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바다 Feb 02. 2024

기록은 기억을 이기고
시간보다 오래 남는다

- 호모 비아트로(Homo Viator) 걷는 자

  앨범을 열자 사진은 마치 마법의 문 같다. 열면 그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여행의 감동이 새록새록 떠오르게 한다. 삶의 한 장면을 아름답게 담아낸 보물이다. 시간을 초월한 감동과 순간이 언제까지나 기억될 흔적들이 담겨 있다. 풍경, 사람들, 음식들이 마치 살아있는 듯 보인다. 함께한 이들의 따뜻한 미소, 도시의 번화함, 자연 속의 평온함, 각인되는 예술품과 향기, 소리 맛까지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변화 없는 삶에 외줄 타듯 하루하루를 보내다 떠나는 여행은, 새로운 전환점과 변곡점을 만든다. 혼자 여행하기에 부족함을 느낄 즈음, 여행을 좋아하는 지인들과 뭉쳤다. 한 달에 일정한 금액을 모아서 목적지를 정한 여행을 가자고 의기투합했다. 목적지를 정한 여행은 목표가 있어 바램과 기대가 충만하다. 그냥 떠나는 것이 아니라, 일정표가 정해지고 나면 여행지 탐색을 시작한다. 간접적인 사전 답사는 여행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스토리 텔링 없는 문화재는 없기 때문이다. 실체와 의미가 더한 여행지는 여행자에게 색다른 감동과 감흥을 준다.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경험과 즐거움으로 가득하게 한다. 다양한 문화와 환경을 경험하고, 새로운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동시에 마음을 휴식시킨다. 고대의 건축물, 유적지, 박물관 등 이러한 경험들은 역사적인 이해와 인식을 풍부하게 만든다. 과거가 보여주는 문화재의 결단과 지혜는 현재 상황을 생각하며 약간의 카타르시스도 느낀다.      


  가장 가고 싶은 여행지를 꼽으라고 하면, 한때 세계의 배꼽으로 남미대륙을 호령한 잉카문명이다. 잉카제국의 영고성쇠를 한 몸에 안았던 쿠스코의 영광은 스페인 정복자에 의해 무참하게 파괴되었다. 인고의 신음소리가 가득한 곳, 정복자에 의해 기술된 뭇 이야기들의 신화나 전설 수준에 머물며 역사의 문턱을 넘지 못한 곳이다.

  기록으로 남은 정확한 역사는 본질로의 회귀가 아닐까?

  기록으로 남겨지지 않은 실체를 보는 일은 현재를 있게 해준 근원에 대한 인정이다. 앞으로의 삶을 희구하는 동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때 남미의 대제국이었던 잉카왕국이 불과 500년 전까지도 문자가 없어 기록을 남기지 못한, 역사가 없는 선사시대를 살았다는 게 선뜻 이해가 안 된다.

  그러기에 실체를 보고 시간을 거스른 길을 걸어 보고 싶다. 길을 걸으면 시대를 살았던 문화와 삶을 느낄 수 있기에, 한 번은 꼭 가야 할 버킷리스트 여행지다.    

  

호모 비아트로(Homo Viator) 걷는 자     


  여행지에서 걷기를 좋아한다. 

  단순히 명소나 경치를 감상하는 것을 넘어 감각적인 측면을 높인다. 프랑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사람은 호모 비아트로(Homo Viator), 즉 걷는 자, 여행하는 인간이라고 규정한다. 먼 옛날 몇백만 년 전 수렵 생활을 하며 걸어 다닌 인간의 DNA에는 걷기와 이동의 본능이 숨어 있지 않나 싶다. 숙명적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 항상 길 위에 서서 떠나고 돌아오고 방랑하며 사색하는 유전자를 지닌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심해지는 아쉬움, 후회, 허전함, 목마름, 외로움 등을 떨쳐내는 데는 여행만 한 게 없지 않나 싶다. 

  “방랑은 찾을 수 없는 대상에 대한 그치지 않는 갈망, 잃어버린 어머니를 애타게 찾는 마음이다.” 스위스의 정신분석학자 칼 융의 말이다. 떠남은 주체 못 할 본능인 것 같다. 누군가 “걷기란 두 발로 다다르는 행복이다.”라고 말했다. 오랜 시간 걷다 보면 일, 인연, 복잡하고 흩어진 생각에서 벗어나 홀가분하게 나 자신만의 시간을 갖게 된다. 그러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 자신이 시공간 속으로 빠져든다. 시간 여행을 통해 자신과 호흡하는 실체를 본다. 마치 동시대를 함께 사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펼쳐두었던 앨범에서 묻어나는 향기와 흔적들을 접어서 다시 책장 안으로 넣는다. 앞으로 앨범은 더 많아질 것이다. 동안, 바다를 건너는 여행지에 시간을 많이 보냈다. 중에는 제주도 한 달 살기에 관한 앨범도 있다. 다채로운 매력을 지닌 국내 여행지들이 많이 있다. 그곳을 여행하면서 앨범들을 하나씩 묶을 생각이다. 기록은 성장과 발전, 지혜를 보여주는 자신의 근거이자,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수단이다. 어떤 어려움을 극복했는지, 어떤 목표를 달성했는지를 확인하며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기록은 기억을 이기고 시간보다 오래 남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