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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경 Dec 21. 2023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

사랑의 힘

 우리 고향에 하운정 이라는 아저씨가 계셨다. 서른이 다 되어가도록 장가를 가지 못한 그 아저씨는 가슴과 등이 불룩 나온 꼽추에다 걷지도 못하는 앉은뱅이였다. 구멍가게가 있는 마루에 드러누워 손님들이 오면 물건값을 받고, 거스름돈을 내주는 것이 온종일 하는 일이었다. 가게라고 해야 아이들이 군것질할 것과 담배가 전부였다. 하지만 소일거리라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부모들이 마루에다 물건들을 차려놓고 팔 수 있도록 해 준 것이었다. 엄마에게 받은 용돈으로 주먹만 한 눈깔사탕을 사 먹으러 가면 아저씨는 환하게 웃으며 반겨 주셨다.

 “미경이 왔나?”

 커다랗고 선량한 눈에 따뜻함을 가득 담아 보내올 때는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다. 아저씨의 얼굴은 수려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이목구비가 뚜렷하였다. 그런 아저씨를 동네 사람들은 누구나 안쓰러워하고 안타까워했다. 어릴 때 높은 다리 위에서 떨어진 뒤 그렇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혼자서는 한 걸음도 걸을 수가 없었던 아저씨는 햇빛을 보지 못해서 그런지 얼굴은 창백할 만큼 하얬다. 가끔씩 가게 앞을 지나면서 고개를 돌려보면, 마룻바닥에 드러누운 아저씨는 멍하니 바깥에다 시선을 던져두고 계셨다. 초점이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없는 눈동자엔 슬픔이 그렁그렁 매달려 있었다. 그런 날은 집에 와서도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도 나는 그 아저씨가 가여웠다. 내가 마법의 지팡이라도 있으면 아저씨의 등을 펴주고 벌떡 일어날 수 있게 해드리고 싶었다. 몸이 불편한 아저씨는 학교 문턱에도 못 가 봤지만 독학으로 글을 깨우치고, 책을 읽어서 아는 것이 무척 많았다. 아저씨 집에는 책이 정말 많았다.

 전기도 없고 버스도 들어오지 않은 시골에서 가장 불편한 것은 책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누구네 집에 책이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달려가 빌려다 읽곤 했다. 그래도 책에 대한 갈증에 늘 시달리고 있었던 나는 아저씨 집에 책이 많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거의 날마다 빌리러 갔다. 아저씨는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었고,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책들을 마음대로 읽으라고 하셨다.

 그로 인해 나는 아저씨와 아주 친하게 되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저씨는 아는 게 정말 많았다. 문학을 비롯하여 역사와 과학 그리고 철학까지 모르는 게 없었다. 내가 궁금한 것을 물을 때마다 무엇이든 친절하게 알려 주셨다. 아저씨 덕분에 나는 여러 가지 책을 접할 수 있었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할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이었다.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었던 우리 고향으로 여름을 맞아 많은 피서객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수영을 하고 민박집을 구해 잠을 자기도 하면서 여름을 즐겼다. 하운정 아저씨의 부모님들은 민박은 하지 않았지만 잠잘 곳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비어 있는 방에 피서객들이 쉬어갈 수 있도록 해 주었다. 피서객들 중에는 대학교 일 학년 여학생들도 몇 명 있었는데 아저씨 집에 묵게 되었다.

 그들은 자연스레 본채와 붙어 있는 가게에서 물건을 사게 되었고, 아저씨와 이야기도 나누게 되었다. 그런데 그중 한 여학생이 아저씨를 좋아하게 되었다. 삼일 뒤에 친구들은 떠났지만 그 여학생은 떠나지 않았고 온종일 아저씨 방에서 나가지 않았다. 아저씨와 가족들은 그 여학생을 생각해서 그러면 안 된다고 말리며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하지만 여학생은 아저씨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저씨와 가족들은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자식이 혼자 늙어가는 것이 안타까웠던 아저씨의 부모들은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온 것처럼 좋아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여학생은 키도 170이 다 되어가고 얼굴도 백옥처럼 하얗고 예뻤으며 몸매도 더없이 날씬했던 것이다.

