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는 <언더그라운드> 출간 뒤, 뭔가 석연치 않음을 느꼈다. 이 책의 서두에서 밝혔듯이 사이비 종교나 옴진리교나 그 교주인 아사하라에 관한 내용은 일부러 뺐다. 그 사건 후, 일본의 방송과 언론의 보도엔자극적인걸 쫓아 종말론, 사이비 종교, 아사하라의 과거, 실행한 교인들의 배경, 그 가족들, 그리고 피해자의 숫자만 담겨 있었고.... 피해자의 육성은 결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 육성을 있는 그대로 전하고 싶었다. 이를 통해 그 사건의 전체 양상을, 그 사건 전후의 일본 사회를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은 효과가 있어서 독자들은 그 사건의 고통을 육체적으로, 심리적으로 겪은 듯했다고, 작가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가 아직 빠져 있었다고 느꼈고, 그것이 <언더그라운드>의 두 번째 이야기, <약속된 장소에서>를 쓰게 된 계기가 됐다.
사건은 1995년 3월에, 인터뷰는 그 일 년 후, <언더그라운드>는 1997년에, <약속된 장소에서>는 1998년에 나왔다. 두 책의, 그 일 년 동안 무라카미 하루키는 전과 동일한 방법으로 옴진리교 측 사람과 인터뷰를 했다. 물론 내부자는 아니다. 신자 또는 관계자였으나 현재는 탈퇴한 사람, 소위 임원급이었으나 탈퇴한 사람, 성격과 조직이 변한 뒤 여전히 신자로 남아 있는 사람, 탈퇴를 했으나 여전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 마지막으로 탈퇴한 뒤 적극적으로 “그것”은 도대체 뭐였는지를 숙고하고 심지어 그에 관하여 책까지 쓴 사람 등. 인터뷰 대상과 함께, 또 하나 다른 점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적극적인 개입이다. 전작에서는 거의 듣기만 했던 작가는 반문과 반론을 제기한다. 이 상호작용은 후에 작가에게, 그리고 독자들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준다.
답을 찾는 사람
공교롭게도 이 책과 함께 사사키 아타루의 <제자리걸음을 멈추고>를 함께 빌렸다. 뒤에 부연하겠지만 사사키 아타루의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이 던진 질문에, 일종의 답을 주는 것 같다. 물론, 당연하게도 그러리라 예상하고 빌린 건 아니었다. 나도 사사키 아타루의 책 안에 <IQ84>에 대한 비평이 실려 있어서 깜짝 놀랐을 정도니까. 그냥 우리 동네 도서관엔 아즈마 히로키와 사사키 아타루의 책이 몇 권이나 궁금해서 검색해 봤는데, 내가 없는 책이 있기에 빌려 왔을 뿐이다. 말이 길어지는데, 사사키 아타루의 책에 관해선 바로 올리도록 하겠다.
옴진리교의 신자와 출가자들 중엔 인생과 세상의 허무, 무의미함을 일찍부터, 심지어 초등학교 때부터 느껴 가족은 물론이고 친구, 학교, 공동체와 거리를 둔 채 그 답을 찾기 위해 몰두한 사람이 많다. 일본은 종교가 일상인 나라이라 종교를 진지하게 탐구하고 몰두하는 사람이 드문데, 당시 일본에도 우리나라처럼 뉴에이지 열풍이 불어왔고 여기에 종말론까지 합세하여 종교 관련 서적이 쏟아졌다. 또 종교와 영적인 세계를 진지하게 탐구하려는 이들이 늘어났고 말이다. 그 상황에서 다양한 신흥 종교들이 쏟아졌고 옴진리교도 그중 하나였다.
인터뷰에 참여한 사람들 중 대다수가 상당히 논리적이고 똑똑한 사람이었고 사린 테러에 가담한 이들 중 일부는 소위 명문대 출신들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은 “답”을 찾고 있었다는 것이고 그 “답”을 시원하게 말해준 사람이 바로 옴진리교의 교주 아사하라 쇼코였던 것이다. 그들은 서점에서 우연히 그와 관련한 책을 읽거나 친구에게 소책자를 건네받거나 근처 집회에 불쑥 참가하거나 해서 번쩍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 후 말릴 새도 없이 입교, 출가 등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단절, 혹은 답의 편리함
뒤에, 심리학자와의 대담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말하듯, 이들에게 출가의 망설임은 없었다. 직업을 관두고 사는 곳을 떠나고 가족을 등질뿐만 아니라 자신의 전 재산을 정리해 종교에 바쳐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결단은 단호했고 실행은 신속했다. 일말의 후회도, 미련도 없었다. 답을 찾았고, 답이 있는 곳에 가는 데 답이 없는 곳에 미련이 있을 리가 없지 않나. 오히려 망설이는 것이, 주저하는 것이, 미련을 두는 것이 비논리적이었다. 답은 두 개일 수 없으니.
사실, 세기말의 우리나라의 이단도 그랬다. 너무나 확고한 답을 갖고 있어서 논리적이었다. 그런데 그 논리는 이성적이지 않았다.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다른 답의 가능성, 세상의 변화 가능성, 그에 따라 답이 변하고 새로운 답이 생성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굳이 포퍼의 반증가능성을 말하지 않아도, 그것이 곧 소위 말하는 정상 과학의 경로고 이성적인 사고, 그 사고로 돌아가는 세상의 이치다. 그런데 이런 종교는 그 가능성의 문을 닫아 버린다. 이게 답인데 도대체 무슨 답이 더 필요하냐고 오히려 반문한다. 그 답을 찾은 사람들은 우월감에 빠진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대담에서 지적한 것처럼 “진리”를 모르는 세속의 인간들이 하찮고 같잖다. 답을 찾은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 자존감을 되찾는다.
