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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영훈 Nov 02. 2024

푸른 밤 - 조앤 디디온

동해선에서 읽은 책 107

뉴욕타임스, 미국 동부 시간, 낯선 단어

금요일 저녁, 아내는 나를 위해 족발과 보쌈을 주문해 줬다. 비가 오니까. 저녁을 먹는 동안 휴대폰도, TV도 보지 않는 것이 우리 집의 룰이다. 두 여자가 다 먹은 후에도 여전히 남은 족발과 수육을 먹으며 맥주를 마시고 있을 때, 딸이 휴대폰을 펼치며(딸은 플립폰을 쓴다.) “항상 이 시간에 오더라. 지금 뉴욕은 몇 시지? 아빠?” 하고 물었다. 딸은 얼마 전부터 영어 공부를 위해 <뉴욕 타임스>의 뉴스레터를 매일 받아 읽고 있는데, 매일 저녁 일곱 시 넘어 발송되기에 그쪽의 시간을 물어본 것이다.


난 “글쎄, 그쪽이 아침이겠지? 한 열세 시간 시차가 나려나?”, 내 말을 들은 아내가 휴대폰을 검색했다. 대략 그 정도 시차가 났다. 딸은 그 뉴스레터를 읽어나갔고, 요즘엔 미국 대선 이야기가 대부분이라 약간 재미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다 불쑥, “트리 펙타가 뭐야?”하고 물었다. 옆에 있던 아내가 스펠링을 확인한 후 여러 뜻을 알려줬다. 맥락상 경제와 관련한 뜻이 어울렸다. 그 이후에도 한참을 미국 언론사의 독자 수준과 정치적 성향에 따른 구분에 대해 얘기했다.      


우리가 죽음의 운명에 관해 말할 때 우리는 자식에 관해 말하는 것이다. P.21  
인간에게 자식의 죽음보다 더 큰 슬픔이 있을까? P.38


푸른 밤, 낮도 밤도 아닌

기억에 관한 책이다. 후회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 가족과 친구와 추억에 관한 글이면서 동시에 오늘 당도해 있는 노년에 관한 글이기도 하다. <푸른 밤>은 은유적으로도, 직접적으로 그 수많은 경계의 겹침을 함축하는 제목이자 현상이다. 마치 강의 하류와 바다가 만나는 기수지역처럼, 이쪽과 저쪽, 이때와 저 때, 기억과 현실이 겹쳐지는 순간과 공간들에 관한 글이다. 오늘의 공간과 사물에서 과거의 사람과 추억과 만나고, 과거의 추억과 흔적들이 선사하는 생생한 지금의 고통을 확인하는 글이다.      


조앤 디디온은 전설이다. 난 그녀의 수많은 사진 중, 1967년,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 파크에서 찍힌 사진을 좋아한다. 단발머리의 그녀는 M65 필드재킷을 모티브로 했음이 분명한 헐렁한 헌팅 재킷을 입고 있다. 목에는 거친 재킷과 부조화스럽지만, 당연하게도 너무나 잘 어울리는 실크 스카프를 아무렇게나 두르고 있고 검은색 스커트와 흰색 스타킹, 굽 낮은 플랫 슈즈를 신고 있다. 이 사진의 백미는 그녀가 들고 있는 가방인데, 전형적인 토트백이다. 샤넬이라면 켈리백, 에르메스라면 버킨 백이라 불렸을, 딱 그 정도 사이즈의 가방이다. 그녀의 글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브랜드가 샤넬임을 감안하면 아마 샤넬 아닐까?     

사진은 우연히 찍힌 것이 아니다. 그녀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보고 있다. 뒤에는 일군의 젊은이들이 몰려 있다. 처음 이 사진을 봤을 때, 난 우드스톡 페스티벌이 배경인 줄 알았다. 그러나 <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에서 그 사진이 찍힌 시기와 장소를 보고 내 생각이 틀렸음을 알았다. 우드스탁 페스티벌은 1969년, 뉴욕에서 열렸기 때문이다. 검색을 해 봤다. 1967년의 샌프란시스코. 그 해에 그곳에선 소위 <사랑의 여름>이라 통칭되는, 행사도 이벤트도 공연도 아닌, 일종의 하나의 물결이 소용돌이쳤었다. 젊은이들은 텐트를 치고 노숙을 했고 누구나 노래를 했고 구호를 외칠 수 있었다. 무려 10만 명의 사람들이 그렇게 거대한 물결을 만들었고, 그 물결을 취재하기 위해 조앤 디디온이 간 것이었다.      