 한 달이 지나도 가지 않자 마을 사람들은 모두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들을 지켜보았다. 언제쯤이면 그 여학생이 떠날 것인가에 관심이 모아졌고, 그러고 나면 아저씨가 받아야 할 상처는 또 얼마나 클까 걱정하며 가슴 아파하기도 했다. 아저씨는 그 여학생을 돌려보내기 위해 화를 내기도 하면서 갖은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결국 아저씨와 그 여학생은 결혼식도 올리지 않은 채 살림을 차리고 살았다. 아저씨는 여학생이 금방 떠날 것이라는 생각에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 년이 지나도 여학생은 가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그래도 떠날 것이라는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2년 뒤에 여학생은 딸 목련이를 낳았고 딸을 위해 아저씨는 어쩔 수 없이 혼인신고를 했다.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너도나도 목련이 엄마의 편이 되었다. 하지만 애를 낳아도 갈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지는 않았다.

 무남독녀로 부족한 것 없이 귀하게 자랐고 집도 부자라는 것이 사람들이 그런 생각들을 버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친정에서는 아예 보려고 하지도 않는다고 했지만, 언젠가는 목련이 외할머니가 나타나 목련이 엄마를 데리고 떠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목련이 외할머니는 나타나지 않았다.

 목련이가 자라서 아장아장 동네를 걸어 다니게 되면서부터는 마을 사람들은 더 이상 목련이 엄마가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동정하는 데서 그친 것이 아니고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목련이 엄마는 마을 사람 누구에게나 친절했고, 타고난 부지런함으로 가게를 꾸려가면서 물질도 배워 바다에도 나갔던 것이다. 

 그런데 일은 거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어느 날 아저씨가 두 발로 걸어서 밖으로 나온 것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너도나도 신기해서 너도나도 아저씨는 구경하러 갔다. 아저씨는 언제 움직이지 못했냐는 듯 두 발로 당당하게 땅을 딛고 서서 걸음을 내딛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쳤고, 너도 나도 목련이 엄마에게 수고했다며 두 손을 맞잡고 격려를 했다. 그때 목련이 엄마도 마을 사람들도 다 울었다. 하지만 기적은 거기서 그친 것이 아니었다. 목련이가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첫 운동회를 맞은 날 목련이 아빠가 달리기를 한 것이었다. 학부모 달리기에서 아저씨는 다른 부모들과 마찬가지로 출발선에 섰고, 총소리와 시작하여 운동장 한 바퀴를 다 돌았던 것이다. 비록 꼴찌를 했지만 운동장에 모여 있던 마을 사람들은 목련이 아저씨의 볼록한 앞가슴이 결승점 테이프에 닿을 때 박수를 쳤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아저씨가 걷지 못하고 누워서 지낸 것은 모두 절망감에 의한 좌절의 표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목련이가 태어나면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목련이 엄마가 사랑으로 시켜준 재활훈련 덕분에 걷게 된 것이었다. 그 후 아저씨는 마을 이장까지 맡아서 알뜰하게 살림을 꾸려갔고, 마을 사람들은 너도나도 목련이 엄마가 대단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결혼을 하고 친정으로 다니러 갔을 때 우연히 목련이 엄마를 만나게 되었다. 목련이 엄마는 중년의 여인이 되어 있었는데, 얼굴 표정은 누구보다도 편안해 보였다. 난 조심스럽게 목련이 엄마에게 물었다. 

 “어떻게 아저씨와 살 용기가 생겼어요?"

 목련이 엄마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하늘이 참으로 맑지요? 너무 맑아서 만지는 것도 아깝지 않나요?”

  나는 목련이 엄마를 바라보았다. 커다란 목련이 엄마의 눈동자에 물기가 어려 있었다.

 “목련이 아빠를 처음 봤을 때 심장이 쿵, 내려앉았어요.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내 사람이라는 생각이나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저렇게 선하고 아름답게 생긴 사람이 왜 아무것도 못하고 온종일 누워 있나 생각하니까 눈물이 났어요. 어린 마음에 저 사람을 위해 평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목련이 아빠, 마음은 천사에요. 사람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목련이 아빠와 살면서 느끼고 또 느끼고 있어요.”

  환하게 미소 짓는 목련이 엄마의 목소리는 투명한 하늘만큼이나 맑았다. 

 “우리 엄마, 나 지금도 안 보려고 해요. 그래도 후회하지 않아요. 난 이제 목련이 아빠 없으면 못 살거든요.”

 이제는 노년에 접어들었을 목련이 엄마는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한 해가 저물고 있는 12월의 아침, 문득 목련이 엄마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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