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한 영화: 조던 필의 <놉>
1. 푸른 하늘과 스크린
하얀 구름만이 존재하는 푸르른 하늘과 황토색의 광할한 대지 그리고 이러한 자연을 배경으로 서 있는 말. 지금의 할리우드를 미국의 대표적인 문화를 넘어서 전세계의 영화시장을 지배할 수 있게 만들어준 "서부극"에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앙드레 바쟁은 [서부영화, 혹은 전형적인 미국 영화]에서 움직이는 이미지인 영화의 특성상 기마행렬과 주먹다짐은 서부극을 "전형적인 영화"로 부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요소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가운데 서부극의 "하늘"은 카우보이 모자를 쓴 백인 영웅의 위대함을 강화해주기 위한 스펙타클로 기능했으며, 백인 영웅을 더욱 돋보이게 해줄 수 있는 배경이었다. 즉, 서부극의 하늘은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한쪽의 허리춤에는 권총을 메고 있는 총잡이를 전시하는 스크린 그 자체이다. 조던 필은 이러한 서부극의 요소들을 그대로 자신의 세번째 연출작 <놉>으로 갖고 들어온다. 영화제작에 필요한 말들을 공급해주는 목장을 운영하는 헤이우드가와 푸르른 하늘과 광할한 목장의 대지는 서부극이라는 장르와는 전혀 다른 장르로 관객들을 사로잡게 된다.
<놉>의 "하늘"도 마치 서부극의 하늘처럼 영화 전체의 핵심적인 배경이 되며 관객들을 위한 스크린 그 자체로 기능한다. 그러나 <놉>의 하늘은 서부극의 것과는 달리 미스테리하고 공포스럽다. <놉>의 하늘이라는 스크린은 백색의 말에 타고 있는 흑인을 허락할 수 없다는 듯이 주인공인 OJ(오티스 헤이우드 주이어)와 에메랄드 헤이우드의 아버지를 사망하게 만든다. 기이한 비명 소리와 함께 하늘에서는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물체들이 떨어지고 그 여파로 아버지의 눈을 관통한 코인으로 인해 아버지는 사망한다. 그럼에도 <놉>의 헤이우드 남매는 서부극이 광활한 하늘을 배경으로 총잡이를 촬영하듯이 하늘을 촬영한다. OJ가 사육장 밖으로 나온 고스트(말)를 우연히 하늘 속에 존재하는 미확인비행물체UFO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OJ와 에메랄드는 하늘에 있는 UFO를 촬영할 수만 있다면 이것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여 하염없이 하늘을 촬영하기로 결정한다. 마치 영화를 찍어 돈을 버는 영화제작자들처럼 헤이우드 남매는 UFO를 촬영하기 위해 이렇게 헤이우드 목장의 공포스러운 하늘은 무엇인가 등장할지도 모르는 공포스러운 스크린이 된다. 헤이우드 남매는 이 스크린을 채워줄 강력한 스펙터클을 촬영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이 촬영할 대상은 서부극의 총잡이처럼 정의롭고 착한 영웅이 아니다. 그들이 촬영해야할 대상이 더욱 구체화되면서 <놉>의 하늘이 풍기는 공포감 역시 증폭된다. 헤이우드 남매가 촬영을 위해 설치한 CCTV는 비행물체의 등장과 함께 무용지물이 되고,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찾아온 비행물체는 말 모형을 집어삼킨 후 폭주하며 헤이우드 목장을 배회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머리 위로 UFO가 날아오고 있음을 알게 된 OJ는 급히 몸을 숨기지만, 한순간에 클로버(말)를 빨아들이는 UFO를 발견하게 된다. 이를 두 눈으로 목격한 헤이우드 남매는 하늘을 촬영하는 것이 단순히 카메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스펙터클을 온전히 담아내는 것은 삶과 죽음의 문제가 된다. 죽지 않기 위해 도망가야하지만, 모순적으로 살기 위해 이것을 촬영해내고야 말아야한다. 헤이우드 남매는 살기 위해 이 스펙터클을 스크린에 보여주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들의 아버지처럼 허무한 죽음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목장은 팔리게 되고, 그들 가문이 대대로 할리우드 영화 산업에 했던 기여는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죽음을 막기 위해 OJ는 도저히 보여줄 수 없는 스펙터클을 보여주고자 한다.
