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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ero Jun 21. 2023

네덜란드에서 자전거 타기

자전거의 나라, 자전거의 천국

보통 한국인들은 네덜란드 하면 풍차나 튤립, 혹은 가끔가다 하멜 표류기를 떠올린다. (참고로 하멜 표류기 자체도 상당히 흥미로운 내용이라 이에 대해서도 나중에 포스팅을 작성해 볼 계획이다.) 그러나 다른 유럽국가 출신인 사람들에게 물으면 대부분 대마초, 파티, 치즈, 그리고 자전거의 얘기가 나온다. 



네덜란드에는 자전거의 수가 사람의 수보다 더 많다.


2015년도의 조사에 따르면, 36%의 네덜란드 사람들이 자전거를 가장 흔한 교통수단으로 사용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가장 흔한 교통수단으로 사용한다는 얘기는 장소이동 시 1순위로 자전거를 사용한다는 의미이다. 영국, 프랑스, 아일랜드는 약 5% 의 자전거 사용률에 그친다고 한다. 아무리 다른 나라들보단 높다 하더라도 체감상 느끼는 것에 비해 그 비율이 더 낮게 나와서 좀 더 조사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도시의 크기가 커질수록 그 비율은 50% 이상까지 도달하게 된다. 생각해 보면 말이 되는 것이 남한의 면적보다 작은 나라인 네덜란드이다.


작은 땅덩어리에서 도시랍시고 옹기종기 모여 살다 보니 사람 살 집이나 건물 짓기에도 바쁜데 거기에 몇 차선씩이나 되는 도로를 깔 형편이 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도심 내에서는 정말 정말 흔하게 일방통행 차선들이 보이고, 그마저도 요새는 도시 중심에는 아예 차량 진입이 불가하도록 규제가 바뀌는 추세이다. 그래서 네덜란드 사람들은 아주 멀리 가는 것이 아니라 본인 도시 내에서의 이동이라면 보통 자전거를 탄다. (사실 아주 멀리 가더라도 기차 시스템이 워낙 잘 되어있어서 기차를 더 많이 타는 것 같다. 네덜란드 철도공사에 따르면 매일 백만 번 이상의 여정이 기차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나도 만약 직장이 다른 도시에 위치하지 않았더라면 출퇴근을 자전거로 했을 거다. 유학 시절에도 내내 자전거로 얼마나 쏘다녔는지 버스를 탄 적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으니 말 다 했다. 나는 지금도 내가 사는 지역 내에서는 무조건 자전거만 탄다.


한국에선 그 반대로 자전거를 타고 다녔것이 아주 오래전이다. 고등학교시절 용돈을 벌어보겠다고 난생처음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내가 사는 곳과 아르바이트 장소는 꽤나 멀었고 그 당시엔 버스비도 부담이 되었던 데다가 두 곳을 연결하는 버스 노선이 석연치 않았다. 마감 쉬프트를 하는 날이면 이미 막차가 끊겨있는 때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어디에선가 얻어왔지만 쓰이지 않아서 먼지가 쌓여있던 자전거를 출퇴근길에 쓰기로 했다.

내가 기억하는 흔한 한국의 자전거 도로 상황

그러나 이게 녹록지 않았다. 이도 10년 전이니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 당시만 해도 내가 살던 대전은 도시 중심에 흐르는 갑천 주변을 제외하고는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있지 않았었다. 강변을 벗어 자면 인도와 합쳐져 색만 달리 줄만 죽 그어져 있는 곳은 자전거 도로로 만들어졌지만 그 누구도 자전거 도로처럼 쓰지 않았다. 보행자들도 자전거 도로를 무시하고 그 위를 걸었고, 자전거를 타는 이들이 아무리 벨을 울려도 심드렁하게 쳐다보면 양반이고, 그게 아니면 험한 말을 듣기가 일쑤였다. 자전거가 자전거 도로 위로 달리는데 그 누구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러한 자전거도로마저도 어느 지점에선 뜬금없이 뚝 끊겨버리기 일쑤여서 밤에는 차도에서 자전거 후방등과 전방등에 나의 안전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채로 주행했었다. 나는 3개월의 알바를 마친 이후로는 한국에서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


