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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Nov 07. 2024

상실 - 조앤 디디온

동해선에서 읽은 책 108

 "나는 문간에서 걸음을 멈췄다. 나는 그의 구두들을 남에게 줘버릴 수 없었다. 잠시 그렇게 서 있다가 왜 그럴 수 없는지 깨달았다. 존이 돌아오면, 구두가 필요할 테니까.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생각을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나는 아직 그 마술적 사고가 사라졌는지 가늠해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이를테면, 구두를 기부해 버린다든가 해서)."P.50

병실에서

바람막이에는 옅은 땀 냄새가 배어 있다. 신경 쓰지 않는다. 그 냄새를 맡을 만큼 내게 가까이 다가올 수 있는 사람은 딸과 아내뿐이기에. 그 땀 냄새를 남편의, 아빠의 냄새로 인지하는 사람은 그 두 사람뿐이니까. 병실의 밤, 얇은 패드 위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 아빠를 보며 미안해하는 기색을 보이는 딸에게 말해줬다. 오랜만에 네가 잠든 모습을 볼 수 있어 좋다고.     


딸에겐 열과 가끔 나오는 기침 외엔 다른 증상은 없었다. 기침조차 폐에 낀 가래를 뱉어내기 위해 툭하고 터지는 것이어서 1,2초면 그쳤다. “가래 뱉어라.”하면 제가 알아서 가래를 뱉었다. 그 뒤 가져간 패드로 <흑백 요리사> 따위를, 아비 속도 모르고 편히 누워서 봤다.      


밤이 되면 모든 병실에서 기침이 들렸다. 애들의 기침 소리는 기괴했다. 마치 닭 뼈가 목에 걸린 개가 캑캑 대는 소리를 닮았다. 뱉어 낼 수도, 뱉어지지도 않는 고통을 작은 몸을 울려 뱉어 내기 위해 아이들은 밤새 기침을 했다. 기침과 기침 사이에 젊은 엄마들의 안타까운 탄식이 끼어들었다. 나중에, 병원 직원인 아내를 통해 들은 얘기로는 마이크로 플라스마라는 폐렴에 걸리면 그런 기침을 뱉는다고 한다.      


딸은 그 기침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잠들었다. 난 그러지 못했다. 양 옆 방과, 때로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들리는 그 동일한 기침 소리를 들으며 잠을 설쳤다. 아이들의 부모들은 뜬 눈으로 밤을 새웠을 것이다.     


예쁜 딸


"케 보니타, 케 에르모사(Qué bonita, Qué hermosa, 어찌나 예쁜지, 어찌나 귀여운지)!     

조앤 디디온이 딸 퀸타나의 입양이 공식적으로 마무리된 후, 기념으로 간 <더 비스트로>라는 식당의 라틴계 직원들은 어여쁜 아기를 보고 이 말을 반복했다. 라틴계 사람들이 감탄사를 망설임 없이 말한다는 걸 익히 아는 사람이어도 저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조금 컸을 때는 “진저 로저스를 빼닮았다.”는 얘기도 들었다.      


딸 이전에, 내게 이렇게 큰 기쁨과 큰 두려움을 동시에 준 사람은 없었다. 불안한 존재가 미완의 존재를 책임져야 했다. 딸이 막 뭔가를 짚고 일어설 수 있을 때, 카시트 주변에서 놀다가 휘청거리며 넘어졌다. 거실 한쪽에서 딸을 지켜보고 있던 내가 얼른 달려갔다. 울음을 터뜨린 딸을 얼른 안았다. 딸의 입에서 살짝 피가 나왔다. 그때 느꼈던 공포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평생 그런 공포는 처음 느껴봤다. 다행히 입술 끝이 살짝 상처가 났을 뿐이었다. 그러나 내 몸에 엄습한 공포는 쉽게 떠나지 않았다.      


집중하고 있는 딸, 재미있는 걸 보며 깔깔거리며 웃는 딸, 맛있는 먹고 있는 딸, 파자마를 입은 딸, 자기 직전 자신의 침대에 누워 내가 덮어준 이불을 목까지 덮고 날 똑바로 보며 웃는 딸, 학교에 가는 딸, 하교하는 딸, 롱 보드를 타는 딸, 농구를 하는 딸, 달리기를 하는 딸, 박물관에서 심각하게 문화재를 보고 있는 딸, 미술관에서 이해할 수 없는 현대미술을 보며 미간을 찌푸리는 딸, 바다채송화를 보는 딸, 이팝나무를 보며 고르곤졸라 피자 위에 강판으로 갈려 흩뿌려지는 치즈를 닮았다고 말하며 웃는 딸....


조앤 디디온의 고통스러웠던 3년

2003년 12월 18일, 딸 퀸타나가 독감 증세를 호소한다. 처음 찾아간 병원에선 물을 마시고 쉬라고 한다. 약을 처방해 준다. 열이 내려가지 않는다. 크리스마스가 코  앞인데, 열은 그대로다. 숨도 쉬기 힘들다. 결국 크리스마스에 엑스레이를 찍는다. 폐렴이다. 그 후 급속히 악화된다. 병원의 집중 치료실에 입원하게 된다.


