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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Jun 08. 2024

목포와 부산, 인턴과 멘토 사이

꼰대와 베테랑 그 사이 51

목포에서의 미팅

6월의 첫 금요일, 감독과 목포에 갔다. 우리가 미팅을 하기로 한 기업의 현장은 대불공단 안에 위치해 있었는데, 대불공단은 행정 구역상 영암군이었고, 우리는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목포 시내로 들어가기로 했다. 영암군과 목포 사이엔 영산강이 흐른다. 물론 자유롭게 흐르진 않는다. 영산강을 둑으로 막아 상류인 북동쪽은 영산호, 서남쪽은 서남해로 열려 있다. 이 지리적 위치 때문에 많은 중공업 기업과 관련 현장이 밀집해 있다. 우리가 방문하는 곳도 모회사는 거제도에 있는, 플랜트를 중점적으로 하는 계열사였다.      


김해의 인제대학교 역에서 조우해서 출발한 시간이 9시가 채 안 됐고, 목포의 가장 번화가이자 유흥가인 상동에 들어간 것은 열두 시 반쯤이었으니 생각보다 멀지 않은 거리다. 부산에서 출발했다면 세 시간 반, 울산에서 출발한 감독은 네 시간 정도 걸리지 않았을까?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감독이 출력해 온 기초 제안서를 훑어본 걸 감안하면 그리 먼 길이 아니었다. 여하간, 우린 여기까지 왔으니 간단하면서도 맛있는 걸 먹기로 하고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꼬막비빔밥집으로 들어갔다. 역시, 본 고장의 노하우는 다르구나 싶었다. 꼬막이 적지도 많지도, 양념장이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다. 감독과 난 그 기기 막힌 비율에 감탄했다.      


한 시간 정도 미팅을 했다. 그 지사의 현장은 쉬운 말로 축구장 몇 개를 합쳐 놓은 크기였다. 곳곳엔 어지간한 아파트만 한 선박 모듈이 검은색 가림막을 덮고 출고를 기다리고 있었다. 참고로 선박 모듈이란 선박의 일부를 말한다. 우리가 TV를 통해 보는 대형 유조선이나 컨테이너선은 한 장소에서 한 번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고부가 가치 선박일수록, 그 크기가 클수록 더 그렇다. 이런 선박들은 마치 레고 블록처럼 내부에서 외부까지 수십 개의 조각으로 분할되어 제조 능력이 있는 다종다양한 기업에게 배분된다. 엔진과 스크루부터 조정실까지 말이다. 우리가 잘 아는 대기업 이름이 붙은 중공업들은 이 모든 걸 하나로 합치는 작업을 하며 최종적으로 배를 완성시키는 작업을 한다. 동종 업계의 관련 국내외 기업의 영상 작업을 많이 한 경험을 어필하고 고객의 방향성을 들은 후 향후 시놉시스를 포함한 제안서를 제출하기로 하고 미팅은 끝났다.      


감독이 철학에 대해 던진 질문

다시 세 시간의 드라이브가 시작됐다. 다행인 건, 감독과 몇 시간을 있어도 어색하지 않다는 것, 대화의 주제도 의외로 다양하고 둘 다 말을 할 때와 들을 때를 구분할 줄 안다는 것이다. 섬진강 휴게소에서 주유를 하고 출발한 직후, 감독은 불쑥 “요즘 무슨 책을 주로 읽는교?”하고 물었다. 난 잠시 단어를 고른 후 대답했다. “뭐, 주로 인문학과 철학책이죠.”하고 답했다. 감독이 이어 물었다. “어떻는교?”하고 말이다. 철학 책을 읽으면 어떨까? 흠... 어려운 질문이다.      


난 솔직하게 대답했다. “젊은 시절, 철학 책을 읽을 땐 개념을 외우려고 노력했죠. 그런 개념들을 대화 자리에서 꺼내 뱉으면서 잘난 척을 하려고요. 그래서 그땐 그 개념들을 외운 것이지 그 안에 담긴 철학자의 생각을 이해 못 했죠. 그런데 요즘엔 쪼~끔 알 것 같아요. 책을 통해, 작가와 철학자가 개념이나 이론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 하고, 더 나아가 독자들이 어떻게 살고, 삶을 어떻게 대하길 바라는지, 어떤 마음으로 우리에게 이런 생각을 던지고 있는지를. 정말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아요.”     


감독은 말없이 듣고 있었다. 내가 말을 이었다. “철학 책, 인문학 책을 읽으면서부턴 오히려 일 적으로 쓰는 글은 쉬운 단어, 일상적인 말로, 더 직관적으로 쓰게 되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예전엔 카피를 쓰면 고객한테 왜 이렇게 카피를 썼는지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했는데 요즘엔 고객이 보자마자 바로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보고 자기들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라고 하더라고요.”, 감독이 추임새를 넣었다. “마, 그게 고수 아잉교.”, 난 말없이 웃었다. 잠시 후 감독이 결정적인 질문을 했다. “그래, 그 사람들이 어찌 살라고 하는교?”     