그러다가 네덜란드에 처음 여행 왔을 때 (네덜란드에 오기로 결심하게 된 여행) 자전거를 다시 타게 되었다. 이탈리아에서 살 적 한 번인가 마지막으로 자전거를 탄지 5년이 더 흐른 후였다. 마스트리흐트 중심부에서 걷기엔 좀 멀지만 버스 타기엔 좀 애매한 거리에 친구가 살고 있었고, 이미 네덜란드 생활에 완벽 적응되어 있던 친구는 내가 쓸 자전거까지 구해놨으니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 된다고 했다. 그전에도 자전거야 씽씽 잘 타고 다니긴 했지 몇 년 만에 그것도 외국에서 자전거를 탈 생각을 하니 괜스레 겁이 났다. 


이게 나의 네덜란드에서의 첫 자전거 경험이었는데, 아직도 기억나는 건 그 한겨울에도 자전거를 막상 타기 시작하니 몸이 기억을 하자마자 신나게 자전거로 온 동네를 활보했다는 거다. 그리고 더 중요하게도, 자전거를 신나게 타게 해주는 요소들이 너무나도 잘 구성되어 있었다.




마스트리흐트 대학교의 한 논문에 따르면 네덜란드는 자전거에 관련한 여러 가지 바로미터들을 종합하여 보았을 때 - 자전거 소유율, 자전거 관련 시설의 수, 인구 당 자전거가 쓰이는 거리 등 - 세계에서 가장 자전거가 많이 쓰이는 국가라고 한다 (Stoffers, 2012). 네덜란드에서 자전거 이용이 이렇게나 수요와 인기가 높은 데에는 정부의 힘이 크다. 정부 차원에서 자전거 친화적인 다양한 법률과 기반 시설들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 반대로 자가용에 대한 세율을 높이고, 주차 및 도로 시설 수를 줄이는 등 그 실용성을 떨어트려 더 효과적으로 자전거 활용을 적극적으로 추진시킨다. 


이렇게 정부가 친-자전거주의적 정책을 피고자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선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며 네덜란드도 다른 유럽의 주요 국가들처럼 넘쳐나는 자동차 수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당시 5명당 1.5대의 자동차의 비율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와 비교하여 생각했을 때 그다지 많은 수가 아니라고 생각이 들 수 있으나 이는 오직 숫자의 문제만이 아니다. 유럽의 국가들은 한국처럼 다양한 공사를 통해 도로 등 기반시설들을 발전시킨 것이 아닌 중세시대 때부터 간직해 온 기반 시설을 아직까지도 갖고 있었고 아직도 갖고 있는 곳이 많다. 당연히 이러한 오래된 도로들은 자동차 이용에 적합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자동차 관련 사고율은 나날이 높아져만 갔다. 


높아진 사고율은 사망자수도 높여만 갔고 가장 큰 문제는 이 사망자수의 많은 이들이 아이들이었다는 거다. 집 앞에서 뛰어노는 게 당연했던 아이들이 자동차 사고의 피해자가 쉽게 되었던 것이다.  1971년만 해도 약 3000명이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고 그중 500명은 아동 청소년이었다고 한다. 이는 대중들의 마음을 동요시켜 Stop de Kindermoord (청소년 살인을 금지해라)라는 정서로 이어졌다. 이러한 반감이 깔린 정서에 더해서 1973년도에는 기름값이 폭등했고 이때부터 네덜란드 정부는 어떻게 하면 자동차 사용률을 줄일지 고안하기 시작하게 된다.



아인트호벤에 위치한 공중 자전거 로터리


이러한 고안 중 시발점으로 네덜란드 정부는 엄청난 숫자의 자전거 도로를 만들기 시작했다. 현재 네덜란드는 총 3만 5천 킬로미터가 넘는 자전거 도로를 보유하고 있다. 자전거 도로를 만드는 데에 그치지 않고, 네덜란드 정부는 대부분의 로터리, 사거리 혹은 길이 교차되는 지점들에서 자전거가 우선 주행권을 갖도록 하게끔 법률을 조정했다. 네덜란드에 살다 보면 교차로 등에서  “fietsstraat auto te gast,”라고 쓰인 것을 볼 수 있는데, 직역하면 "자전거 도로. 자동차들은 게스트임." 정도가 되겠다. 그러니까 즉 이 도로의 주인은 자전거들이라는 거다. 네덜란드 전체의 60% 이상의 도시들은 아예 자전거 도로가 일반 자동차 도로와 분리되어 있는 시스템을 구축시키기도 했다. 로터리조차도 자전거만! 다닐 수 있는 자전거 전용 로터리가 있는 경우도 있다. 