이 해, 12월 30일, 그 병원에서 딸을 본 부부는 집으로 돌아와 저녁 식사 준비를 한다. 남편 존은 위스키를 한 잔 달라고 한다. 저녁 준비가 거의 다 되어 간다. 한 잔 더 달라고 한다. 어떤 위스키를 줬는지 물어본다. 대답을 한다. 등을 지고 요리를 마무리하는데 식탁 위로 남편이 쓰러진다. 구조대를 부르고 병원으로 옮기고.... 사망한다. 오래전부터 죽음의 전조를 보였던 심장이 갑작스레 멈춰버렸다.      


그 뒤, 퀸타나는 병원에서 회복한다. 그 해 여름, LA로 남편과 휴양차 여행을 갔을 때, 다시 쓰러진다. 이번에 뇌출혈이다. 복잡하다. 의식을 잃는다. 뉴욕에서 날아간다. 잠시 회복됐던 딸은 병원과 집을 오가다, 이다음 해, 2005년 8월 26일, 사망한다.      


“이제 안전해 엄마가 왔어.”     

보호자는 무기력하다. 자식이 아프면 무기력해진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그 무기력이 과거와 현재의 나를 돌아보게 한다. 내가 딸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헤아려 보게 한다. 이 책의 원제는 The Year of Magical Thinking이다. 책을 읽다가 우연히 다시 표지를 봤다. 원제가 눈에 들어왔다. 더 슬펐다. 자식이 아프면 신을 믿지 않는 사람도 신을 찾게 된다. 사랑하는 아내, 혹은 남편이 죽을병에 걸리면 딱 한 번만 살려달라고 빈다. 그거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기적 같은 건 없다고 믿는 현실주의자와 실존주의자도 기적을 바라는 순간이 언제겠는가? 이때뿐이다.


남편이 돌아올지도 몰라, 하는 기분이 들 정도로 남편을 그리워하던 시간을 견뎠다. 그 시간은 애도의 시간이다. 애도는 공백을 응시하는 시간이다. 존재하지 않는 사람의 존재감을 견디는 시간이다. 그 시간 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그 얼마의 시간에서 그 얼마가 정말 어느 정도의 시간을 말하는지 아무도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그 시간이 지난 뒤, 그 공백과 존재의 부재를 인정할 수 있다. 존재의 없음의 수용이 가능해진다. 그 수용 뒤 죽은 자는 비로소 존재하지 않는 자, 죽은 이로 산 자에게 받아들여진다.      


“그전까지는 슬퍼하기만 했을 뿐 애도는 하지 못하고 있었다. 비애는 수동적이었다. 비애는 저절로 생겨났다. 그러나 비애를 다루는 행위인 애도는 주의를 집중해야 할 수 있었다.”, P192     


함께 한 시간만큼 기억도...

40년을 함께 산 남편이 곁에 없다. 같은 직업을 가진 두 사람이 함께 살며 의지하며 성장했다. 늘 가던 곳에 새로운 상점이 생기거나 늘 가던 단골 식당에 새로운 메뉴가 생기면 가장 먼저 말해주던 사람이 이젠 곁에 없다. 재미있는 기사를 보거나, 흥미로운 뉴스를 보면 가장 먼저 알려주고 싶었던 사람이 이젠 곁에 없다. 그 사람과 함께한 기억은 도시 곳곳에서 불시에 덮쳐 다. 기억을 몰아낼 수가 없다.    

  

나와 아내는 결혼한 지 아직 이십 년이 안 됐지만 같이 산지는 그보다 훨씬 길다. 그야말로 21세기를 함께 견뎌냈다. 어떤 날은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웠지만 어떤 날은 온몸에 키스 자국을 남기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우리는 그렇게 삼십 대 직전에 만나 오십 대에 들어섰다. 그러는 사이 딸이 태어났고 컸다.


그 세월만큼, 쌓아온 사연이 있고 기억들이 있다. 게다가 한 곳에서 거의 십오 년 넘게 살았으니 동네 곳곳 - 넓게 보면 지하철로는 못골역에서 해운대역까지, 좁게 보면 대연동과 부경대학교와 경성대학교 부근 - 엔 딸과 아내와 함께 했던 장소와 기억이 이정표처럼 지키고 서 있다. 조앤 디디온이 남편이 죽은 후에 이사를 가지 않은 것도, 홀로 남겨진 많은 사람들이 이사를 가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기억.      


