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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시 Feb 10. 2023

[고구마 세 개] #12

영준이의 학교 생활 2

과수원이 있는 낮은 언덕에 자리한 C시 ‘정보통신학교’는 하얀 담장으로 둘러싸인 성채를 닮았습니다. 신분증을 맡기고 출입 신청을 하다가 문득 ‘나는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고픈 아이들 밥 한 끼 먹여보자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그 밥 먹은 아이들을 만나러 소년원까지 오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서울로 돈 벌러 간다고 떠난 영준이가 왜 여기에 있는지도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았습니다.


두껍고 높고 단단한 껍질 같은 담장 너머로 들어가 대기실에 앉았습니다. 작은 책상 위에 면회자가 수용자에게 ‘영치’ 해 줄 수 있는 음료와 간식을 신청하는 용지가 있었고, 벽면에는 ‘바깥 음식’도 배달해 먹을 수 있다는 설명 아래 인근 식당 전화번호가 적힌 안내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배달 가능한 음식이라고 해야 짬뽕, 짜장면, 볶음밥, 육개장이 전부였지만 나중에 설명을 들어보니 ‘바깥 음식’은 그나마 성장기 청소년 입소자들을 위해 ‘학교’에서 특별히 배려해 주는 예외적인 조치랍니다.


밥 같이 먹던 사이


영준이는 무얼 먹고 싶어 할까를 잠깐 생각하는 중에 한 ‘선생님-법무부 교정국 소속 공무원인데 ‘학교’라는 특성상 영준이도 이분을 ‘선생님’으로 불렀습니다-’이 까까머리를 한 영준이와 함께 등장하였습니다. ‘선생님’은 일 년이 넘도록 면회하러 오는 사람 하나 없던 영준이에게 누가 면회를 왔을까 궁금해서 함께 나왔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영준이와 ‘어떤 관계’인지 물었습니다.

“아, 예... 그냥 ‘아는 어른’들입니다. 한 때 같이 밥 나누어 먹던 사이입니다.”

영준이는 짜장면을 주문했고, 짜장면을 먹는 영준이 얼굴은 뽀얗게 새살이 오른 데다 눈빛은 한결 부드러웠습니다. 길 위에서 떠돌다 소년원이나 구치소, 교도소까지 흘러 들어가게 된 어린 청춘들을 처음 면회하러 올 때마다 보는 모습입니다. 이 친구들은 담장집 밥 몇 달 만에 살 오른 애벌레처럼 토실하고 부드러운 존재로 변해있습니다. 난생처음 나라로부터 일정한 잠자리, 하루 세끼의 식사를 공급받으며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된 이 친구들은 백 일도 안 되어 돌봄 없는 길살이에 찌든 몸을 탈피합니다. 영준이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자유 박탈을 대가로 생존을 지원받는 구조라니, 이들이 담장집에 오기 전에 먹고 자는 문제가 해결되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먹고 자는 문제만 해결되면 이들 인생에 별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은 영준이로 인해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습니다.


삼시 세끼보다 더 중요한 것?


영준이는 이 안에 사는 친구들이 힘들어하는 것 일 순위는 ‘가고 싶은 곳을 갈 수 없다’는 이동의 구속과 ‘핸드폰 없이 살아야 한다’는 소통의 불모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잘 데 없고 굶더라도 일단은 나가겠다고 할 걸요. 여긴 자유가 없잖아요. 자유가 없는데, 핸드폰이 없는데, 그건 사는 게 아니죠. 대신 핸드폰 주고 주말에만 외출시켜 주면 여기서 그냥 산다고 하는 애들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전 다시는 여기 안 올 거예요. 그래서 기술을 배우고 있어요. 나가서 돈부터 벌어야 여기 안 와요!”