그러게... 니체, 들뢰즈, 라캉을 비롯한 철학자들과 무수히 많은 철학자들을 인용하여 책을 쓴,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과 학자들은 어떻게 살라고 말했더라. 잠시 생각을 하고 말했다. “우선은 과거에 얽매이지 마라. 두 번째는 이 순간을, 내 존재를 만끽하며 살아라. 세 번째는 죽음을 염두에 두되 그걸 두려워하는 대신 삶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늘 겸손하게 살아라. 이 정도 아닐까요?”,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난 들뢰즈의 책에 자주 나오는 주사위 이야기를 들려줬다. “감독님, 거 왜 주사위 두 개를 던져서 하는 게임 알죠? 그거 하면, 어른들은 몇 번을 던지면 어떤 숫자가 나오는지, 그 확률을 계산하잖아요. 도박꾼들이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런데 애들은 말이죠. 그 던지는 순간의 쾌감을 즐긴다고 하더라고요. 공중에 주사위를 던졌다가 떨어지는 그 짧은 순간도 애들한테 슬로비디오로 보이는 거죠. 그러다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도 듣고, 그게 데굴데굴 구르는 모습도 흥미롭게 지켜보는 거죠. 우리도 삶의 매 순간의 그 변화를 느끼며 살아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감독은 흥미롭게 이야기를 들었다.      


<인턴>을 다시 보며

오늘 오전, 한 케이블 채널에서 영화 <인턴>을 보여줬다. 일흔 살의 노인이 온라인 의류 쇼핑 기업에 인턴으로 들어가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 말이다. 그 영화를 보면서 어제의 대화가 떠올랐다. 내가 젊었을 때, 누군가 어제 내가 해 준 이야기를 해줬더라면 조금 다르게 살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일상에, 회사 생활에, 삶에 크고 작은 문제가 있을 때 저런 어른이 옆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다 불쑥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영화, 아마 한국에서 만들었다면 제목을 <멘토>로 짓지 않았을까? 이 생각 후 영화로 시선을 돌리니 새롭게 보였다. <인턴>으로 들어와서 <멘토>가 된 사람의 이야기로 말이다.      


재미있는 건, 이 영화의 초반부, 주인공은 그야말로 꿔다 놓은 보릿자루 같았다는 거다. 사장이 업무를 지시하는 메일을 보낼 때까지 신문이나 읽으며 시간을 보냈으니 말이다. 한 회사에서 40년을 일하면서 광고 담당과 인쇄 관리까지 하며 부사장 지위까지 올랐던 사람이지만 그는 묵묵히 기다렸다. 심지어 출근한 회사의 건물이 자신이 청춘을 바친 회사의 건물이라는 것도 나중에서야, 자연스러운 대화 속에서 말을 했다.      


그런 그에게, 어느 순간부터 그야말로 청춘들의 고민이 몰린다. 사장의 문제와 회사의 문제도 던져진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살려 젊은 친구들의 기술을 통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말해주고, 사장의 가정 문제에 대해서도 담담히 조언해 준다. 심지어 어떤 자리엔 어떻게 입고 가야 하는지도, 여자 친구에게 사과하는 법, 위로하는 법도 가르쳐 준다. 아직 방을 못 구한 젊은 인턴에게 잠자리까지 제공해주기까지 한다. 이 정도 되면 멘토가 아니라, 그의 표현대로, 모든 직원의 삼촌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오지랖 아재의 등장

난 넥타이를 매는 세 가지 방법을 남성 잡지를 보며 혼자 깨우쳤다. 셔츠와 바지의 다림질 법도, 이전에 얘기했듯이 대학과 전공 선택도, 공부하는 법도, 연애하는 법과 헤어지는 법도 혼자 배웠다. 당연히 아빠가 되는 법도 키우면서 알아갔다. 그렇게 오십이 넘어버렸다. 그래서인지, 뭐랄까, 허둥대거나 난감해하거나 뭔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 특히 젊은 사람을 보면 마음이 불편하다. 누군가, 그러니까 그 길을 먼저 갔던 사람, 뭔가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그저 한 마디 “툭” 해주면 술술 풀리고 해결될 문제 앞에서 쩔쩔매는 이를 보면 마음이 쓰인다. 아내는 나이가 들더니 없던 아재의 오지랖이 생겼다고 핀잔을 주는 데 어쩔 수 없다. 젊은 사람에게 모르는 걸 편하게 묻게도 됐다. 최근엔 비교적 생소한 인스타그램이나 숨고나 크몽 같은 사이트에 대해 알고 싶어서 젊은 후배한테 전화를 해서 물어보기도 했다. 


어쩌면 이 부분이 영화 <인터>에 나오는 “나이 든 인턴”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나이와 상관없이, 인생의 어느 순간, 우리는 멘토가 될 수도, 인턴이 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주인공 벤 휘터커의 면접을 본 건 “젊은 선배”들이었다. 컴퓨터 활용법을 알려주고 메일 계정을 만들고 SNS 계정을 만드는 걸 가르쳐 준 것도 젊은 선배들이었다. 그때, 그는 인턴이었다. 그리고 그 젊은 선배들이 도움을 구할 때 그는 멘토가 됐다.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자기 자신을 고정하는 사람이 있다. 어제 감독에게도 이런 걸 가장 경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쯤 됐으면 잘 아는 거지.’, ‘이 나이 정도 됐으면 완성된 거지.’, ‘이 분야에서 더 배울 게 있나?’, ‘이 나이 돼서 뭘 새로운 걸 배우나?’와 같은, 이런 생각으로 자신의 역할을 규정하고 한계를 긋는 걸 경계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이를 먹으면 누군가의 멘토 역할도 잘해야 하지만 우린 평생 학생의 자세로 인턴의 배우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갖고 살아야 한다. 세상은 변하고 나 또한 변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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