는 현실에서 너무 멀리 있었습니다. 상담을 하는 중에 지수는 시선을 어디에 둘지 몰라 계속 고개를 숙이며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과 감정을 말하는 것을 매우 힘들어했습니다. 


누군가의 ‘생의 고백’을 듣는 순간은 서로에게 새로운 길이나 다리를 내는 것에 견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경험입니다. 말하는 사람에게도, 듣는 사람에게도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이제부터 이어질 이야기는 그렇게 단락 단락 늘어놓은 지수의 고백을 시간 순서대로 이어서 재구성한 그의 어린 삶입니다.


엄마를 모르는 생의 고백


엄마는 이름도 얼굴도 몰라요. 아주 어려서 이혼했데요. 초등학교 때까지 할머니랑 살다가 아빠랑 살다가 하는 걸 반복했어요. 친척 집에서 살기도 했는데 아빠가 자주 술 먹고 친척들하고 싸우고 하니까 친척들이 ‘네 딸은 네가 키우라’며 쫓아낸 적도 있었어요. 아빠는 원래 안 그런 사람인데, 술만 먹으면 화를 내고 싸우고 하는 일이 많았어요. 대학에 보내주지 않았다고 할아버지 원망을 하는 걸 자주 들었어요. 엄마 이야기도 많이 했는데 좋은 이야기는 하나도 없어요. 엄마 때문에 아빠 인생이 망했다는 말은 아빠가 술만 드시면 저를 앉혀놓고 하던 소리예요. 초등학교 일 학년 때부터 그랬어요. 낯선 동네나 산길 같은데 저 혼자 떼어놓고 간 적도 있었어요. 술 취하면 자꾸 물건 부수고 저를 때리는 걸 본 이웃 아주머니가 신고해서 아동보호 쉼터로 가게 되었어요. 저는 쉼터가 너무 힘들었어요. 아이들도 많고 다들 시끄럽고 거칠고 그래서 무서웠어요. 집에 가고 싶다고 많이 울었어요. 심리치료를 받는 조건으로 집에 돌아왔는데, 아빠는 병원 치료나 상담 같은 것들은 기관 사람들이 저하고 아빠를 떼어놓기 위한 것이라며 병원에 보내주지 않았어요.


혼자 살아가야 하는 청소년들과 가족 이야기를 하다 보면, 열에 일고여덟은 엄마에 대한 기억이 없습니다. 엄마 얼굴은 본 적이 없고 이름도 모른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경우를 자주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기억을 되살리고 싶지 않아서 의도적으로 엄마에 대한 기억을 회피하려는 것이겠거니 했는데, 삼사 년을 만나면서 확인해 보면 실제로 모성과 관련한 어떤 기억도 저장되어있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성격과 삶을 결정하는 애착의 경험이 전혀 없다 보니 이이들의 눈빛은 쉽게 흔들리고 마음은 한여름에도 얼음으로 서걱일 수밖에 없는 ‘경계 밖의 삶’으로 운명 짓는 것 같습니다. 가정이 깨어지는 원인으로 빈곤, 질병, 가정 폭력, 도박과 방치 등의 사유들이 언급된 지는 오래되었지만, 빈곤 가정을 안전한 둥지로 보호하려는 사회적 노력은 여전히 국가로부터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가정 폭력은 피해 아동이 성장해 나가면서 가해의 강도도 비례해서 늘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수의 경우도 그랬습니다. 차 문에 손가락이 끼여 손가락 성장판이 깨진 적도 있었는데,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아버지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 끌려다니며 발길질까지 당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고도 술에서 깨어나면 미안하다고 하고 용돈으로 무마하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뒤늦게 정신질환 진단을 받았지만, 치료 대신 술을 마셨고, 그때마다 공포의 시간은 온전히 지수 몫으로만 남게 되었습니다.


※ 다음 회에 지수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 청소년 SOS공감행동 비지트에 알음알음 후원을 원하시는 분은 인터넷 신문 다시 편집부(02-332-2693)나 다시배움 교육원(02-332-2692)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다시뉴스 필진 라다키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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