딸과 만난 시절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 퀸타나 루를 처음 만난 것은 1966년이었다. 조앤 디디온이 1934년생이니까, 막 서른이 넘었을 때였다. 그녀는 입양을 하기로 결정하고 지인이 잘 아는 한 산부인과 병원의 의사로부터 한 여자 아기를 입양한다. 이 책에는 그 아기, 딸과 함께한 추억, 그리고 그 딸을 먼저 보내고 남은 엄마의 마음, 그렇게 홀로 남아 노년을 보내고 있는 작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다시, 사진을 떠올려 보자. 그리고 60년대와 70년대를. 그때, 미국은 뉴 저널리즘의 물결이 막 몰아칠 때였다. 버클리 대학에서 공부한 조앤 디디온과 프린스턴 대학을 나온 존 맥피 등이 등장했다. 참고로 두 사람은 세 살 차이로, 존 맥피가 세 살 많다. 난 두 사람 모두를 좋아하는데, 조앤 디디온에게선 캘리포니아의 자유분방함과 시적인 운율, 그리고 현상과 사람에 대한 섬세한 눈길과 독해가 느껴지고, 존 맥피에게선 짜임새 있는 글의 구조와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치밀한 빌드 업이 느껴진다.     


존 맥피가 논픽션과 저널리즘의 세계에 계속 머물렀다면 조앤 디디온은 소설과 희곡, 시나리오를 넘나들었다. 저널리즘과 순수 문학, 그리고 무대와 카메라를 위한 글까지 거침없이 써 내려갔던 것이다. 또, 존 맥피가 뉴저지의 프린스턴에서 태어나, 취재를 위해 여행을 할 때를 제외하곤, 평생을 그곳을 고향과 집 삼아-마치 프로빈스 타운서 거의 평생을 산 메리 올리버처럼-살면서 수많은 글을 남겼던 반면, 조앤 디디온은 캘리포니아와 말리부와 뉴욕과 하와이와, 그리고 수많은 영화 로케이션 장소를 옮겨 다니며 살면서 글을 썼다. 이런 이유로 조앤 디디온의 글엔 명사들, 셀럽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 시기, 그러니까 그녀의 커리어가 정점을 달릴 때, <보그>와 같은 잡지들의 의뢰를 받아 수많은 글을 쓸 때, 가장 바쁠 때, 그녀는 입양을 결정했고 실행했던 것이다. 그 아이가 바로 퀸타나다.


나는 갑자기 오싹함을 느꼈다.
나는 잔을 받아 내려놓았다.
나는 유모차가 필요할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신생아 용품들이 필요할 것을 생각하지 않았었다.
검은 머리카락의 아기는 그날 밤부터 모두 사흘 밤을 성 요한 병원 신생아실에서 보냈다. P.78.

후회

그녀는 아무런 준비 없이 엄마가 됐다. 당연하게도 주변엔 육아에 조언을 해줄 만한 사람이 없었다. 영화배우와 감독과 촬영 감독과 작가들은, 그 자유로운 영혼들은, 그 자유로운 시대에 아이들을 자유롭게 키웠다. 그전 세대를 살아냈던, 두 번의 세계 대전을 겪었던 조앤 디디온의 부모는 멀리 살았다. 조앤 디디온은 그렇게 두려움 속에서 아이를 키웠다.    

