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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ro Apr 04. 2023

네덜란드의 정원사 양 떼들

효율성의 나라 네덜란드에서 잡초를 관리하는 법

나는 도시 출신이다. 서울에서 자란 건 아니지만 서울 태생이고 5살 무렵 이사를 가게 된 도시도 광역시로서 몇만의 인구를 자랑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10대 후반까지 보냈고 해외 생활을 하게 되면서도 살게 된 도시들은 호주의 시드니같이 꽤나 큰 규모인 곳들이었다.


도시태생으로서 태어나서 큰 사이즈의 가축은 물론이거니와 고양이나 강아지를 제외한 동물들을 만져본 적도 체험농장 같은 곳을 제외하곤 한 번도 없다. 어쩌다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나온 이 주제에 이렇게 내가 한 번도 태어나서 소를 만져본 적 없다는 사실에 네덜란드인 파트너는 적잖이 놀랐었다. 


동물을 사랑하는 그는 기필코 내가 소의 아름다움(?)을 느끼길 원했는지 재작년인가 드라이브를 하다 차를 정차시키고는 초원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소를 만져보도록 도와줬다. 남의 소를 이렇게 만져도 되는 거야? 하며 우물쭈물함에 더해 익숙한 다른 동물들의 크기에 비해 엄청난 사이즈에 압도되어 무섭기도 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던 내게 그냥 한번 쓰다듬기만 하는 건데 호들갑이라며 용기 아닌 용기를 북돋아주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2년 전에 태어나서 처음 소를 만져봤다. 생각보다 부드럽지는 않았고, 단단하고 거친 털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쓰다듬던 그 암소가 나의 손길이 좋았는지 고개를 돌리는 순간 나는 더 겁을 먹고 도망가버리긴 했지만.


이 얘기를 왜 하느냐면 그만큼 나는 개나 고양이들 같은 반려동물은 많이 경험해 봤지만 가축으로 여겨지는 소, 말, 양, 염소, 닭은 전혀 경험이 없이 살아왔다는 것이 요지이다.  


5년 전 네덜란드에 도착해 처음 봄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때 아직까지도 신기하게 여겨지는 장면을 목격했다.  바로 봄이 되면 이곳저곳에서 보이기 시작하는 양 떼들이다. 여기서 이곳저곳이라 함은 들판 혹은 초원이나 농장이 아닌 정말 말 그대로 이곳저곳이다. 집 앞 공원, 공터, 회사 앞 뚝, 도로 옆 등등 잡초가 나며 공간이 좀 넓다, 싶으면 양 떼들이 종종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풀을 뜯어먹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자연친화적인 네덜란드 정서에 참 어울리는 장면이기도 함과 동시에 참 똑똑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잡초제거제 등 화학물질을 뿌려 땅을 죽이거나 사람을 고용해 연료를 사용하는 기계를 돌려가며 자연을 해치는 방법보다는 어차피 배고픈 양들도 먹이고, 양들이 돌아다니며 변도 볼 테니 그것들이 다시 비료가 될 테니 말 그대로 상부상조가 아닐 수가 없겠다. 



양들을 사육하는 농가들은 기본적으로 양고기, 양모, 양유, 치즈 등으로 수입을 구조화시킨다. 네덜란드 북부지방 어느 한 인터뷰에 따르면, 양모는 킬로당 30센트까지 낮아질 수 있기 때문에 양 한 마리당 대강 드는 2유로의 비용으로는 마진이 턱없이 부족할 때가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2010년경부터는 수많은 양치기들이 순전히 경관 (혹은 조경 - landscape) 관리를 위해 양을 사육하기 시작했다. 이를 "양 방목"의 시작 - 영어로는 "Sheep grazing", 네덜란드어로는 "schapenbegrazing"라고 한다. 


양치기들이 보통 양을 싣고 오는 방법


적어도 내가 살고 있는 네덜란드 북부에서는 이렇게 양들을 보유하고 있는 농가들에게 정부가 일정량의 보조금 차원의 돈을 지불하여 양치기들이 양들을 차에 싣고 와서 정부의 소유지인 곳에 풀어놓을 수 있게 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제도는 자연보호 단체들과 시 정부가 생태학적 원칙에 따라 공공지역과 네덜란드에서 흔히 보이는 제방 (dike) 지역에 양을 (통제하에) 방목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방목이라고는 하지만 지형이나 원하는 결과에 맞도록 맞춰서 양치기가 상주하여 양 떼를 관리하거나 주변에 펜스를 쳐서 통제하기에 사람이 살고 있는 곳에 갑자기 출몰하거나 하는 일은 없다. 


네덜란드 제방에 방목된 양 떼들과 양치기, 그리고 양치기 개 보더콜리 - 개인적으로 가장 네덜란드스럽다는 느낌의 사진 중 하나.. 제방 옆은 강이 아니라 운하이다.


양을 방목함으로써 이득을 얻게 해주는 생태학적 원칙이라 함은 양들이 단기간동안 풀을 뜯은 후 다시 풀이 자랄 시기에 휴가를 주어 다음에 다시 초목을 시작할 때엔 더 다양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잡초는 더 적게, 대신 자연 생태계에 유익한 종류의 풀들은 더 많아지게 한다는 게 이론이다. 

더불어 양들의 발굽이나 털에 가끔 씨앗등이 붙어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운반하는 경우도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최대 27개의 꽃이 피는 식물들의 씨앗들이 한 양의 털에서 발견되어 최대 7개월 동안 머물 수 있으며 양 발굽에서는 최대 48종의 씨앗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양 떼는 최대 100km 반경 이상의 지역에 씨앗을 옮겨 생태계를 더 다양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Sim, 2017).




탄소중립이니 지속가능한 경영이니 환경보호가 뜨거운 감자인 요즘 세상이다. 이에 따라 기업들이며 정부며 너도나도 하나뿐인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 뛰어들며 여러 가지 계산이나 숫자가 뒤얽힌 가끔은 허울 좋은 그린워싱 (green washing)으로 뒤덮힌 새로운 지침들을 내놓기도 한다. 이런 와중에 이렇게 직관적이며 간단한 방법으로 도시의 조경을 관리함과 동시에 농가들의 생존을 격려하고 더불에 환경까지 생각하는 네덜란드의 방침은 귀감이 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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