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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 햇살씨 Aug 27. 2023

카페 그 여자

아들을 학원에 데려다주고 2시간의 대기시간. 이 시간에 늘 이용하는 카페가 있다. 그날도 아이를 학원 앞에 내려주고 남편과 함께 카페로 향했다. 주문한 커피를 받아들고 2층으로 올라가는데, 앞서 올라가는 여성의 뒷모습이 유독 시선을 끌었다. 


요즘 유행을 따르지 않은 패션때문이었을까. 까만색 가죽 미니스커트에 까만 하이힐. 늘씬한 몸매. 속으로 ‘와우! 멋지다!’ 생각하며 그녀의 뒤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남편은 늘 앉았던- 창밖을 바라보며 일렬로 앉게 되어있는 -자리에 앉지 않고 머뭇거렸다. 둘이 앉기엔 좁아서 그런가 생각하며 자리를 잡길 기다리고 있는데, 늘 앉던 자리를 등지고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남편 맞은편, 그러니까 남편이 늘 앉았던, 창밖을 내다보는 자리를 바라보며 앉았다.


남편은 책을 읽기 시작했고, 나는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순간, “또그락 또그락 또그락” 하는, 큰 구두를 신어 헐떡거리는 소리가 조용한 카페를 울렸다.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나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아까 앞서 올라갔던 여자가 종이컵에 물을 따라 자신의 자리로 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녀의 자리는, 남편이 늘 앉았던 바로 그 자리였다. 창밖을 바라보며 창밖 풍경을 감상할 수도 있고, 혼자만의 세상에 잠길 수 있는 그 자리. 카페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뒤통수만 보인 채 은둔할 수 있는 바로 그 자리.


그런데,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갑자기 뒷모습만 보이던 그녀가 힐끗 나를 쳐다보는 순간, 양쪽 팔의 잔털이 모두 일어서는 느낌이 들었다. 틀어 올린 머리는 자세히 보니 흰머리가 가득했고, 얼굴엔 주름이 자글자글 흘러내릴 듯했으며, 짙은 회색으로 칠한 아이섀도 때문인지 눈이 퀭하게 움푹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 와중에 눈빛은 매서우면서도 이 세상의 사람이 아닌 듯한 빛을 풍기고 있어 소름이 돋았다. 마치 심장을 꺼내기 위해 표적을 정하고 노려보는 듯한 불길한 기운에 나도 모르게 시선을 황급히 거둬들이고 노트북만 쳐다봤다.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가 싶어 노트북을 바라보면서도 내 시야는 여자를 향해 열려있었다. 여자는 포스트잇에 끊임없이 뭔가를 쓰고, 영수증을 살펴보면서 혼잣말을 하더니, 다시 자신의 발보다 큰 하이힐 때문에 “또그락 또그락 또그락”거리며 냅킨을 가지러 왔다 갔다 하는 중에도 묘하면서도 싸한 기운을 풍기며 나를 쳐다봤다.


여자에게 신경을 끄기로 작심하고, 블로그에 글을 쓰다가 앞에 앉은 남편에게 무슨 말을 건네는데, 남편보다 먼저 여자가 뒤를 돌아 또 그 어두움 가득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순간순간 내가 움직임을 바꾸거나 남편에게 이야기를 건넬 때마다 그렇게 뒤를 돌아서 나를 바라보는 여자의 날카로운 눈빛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계속 쳐다보고 있으면 어둠의 수렁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여자를 등지고 앉기 위해 남편의 옆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여자와 나는 서로 등을 보인 채 앉아있었지만, 어쩐지 그녀의 등마저 내 등을 노려보고 감시하고 있는 듯한 기운이 느껴져 마음이 불편하던 찰라, 내 오른쪽으로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는 모습이 보여 시선을 그들에게 옮기면서 나는 또 보고 말았다. 몸을 오른쪽으로 반쯤 틀어 고개를 돌린 채 먹이를 노리듯 나를 바라보는 여자의 눈빛을. 그것은 정말, 금방이라도 내 목을 물어뜯어 피를 빨아먹을 것만 같은 드라큘라의 그것과 흡사했다. 그녀가 내 목에 날카로운 이를 내려 꽂는 상상을 하는 바로 그 순간, 아들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어디에요?”


“어! 카페. 지금 나갈게!”


남편에게 얼른 짐을 싸라고 말하며 짐을 싸서 도망치듯 카페를 나서는데 뒤에서 누군가 내 오른쪽 어깨를 꽉 움겨쥐듯 잡았다.


“악!!!!”


돌아보니 그 여자였다.     


“왜 이러세요!!!”


소리치듯 물었다. 덩달아 놀란 남편도 내 손을 잡으며 옆에 나란히 섰다.     


주름 가득하고 움푹 꺼진 눈의 그 여자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웃음소리는 나지만 얼굴이 일그러져 우는 것처럼 보이는 여자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오른손을 귀 옆으로 가져간 그녀가 얼굴을 벗겨냈다. 마치 마스크팩을 벗듯.     


벗겨진 가면 속에서 우스워 죽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깔깔거리고 있는 막내 딸의 얼굴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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