저 시기, 우리나라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 우리나라의 이단 종교의 답은 여러 계층의 사람에게, 특히 가난하고 저학력자들에게 파고들었다. 당시의 세기말 종교는 희망이 없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줬고 방황하는 사람에게 길을 알려줬으며 외로운 사람에게 친구가 되어 줬다. 그 광기를 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말로 설명해도 실감할 수 없다. <그것이 알고 싶다.>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심지어 넷플릭스의 <나는 신이다.> 등과 같은 오래된 영상이 담긴 다큐멘터리만으로는 절대 실감할 수 없는 열광이고 확신이며 추종이다. 난 십 대 시절 직접 겪어 봤다. 종말론과 휴거와 광적인 통성 기도와 방언과 예언이 난무했던 세기말의 어느 장소에서.
이단, 특히 기독교 기반의 이단종교는 옴진리교의 교리처럼 답이 확실하고 논리적이다. 성경의 이곳저곳을 가져오고, 여기저기에서 숫자들을 가져와 꿰어 맞춘다. 마치 흩어져 있던 퍼즐을 한데 모아 그림을 완성시킨 것 같다. 그런 기분이 든다. 그 답에 감동한 사람들이 그렇게 자신의 인생과 일상과 가족을 등진 채 떠난다.
이들은 예언의 오류와, 다미 선교회처럼 종말의 오지 않아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약간의 오류, 일부 극렬파의 문제일 뿐 본질은 여전히 옳고 바르다고 생각한다. 엄청난 사회 문제를 일으킨 이단 종교가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 이유다. 이름을 바꿔가며, 교주를 릴레이 해가며 말이다.
박스
무라카미 하루키와 심리학자 가와이 하야오는 이런 사람들의 내면을, 답안지를 박스에 비유했다. 타자의 모든 질문과 세상과 인생이 내미는 모든 숙제를 저 박스 안으로 던져 버리는 것이다. 종교와 교리와 심지어 구루와 교주의 박스 안으로. 그러니 당연히 상식적인 대화가 가능할 리 없다. 얼핏 들으면 그럴듯한데, 그 그럴듯함은 그들 안에서, 그 박스 안에서나 가능하다. 그런데 이거, 의외로 편리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딱 떨어지게 답할 수 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두 사람이 심도 있게 논의한 선과 악은 물론이고 사랑, 우정, 증오, 죽음, 믿음 등등.
이런 것들은 엄밀히 말하면 정답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겪어가는 것이다. 그 겪음 속에서 답을 하나 세우고, 다시 또 겪은 뒤 그 답을 허물고 세우고 바꾸고, 그러면서 점점 내면적으로, 인간적으로 성숙해져 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걸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다. 젊은 시절엔, 조금 조숙한 사춘기 소년 소녀에게는 이 모든 것의 “정답”이 있을 것 같다. 탁, 탁, 탁, 딱, 짜잔. 누군가 이렇게 답을 던져주면, 이렇게 답이 나오는 “박스”를 소개하면 아주 쉽게 인생의 모든 문제를 그 박스 안으로 훌쩍 던져 버리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의 인생까지.
문제는, 앞서 말했듯, 그 박스의 부실함, 그 박스라는 작은 세계가 무너졌을 때도 여전히 그 박스를 벗어나지 못한 다는 것이다. 옴진리교의 사람들이 교단을 떠나지 못하는 것도, 심지어 자신들의 종교가 그 범죄의 뿌리라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도, 그 종교를 떠난 사람들이 그 종교와 함께한 시간들을 후회하지 않고 증오하지 않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것을 부정하면 자신의 세계가 무너지기 때문에, 어쩌면 그 세계를 대체할 다른 “박스”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에, 불확실성의 세계와 인생을 받아들일 준비가, 살아나갈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동네와 내가 다니는 수영장 인근, 그러니까 경성대학교와 부경대학교 인근에 포교 활동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전단지를 내밀며 하는 첫마디가 유월절에 관한 것이었다. 기독교와 성경을 비틀어 작위적으로 소화해 만든 이단 종교들이 좋아하는 테마 중 하나다. 아내와 함께 걷다 이런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는데, 기독교에 관심 없는 아내는 유월절 자체를 몰랐다. 이걸 왜 이단들이 좋아하는지를. 그래서 한참을 설명해 줬다.
여전히, 박스를 찾는 사람들이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런 박스 같은 건 없다. 후에, 사사키 아타루의 책에 대한 서평을 쓰면서 더 자세히 말하겠지만, 그런 박스 찾기는 세상을 한 번에 뒤집는 혁명을 염원하는 순진한 극좌파의 소망과 같다. 인생에 혁명이 필요하다면 매 순간, 일상 속에서 점진적으로, 자기로부터 행해야만 한다. 그것이 사사키 아타루가 <야전과 영원>을 통해, 그리고 그 뒤의 책을 통해, 들뢰즈와 푸코, 르장드르의 사상을 통해 말하는 것이다. 보르헤스의 어느 소설에 나오는, 세상의 모든 답을 알 수 있는 책 같은 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