2. 스펙터클과 진 재킷
헤이우드 남매가 촬영하려는 UFO는 평소에는 구름 뒤에 숨어 있으며 정체를 드러내지 않다가 특정한 목적이 있을때만 등장한다. OJ는 말을 훈련시키고 사육해본 경험을 통해 이 UFO 정체가 단순한 사물이 아님을 알아낸다.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자막으로 나온 나훔서 3장 6절 "내가 또 가증하고 더러운 것들을 네 위에 던져 능욕하여 너를 구경거리spectacle가 되게 하리니"처럼 <놉>은 스펙터클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조던 필은 이 스펙터클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는 주프의 서프라이즈 쇼 이후로 확실시 된다.
주프는 소년 카우보이 역할을 했었던 아역 출신의 한국계 미국인으로 과거 미국의 대중문화에 대한 향수를 잊지 못하고 카우보이 테마파크를 운영하며, 6개월 동안 말을 '뷰어'라고 칭하는 비행물체에게 먹이로 주며 이를 완전히 길들였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후에 OJ는 이것을 '진 재킷'으로 칭한다.) 주프는 다시 한 번 정체 모를 뷰어(진 재킷)에게 말을 먹이로 주는 쇼에서 이 스펙터클의 정체가 확실시된다. 사물이라고 생각했던 뷰어(진 재킷), 스펙터클은 주프의 마지막 쇼를 기점으로 살아 있는 생명체로 뒤바뀐다. 카우보이 복장의 주프가 자신이 자랑하던 광할한 하늘 속 스펙터클은 이를 보기 위해 앉아있던 40명 가까이 되는 관객들을 한순간에 집어 삼켜버린다. 뷰어(진 재킷)처럼 마치 하나의 사물처럼 보이는 스펙터클은 사실 단순한 사물이 아니다. 그것은 주체이자 객체이다. 즉, 뷰어(진 재킷)처럼 스펙터클은 단순한 사물이나 객체라고 볼 수 없다. 기 드보르는 [[스펙터클의 사회]]에서 이런 말을 한 적 있다. "스펙터클 일반은, 삶의 고착된 전도와 마찬가지로, 살아있지 않은 것의 자율적 운동이다." 드보르는 이에 대해서 [[스펙타클의 사회에 대한 논평]]에서 "스펙타클이라는 능동적인 힘의 단일성과 유기적 결합을 인식하는 것은 의심의 여자기 없이 필수적"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기 드보르, [[스펙타클의 사회에 대한 논평]], 유재홍 역, 2017, 16페이지)
40명의 사람들이 스펙터클('뷰어')에 잡아먹힌 후 아직 소화되지 않은 채 비명을 지르다가 헤이우드 남매의 집 위에서 한 번에 소화를 한 후 배설하는 장면이 느끼게 해주는 시퀀스는 영화 내내 공포심을 만들어내는 사운드 이펙트가 더해져 하늘 전체를 뒤덮는 스펙터클을 향한 강령한 두려움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세상의 표면 전체를 완전히 뒤덮고 있으며, 자신의 영광을 무한히 찬양한다"는 드보르의 말처럼 뷰어(진 재킷)은 커다란 우산 처럼 헤이우드 남매의 집 위를 덮기도 OJ 위를 뒤덮기도 하며, 자신의 위용을 드러낸다. 그러나 여기서 OJ는 또 하나의 특성을 발견하는데, 이것을 보지 않으면 잡아먹히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즉, 살아있는 포식자의 눈을 바라보지 않으면 공격당하지 않는 것처럼, 뷰어(진 재킷)을 바라보지 않으면서 이것을 촬영해야 하는 것이다. OJ는 이 스펙터클에 진 재킷(에메랄드가 처음으로 길들일 뻔 했던 말의 이름을 따서)이라는 이름을 붙히며 진 재킷을 촬영하기 위해 합류하게 된 할리우드의 촬영감독 홀스트와 함께 이 괴물을 어떻게 찍을 수 있을지를 논한다.