정말 자주 볼 수 있는 완전 분리형 자전거 도로. 차도와 정말 분리되어 안전하다. 

그래서 네덜란드 사람들은 자전거가 언제나 왕이다,라는 농담을 한다. 심지어 보행자보다도 더 우선시되는 경우도 있다며 너스레를 떤다. (사실은 언제나 보행자가 왕이지만 네덜란드에선 보행자 수보다 자전거 타고 다니는 사람들 수가 훨씬 많아서 하는 농담이다.) 네덜란드에서 운전을 하다 보면 보행자보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자전거들을 칠까 봐 더 걱정하며 다니게 되기도 한다. 언제나 자전거가 우선 보행권이 있기 때문에 사고라도 난다면 다 운전자 책임이다.


좌: 흔한 공용 자전거 보관소의 풍경 / 우: Utrecht 자전거 보관소는 총 3개의 층으로 나뉘어져 있다.


자전거 도로뿐만 아니라 네덜란드는 고개만 돌려 어딜 봐도 자전거를 세워둘 수 있는 거치대들을 정말 쉽게 볼 수 있고, 특히 좀 크기가 있는 기차역들은 이 자전거 거치대들도 이중으로 되어있어서 꽤나 장관이다. 네덜란드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모든 지역을 쉽게 연결시켜 주는 도시인 Utrecht - 한국으로 치면 대전처럼 - 는 네덜란드에서 가장 큰 자전거 보관소를 보유하고 있는데, 총 1만 2천500대의 자전거를 보관할 수 있다고 한다. 나도 Utrecht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려다가 이 보관소에서 길을 잃고 헤맨 적이 있을 정도이니, 그 크기가 조금은 가늠이 갈 것이다. 아, 자전거 보관은 당연히 무료이다. 




영국의 한 기관 조사에 따르면 자전거 이용률을 높이는 것은 환경친화적으로 지구 보호 차원에서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인지와 건강 향상을 고무화시켜 사회적으로도 긍정적인 영향이 있으며 사람들의 생산성을 높이기도 한다고 한다. 이렇게 긍정적인 영향을 경제적으로 수치화시키면 네덜란드에서만 연간 약 12억에서 38억 유로의 효과가 있다고 하니 어마무시하다고 할 수 있겠다. (참고로 이 수치는 자전거를 탐으로써 절약되는 유류비, 자전거의 사용으로 늘어나는 자전거 관련 산업 종사자의 수, 그리고 자동차를 살 형편이 되지 않는 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통학 또는 통근을 함으로써 얻는 이익 등을 합해서 추산한 것이라고 한다.) (Tannat, 2022) 


이제 나는 네덜란드에 살면서 자전거 없이는 못 사는 사람이 되었다. 출퇴근을 제외하면 자전거를 쓸 일이 아예 없다. 아니, 최대한 그럴 일을 만들지 않고 최대한 피한다. 시내에 차 끌고 나갔다간 스트레스만 더 받고 자전거로 10분 만에 갈 수 있는 길을 차를 가지고 가면 뺑뺑 돌아 30분이 걸리기도 하는 데다가 주차까지 고난이다. 


더불어 자전거가 내게 제공하는 자유로움이 나는 정말 좋다. 마음만 내키면 어디든지 나를 데려다주고, 내가 마음 가는 곳에 언제든지 멈춰서 둘러볼 수 있다. 물론 날씨의 영향을 받긴 하지만 이도 살다 보면 적응되어 웬만한 비바람이 불어도 자전거를 거뜬히 타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의 구석구석을 나의 낡은 자전거와 탐험한다. 시내에서 놀다가 분위기가 좋아지면 술 한두 잔도 마셔도 된다. 더 시간이 늦어져도 막차 끊길 걱정이나 택시비 혹은 대리비 걱정도 없다. 나와 자전거만 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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