영준이가 받은 보호처분은 10호입니다. 14세 이상 19세 미만 청소년에게는 지은 잘못의 무게에 따라 보호처분 1호에서 10호까지 등급이 나뉘어 처분되는데, 가장 높은 10호는 2년 동안 소년원 살이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이야 보호처분이지만 자유 구속이라는 점에서 보면 감옥살이의 미성년 버전일 뿐입니다. 어떤 아이들은 꼬박꼬박 보호관찰소에 찾아가서 정기적으로 신고해야 하는 4호나 5호 처분보다 아예 화끈하게 소년원에서 한 달 동안 때우고 나가는 8호 처분을 더 반기는 경우도 있다는 이야기를 대수롭지 않은 듯 말합니다.

어쨌거나 이곳은 ‘학교’라는 이름에 걸맞게 여러 가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저 용접 기술을 배우고 있어요. 미용이 더 저한테 맞는 것 같긴 한데, 용접이 돈을 더 많이 번다네요. 그중에도 수중용접이 단가가 제일 높대요.”

묻지도 않았는데 영준이는 젓가락을 놓자마자 진로에 대한 포부를 밝힙니다. 하지만 바다에서 잠수복을 입고 용접봉과 토치를 들고 있는 영준이의 모습이 잘 그려지지는 않습니다.


도움 청할 사람이 없다는 건


돈 벌 포부를 거듭 밝히는 영준에게 어쩌다가 10호 처분까지 받게 되었는지 물었습니다.

서울 가서 삐끼 일 좀 했어요”
“삐끼 한 거 가지고 10호 처분을 받지는 않을 텐데?”
“전에 아는 형들하고 보험 공갈한 것도 있어서 그게 다 병합돼서...”
“술집은 문신해 준 형들이 하던 거? 여기 선생님 말로는 폭행도 있었다고...”
“사실은 술값 안 내는 진상들에게 술값 받아내는 게 제 일이었어요. 그 일 하라고 형들이 문신도 해준 거고요. 손님이 술값 바가지라고 못 내겠다고 하면 일단 웃통 벗고 깽판 좀 치면 다들 알아서...”

영준이 이야기를 듣고 보니 자퇴부터 소년원 입소까지 일 년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도움을 요청할 사람 하나 없는 처지라는 걸 알고 있는 가출 팸 선배들이 자신들의 범죄 계획마다 영준이를 ‘꽂아’ 넣었던 것입니다.


어떤 졸업식, 그리고...


면회 후로도 영준이는 입소자 간 폭행에 연루되면서 수용 기간이 몇 번 더 늘어났고, 그 사이 스무 살이 넘어 성년이 되었습니다. 학교를 ‘강제 졸업’ 해야 할 나이가 된 영준이는 남은 기간을 우리나라에 한 곳밖에 없다는 직업 훈련 교도소로 이감을 가게 되었습니다. ‘수중용접’ 기술을 배워서 돈 많이 벌겠다던 그의 포부를 생각해 보면 그렇게 나쁜 것은 아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직업 훈련 교도소 출소를 이 주 정도 남겨놓은 어느 날, 영준이가 출소 후 사회적응을 위해 내보내 주는 ‘귀휴’를 신청해서 나갔다는 연락이 직업 훈련 교도소 선생님으로부터 전달되었습니다. 하지만 영준이는 귀휴 복귀 전날이 되어서야 연락이 되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함께 했지만 영준이는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수시로 핸드폰 통화를 하면서 불안한 기색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이 주 후, 영준이는 출소하지 못했고 다른 교도소로 이감이 되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귀휴 중에 또래들과 어울리다가 다시 범죄에 연루된 것입니다.


이번에는 소년 법정이 아닌 일반 법정에서 중형을 받고 다른 교도소로 또 이감이 되었습니다. 그의 사물이 담긴 택배 상자 두 개만 비상 숙소로 배달되어 왔습니다.


영준이의 학교 쇼핑은 이제 이렇게 끝나는 걸까 생각해 봅니다.

** 청소년 SOS 공감행동 비지트에 알음알음 후원을 원하시는 분은 인터넷 신문 다시 편집부(02-332-2693)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작성자: 라다키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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