 

말리부, 하와이, 뉴욕, 방갈로와 빅토리아풍의 이층 집, 아파트, 심지어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딸을 키웠다. 키우는 동안, 딸과 함께한, 딸이 선사한, 딸과 수집한 모든 흔적들을 차곡차곡 모았다. 조앤 디디온의 남편 조앤 그레고리 듄은 2003년 12월 30일에 죽었다. <상실>은 남편의 죽음을 애도하며 보낸 1년의 시간이 담겨 있다. 그 딸, 퀸타타는 2005년 8월 26일에 죽었다. 불과 마흔 즈음. <푸른 밤>은 딸을 위해, 딸을 기억하며 쓴 책이다.


"기억은 더이상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런 것들이다."P.88  


조앤 디디온은 돌아본다. 후회한다. 그리고 의심한다. 딸이 우울했던 건 내 탓일까? 내가 잘 못 키워서일까? 평범한 가정에서 안전하게 키우지 않았기 때문일까? 내가 준비되지 못해서였을까? 그 아이를 불안하게 했던 건 뭐였을까? 다른 부모들처럼 입양 사실을 숨긴 뒤, 나중에, 철이 들었을 때 말해줘야 했을까? 그 아이가 날 필요로 할 때, 난 그 애 곁에 있었나?     


어떻게 나는 그 아이가 곁에 필요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P.249     
나는 두려움이 무엇인지 안다.
두려움은 상실된 것에 관한 것이 아니다.
상실된 것은 이미 벽 안에 있다.
상실된 것은 이미 잠긴 문들 뒤에 있다.
두려움은 아직 상실되지 않은 것에 관한 것이다.
아직 상실되지 않은 것은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아이의 전 생애에 내가 그 아이를 보지 않는 날은 없다.
두려움은 아직 상실되지 않은 것에 관한 것이다.-P.259


이 책의 영문판, 그러니까 원본은 2012년에 나왔다. 그로부터 십여 년 후, 2021년, 조앤 디디온은 뉴욕에서 타계했다. 시대를 풍미했다는 진부한 표현을 진부하지 않게 들리 게 해줄 사람이었다. 훌륭한 작가였으며 아내였으며 퀸타나의 멋진 엄마였던 조앤 디디온의 명복을 빈다.   


불가능한 행운

딸이 물은 단어는 Tri-Fecta(트라이펙타)였다. 아내가 사전에 찾아 읽어준 첫 번째 뜻은 “경마에서 1등, 2등, 3등으로 들어오는 말을 순서대로 예상하고 돈을 거는 것”이었다. 경마에 돈을 거는 방식엔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한 마리를 맞히는 것, 두 마리 이상을 맞추는 것. 한 마리를 맞히는 건 단승식이다. 두 마리를 맞히는 건 복승식으로, 1등과 2등을 순서에 관계없이 맞추는 것이다. 1등과 2등을 순서대로 맞추는 걸 쌍승식이라 한다. Tri-Fecta는 1등, 2등, 3등을 순서대로 맞추는 것이다. 당연히 배당률도 높고 그만큼 리스크도 크다. 이것이 미국의 경제 용어로 넘어오면 선행, 동행, 후행 지수, 이 세 가지 경제지표가 동시에 부진하게 나타는 것을 말한다.      


어떤 경우에 쓰이든, 흔히 일어나지 않는 일을 표현할 때 쓰는 말임은 분명하다. 살아보니 모든 일은 이렇다. 흔한 일은 없다.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어도, 막상 그것이 내게 일어나면 기적 같은 일이 있다. 살아가는 것도, 살아남은 것도, 그리고 자식을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애를 키우지만 자기 자식을 키우는 일은 엄청난 위험과 매일 만나는 기적이 번갈아 찾아오는 경험이다.


조앤 디디온이 퀸타나를 키웠을 때 가졌던 걱정과 불안, 두려움은 당연한 것이었다. 예민한 작가이어서, 준비가 안 됐던 엄마여서, 심지어 그 시대의 기분과 주변의 흐름에 휘말려서 입양했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니다. 도대체 누가 아이를 키울 준비를 완벽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도 몰랐다. 딸이 열두 살이 되면 초경을 하고, 남자 애들에게 고백을 받고, 유튜브를 보고, 미국 텍사스에 혼자 날아가고, 뉴욕 타임스의 뉴스레터를 보게 될 줄 말이다. 다시 말하지만, 누가 이 모든 걸 예측하고 준비하고 키울 수 있단 말인가? 조앤 디디온에게 이 위로를 전할 수 없어 안타깝다.


