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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경 Dec 23. 2023

영화 감상문

언제나 내 옆에 있는 너구리

<영화 감상문>

                               언제나 내 옆에 있는  너구리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을 보고


 “싸움에서 상처 입고 빛이 보이지 않으면 귀를 기울여 봐요. 눈물도 아픔도 언젠가 사라    져가. 그래, 꼭 너의 웃는 얼굴을 원해.”

 영화를 보고 나서도 오랫동안 내 귓속에는 너구리들이 부르던 노랫소리가 울리고 있다. 내가 바로 너구리가 되어 그들과 한 덩어리가 되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 것이다.

 난 어쩌면 한 마리의 너구리가 아닐까. 내가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항상 굼뜨게 생활하고 있는 것도 어쩌면 너구리이기 때문이 아닐까. 너무 오래 인간으로 살아오면서 너구리라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는 인간화되어 버린 너구리.

 만화 영화 한 편이 나를 이토록이나 깊은 생각의 우물 속으로 던져놓을 줄은 몰랐다. 특히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인간으로 변신해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던 쇼우쿠치가 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한 너구리를 따라 들어가고, 터널이 끝나는 푸른 잔디가 깔려 있는 곳에서 너구리들이 둥글게 모여 달빛 아래서 노래를 부르며 춤추고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의 가슴 벅찬 감동.

 “태어난 마을을 멀리 떠나 있어도 잊지 말아 주세요 그 마을의 바람을.”

 쇼우쿠치가 윗도리를 벗어던지고 자신을 옥죄이던 넥타이도 풀어버리고 그들에게 달려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순간 나는 쇼우쿠치가 되었다. 가슴 떨리는 감동 속으로 젖어들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그들을 따라 노래를 불렀다. 그것은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너구리들이 그래도 본래의 성격인 낙천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너구리는 너구리일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것을 말해주며, 뭉클한 감동을 느끼게 해주는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또한 그것은 고도로 발달한 현대문명 속에서 갖은 편리함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도 결국은 자신을 낳고 키워준 고향의 들녘을 잊지 못한다는 것도 깨닫게 해 준다. 아무리 스테이크가 맛있어도 땅속에서 갓 캐낸 향긋한 봄나물의 맛엔 비길 수가 없는 것이다. 

 1960년대 일본 도쿄 외곽, 개발이 시작되는 것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만화영화는 현대문명의 이기가 가져다준 것이 어떤 것인지 너구리들의 삶을 통해 낱낱이 보여주면서 많은 것을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다.

 삶의 터전을 잃게 되고 비상사태를 직감한 너구리들은 회의를 소집하고 '인간 연구 5개년 계획'과 '변신술 부흥'이라는 카드를 내놓고, 인간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를 시작하면서 생존을 위한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굴착기를 뒤엎고 귀신 소동을 벌이는 등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공사를 방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은 계속되고 최후의 방법조차 실패로 돌아갔을 때 너구리들은 결국 인간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가장 경멸하고 가장 싫어하는, 자신들을 사지로 내 몬 인간이 되어 살아간다는 것은 지극히 모순적인 행위이다. 하지만 그것은 생존을 위한 최선의 방책이었다.

 숲에 사는 너구리들이 원하는 것은 큰 것이 아니었다. 그저 살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그 바람을 외면하고 무차별적인 개발을 하여 너구리들의 삶의 터전을 빼앗아버린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거대한 현대 사회의 개발이라는 목적 아래 떠밀려 인간의 본질적인 삶이 파괴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또한 치열한 경쟁 속에서 기계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현대인의 고달픈 삶과 그 속에서 희생당하고 있는 동물들의 보이지 않는 고통까지 낱낱이 보게 된다. 비록 너구리를 통해서 말하고 있지만, 이 영화는 실재 세계의 심각한 환경문제에 단단히 결부시켜 놓고 있기 때문이다. 

 “저것은 광기의 언덕이다.”

 고도성장 건설 현장인 다카가 숲이 사라지고 민둥산이 된 것을 보고 오로쿠 할멈이 외치는 소리다. 그것은 개발이라는 것이 자연과 인간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는 것인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인간을 위한 개발이라지만 결국 인간이 그로 인해 피해를 보게 된다는 메시지도 담고 있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던 인간이 개발을 통해서 편리하게 살아가고는 있지만, 그 대가로 자연을 잃어버리고 건조하고 삭막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각종 기상이변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원인 모를 질명은 인간들의 목숨 줄을 위협하며 공포에 떨게 만들고 있다. 그것은 모두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자연 파괴가 가져다준 형벌이다. 난방이 잘된 아파트 안에서 여름을 겨울처럼, 겨울을 여름처럼 살아가는 현대인은 편안함에 길들여져 면역성을 잃어가고 있다. 작은 자극에도 참지 못해 분노하고, 조그만 상처에도 깊은 병에 잠식당한다. 자업자득이라는 말을 실감 나게 해주는 것이 현대인의 불안한 삶의 모습이다. 

 이 영화에서 너구리는 파괴되는 자연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연친화적인 본성을 갖고 있는 사람을 상징하기도 한다. 잔치를 벌이는 것을 좋아하며 순박하고 느긋한 너구리의 모습은 농사를 짓고 밭을 일구며 살던 사람들의 원래 모습인 것이다. 너구리의 변신은 자연과 동물, 그리고 사람을 일치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너구리는 바로 잃어버린 자연이며, 미래의 인간의 모습이다. 내가 너구리이며 너구리가 바로 나이다. 그러므로 너구리는 언제나 나와 함께 있다. 숲 속으로 달려가 너구리를 부르면 언제든지 대답할 것이다. 

 “너구리야 너구리야 놀지 않겠니?”

“지금은 한창 식사 중!”

 나는 너구리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리면서 또 물어볼 것이다.

“반찬은 뭐니?”

“냉이 무침.”

 솔바람과 함께 달려온 그 소리를 따라가는 내 가슴은 쉬지 않고 콩닥거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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