생각나는 일이 있다. 결혼 전인가, 삼십 대 중반쯤. 어느 주말, 경성대학교 근처를 걷고 있었는데, 아내가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얼굴을 보자 눈짓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아내가 가리킨 곳엔 막 아가씨 한 명이 걸어가고 있었다. 일본 여학생 교복을 연상시키는 세일러복을 입은, 글래머러스한 아가씨였다. 근처에, 코스튬 플레이 동호회라도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날 정도였다. 정말 일본 만화, 더 정직하게 말하면 야한 만화에서 금방 튀어나온 듯 한 아가씨였다. 아내는 이렇게 남녀를 막론하고 혼자 보기 아까운 비주얼을 가진 사람을 보면 언제나 내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요즘엔 더 자주 그런다.


우울의 이유

우울은 8월 말에서 9월 초에 찾아온다. 올해도 그랬다. 음력 생일이 이 기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엔 11월에도 찾아왔다. 10월 마지막 주, 폐렴에 걸린 딸이 나흘 가량 병원에 입원했었다. 그때, 난 혼자 딸의 곁에서 잠들며 그 곁을 “보호자”로서 지켰다. 그동안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를 읽었고, 퇴원 후에는 조앤 디디온의 <푸른 밤>, 이어서 <상실>을 읽었다. 책 때문일까? 남겨진 사람의 기억과 그리움이 잔뜩 들어 있는 책을 읽어서였을까?     


특히 조앤 디디온의 책을 읽으면서 나이 드는 것에 대해, 죽는 것에 대해, 혼자 남겨지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했다. 조앤 디디온의 어머니는 아흔이 넘어 죽었는데 죽기 전까지 벌써 죽으면 안 되는데, 너희들에겐 내가 필요한데,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때 이미 조앤 디디온과 오빠는 환갑이 넘었었는데 말이다.      


The Year of Magical Thinking. 그때가 언제였나? 제발 우주의 모든 신이 나에 바람에 귀 기울여주길 바라며 간절히 기도하던 그 시간, 그날들이. 생각난다. 딸은 3주 일찍 나오려 했다. 아직 다 크지도 않은 주제에 엄마와 하룻밤 넘게 실랑이를 벌이다 나왔다. 그렇게 신생아실에서 “000님 아기”라는 명찰을 붙이고 조그만 플라스틱 침대에 며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을 보러 갔더니 눈에 거즈를 붙인 채 푸른색 빛이 나오는 작은 투명 박스에 들어가 있었다. 약간 황달기가 있는 것 같아서, 예방 차원에서 치료를 하기 위해 들어가 있는 거라고 의사는 담담히 말했다. 아내는 무슨 큰 병에 관한 선고라도 은 양 눈시울을 적셨다. 난 그 앞에서 담담히 있었다.      


저녁, 병실에서 아내의 식사를 돕고, 혼자 저녁을 먹기 위해 병원을 나와 장산역까지 걸어갔다. 무슨 국밥인가를 먹고 다시 병원으로 올라가는데 울컥 눈물이 났다. 아이가 건강하게 클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하겠다는 생각이, 그때 처음 들었다.


동해선에서 <상실>을 읽으며 몇 번이나 울컥해서 책을 덮었다 폈다 했다. 갱년기인가? 월내역 너머로 보이는 바다를 보며 마음을 진정시킨 후 다시 읽었다. 그렇게 역 밖의 풍경과 페이지를 오가며 읽었다. 돌아오는, 밤을 달리는 동해선에서도 그랬다. 어쩌면 결혼하기 전이나, 아이를 낳기 전에 이 책을 읽었다면 이렇게까지 감정 이입이 되어서 읽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거의 다 읽어갈 즈음, ‘이제 이런 에세이는 그만 읽어야겠다. 이렇게 아무 데서나 눈물이 나서야, 원.’하는 생각을 했다. 그다음 날, 매일 하는 온라인 서점 투어를 하다 눈에 들어온, 정말 감정이라고는 1도 없을 것 같은 책이 눈에 띄었다. 문학평론가 복도훈의 <묵시록의 네 기사>. 처음 몇 페이지를 읽어보니 흥미롭다. 수영을 하고 오는 길에 들러 샀다. 자, 이제 다시 꼬불꼬불한 생각의 세계로 돌아간다.


사족

<상실>이 먼저 나왔고, <푸른 밤>이 다음이다. 번역이 성실하다. 있어야 할 각주가 있다. 표지를 보니 "Joan Didion Collection ①"이라고 쓰여 있다. 그렇다면 계속 나오다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검색을 해보니 올해 1월 <내 말의 의미는(Let Me Tell You What I Mean)>이 출간됐다. 196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출간된 적 없는 그녀의 글을 모은 책이라고 한다. 출판사는 <책 읽는 수요일>이다. 우리 세대는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인데...     


여하간 이 출판사 열일 - 모든 출판사가 그렇겠지만 - 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에도 등장하는 폴 서루의 여행기도 출간했고, 테리 이글턴과 벨 혹스의 책도 출간했다. 출판 목록을 보면, ‘음, 주 종목이 뭐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여하간 책으로 돈 벌 생각이 없는 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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