3. 조던 필, 영화사에 가려진 흑인들을 위한 헌사
영화의 결말까지 보게 되면 영화 전체가 단순히 공포 영화 그리고 결말부의 장르가 되는 괴수물이 아니라 오프닝 장면에서 등장한 에드워드 머이브릿지의 <움직이는 말>(1876)을 향한 헌사임이 드러난다. 이는 영화 그 자체를 향한 감독의 애정뿐만 아니라 영화사 전체에 있어서 가려져 있던 흑인들을 향한 존경심이기도 하다. 자신들을 <움직이는 말>의 흑인 기수의 자손들이라고 소개하던 헤이우드 남매처럼, 조던 필은 철저하게 흑인들을 위한 영화를 만들어냈다.
헤이우드 남매는 진 재킷을 촬영하기 위해 목장 전체를 영화 세트장으로 만든다. 거대한 영화 세트장이 된 헤이우드 목장은 여러 대의 카메라와 각종 특수효과(풍선, 의상,)들을 통해 진 재킷을 위한 완벽한 무대가 된다. 남매와 엔젤 그리고 홀스트는 홀스트가 진 재킷을 촬영하기 위해 갖고온 수동 필름 카메라를 중심으로 여러 대의 CCTV 카메라들을 설치하고 OJ가 진 재킷을 위한 미끼 역할을 완벽히 수행해내며 결국 촬영에 성공한다. OJ와 럭키의 질주를 통해 진 재킷을 촬영해내는 시퀀스는 서부극의 질주처럼 통쾌하고 시원하다. 동시에 이 시퀀스를 통해 에드워드 머이브릿지의 <움직이는 말>로 시작해 OJ의 질주로 끝나는 흑인 기수의 영화라는 <놉>의 액자식 구성이 완성된다. 그러나 진 재킷은 그렇게 얌전히 흑인 영화인의 성공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홀스트의 진 재킷, 스펙터클을 향한 과도한 집착은 모든 것을 파국으로 몰고 간다. 골든 타임에 진 재킷을 촬영하고자 한 홀스트의 집착은 홀스트 그 자신의 죽음으로, 진 재킷을 찍었던 필름들의 파괴로 이어진다. 엔젤과 에메랄드까지 진 재킷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갈 위기에서 가까스로 탈출한다. 결국 위기에 빠진 에메랄드를 구하기 위해 OJ가 직접 진 재킷을 마주하고 진 재킷을 상대하기 위한 대원칙을 깨트리고 진 재킷을 바라본다. 여기서 진 재킷은 완전히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UFO 모양의 새하얀 몸통이 마치 커튼 같은 모양의 머리가 되고 그 가운데 초록색 상자 모양의 눈이 펼쳐지며 외부로 등장하는데 이 모양이 마치 카메라와 같다. 즉 하얀색 커튼으로 둘러 쌓여진 카메라는 영화사를 만들어온 카메라 그 자체를 의미한다. 이 하얀색의 카메라는 결국에 OJ를 집어 삼키고 곧 바로 에메랄드를 쫓아간다. 결국에 진 재킷을 주프의 테마파크로 끌어들인 에메랄드는 마지막 시도로 거대한 카우보이 풍선을 하늘 높이 띄우고 이것을 잡아 먹기 위해 다가온 진 재킷을 수동 카메라로 촬영에 성공한다. 이렇게 OJ는 "저 너머 먼 곳Out Yonder"으로 사라지지만, 자신의 아버지처럼 사라지지 않고 진 재킷의 정체를 폭로한채로 사라진다. 즉, 사라지는 것이 아닌 "저 너머 먼 곳"에서의 새로운 시작으로, 영화사에 가려져 있던 흑인 영화인들의 해방이다.
조던 필의 첫 작품인 <겟 아웃>이 백인들을 향한 흑인의 두려움과 공포심을 극대화하여 만든 영화였고, <어스>는 주체와 객체의 동일성에 대한 물음을 던진 영화였다. 조던 필은 자신의 세 번째 작품인 <놉>에서는 영화라는 매체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매체는 언제나 백인들의 향유물처럼 여겨지고는 했다. <놉>은 스펙터클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조던 필 영화답게 영화라는 매체에 있어서 가려져 있던 흑인의 지위를 되살려내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