사족

책의 완성도, 혹은 번역의 완성도는 여러 맥락에서 말할 수 있고, 처한 입장에 따라 다르게 얘기할 수 있다. 즉 번역가, 출판사, 작가, 독자의 입장이 다 다를 수 있다는 말이다. 우선, 영어를 전공하지 않았고 이 책의 원서를 읽어보지 않은 독자의 입장에서 이 책의 번역, 그 자체에 대해선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하면 이 책의 번역엔 오류가 없을지라도 성의는 없다.     

 

우선 조앤 디디온의 시대와 그녀를 둘러싼 환경과 그녀가 작가로서의 삶을, 퀸타나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사람들과 어울려 성장했는지를, 약간이나마 가늠해 볼 수 있는 단서들인, 이 책에 나온 주요 인물들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 <시민 케인>을 만든 감독의 미망인은 이 영화의 무게로 인해 다들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이애나 린과 코니 월드에 대한 각주가 없는 것은 아쉽다.


다이애나 린(Diana Lynn)은 1940년대와 50년대를 풍미했던 배우였다. 코니 월드(connie wald)는 할리우드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프로듀서 제리 월드의 미망인으로, 죽는 날까지 할리우드 사교계의 안방마님 역할을 했다. 이런 설명이 없이 이름만 나열하는 건 번역가, 혹은 출판사 직원의 직무유기라고 볼 수 있지만, 이 정도는 참고 넘어갔다. 그 이름이 낯이 익어서 일일이 검색하여 찾아봤지만 말이다.     


그러나 내가 실소를 금치 못하며 가장 어이없어했던 건 다음의 문장 때문이다. 이 문장은 조앤 디디온이 인용한 자신의 시나리오 일부다. “플로리다 남부의 달콤하고 무거운 공기 속에서, 아바나가 지척이라 말레콘의 두 가지 색깔 임팔라(아프리카산 영양의 일종)가 보일 것만 같다.”     


참고로 괄호 안의 설명은 책에 있는 것이다. 내가 추가한 것이 아니다. 이상한 곳을 찾았나? 플로리다 남부-아바나-말레콘-임팔라.... 아바나는 쿠바의 수도고 말레콘은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해변이다. 쿠바를, 아바나를 다룬 영화에는 빼놓지 않고 나오는 장소다. 그 유명한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에도....


그럼 임팔라는? 쿠바는 미국이 경제를 봉쇄하기 전, 미국의 대형 세단을 가장 많이 수입한 나라 중 하나였다. 그 경제제재가 1959년에 시작됐기에 현재 아바나와 말레콘 해변을 누비는 대형 세단들의 행렬은 소위 미국의 클래식 카들, 그 향연이라 할 수 있다. 임팔라는 이 당시 쿠바에 도입 됐던 쉐보레의 대형 세단의 이름으로, 말레콘 해변을 검색하면 가장 많이 보이는 자동차다. 차라리 괄호를 쳐서 설명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을 뻔했다. 설마, 정말 쿠바에 아프리카 영양이 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또 하나, 재미있는 건,  이 책을 낸 출판사-뮤진트리-는 조앤 디디온을 존 디디온으로 표기하고 있다. 조앤 디디온과 관련한 국내의 기사와 도서들은 조앤 디디온이라고 표기하고 있는 데 말이다. 이걸 나름의 철학이라고 봐야 할지, 오기라고 봐야 할지, 아니면 오류라고 봐야 할지 모르겠다.


어제 딸과 번역에 대해 얘기하며 이 예를 들었다. 영어 자체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네가 앞으로 활동하려는 분야의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그 분야의 고유 단어나 문화에 대해서도 깊이 알아야 한다고. 그러니 영어“만” 공부해서 영어“만” 잘하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두루 책을 읽고 다양한 경험을 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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