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더듬어 책상 상태를 확인한다. 조심조심 주변에 무엇이 있나 살핀다. 불안하다.
“암흑카페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가만히 앞사람 어깨에 두 손을 올리고 들어서는 순간, 암흑으로 변했다. 눈을 뜨고 있지만, 감은 것과 같다. 진행자가 책상에 앉아 음료 주문을 시키라고 한다. 장애인식 개선사업에 초대된 순간 난 장애인이 되었다.
계시면 음료를 배달해 드리겠습니다.”
주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차가운 감촉으로 찾아 한 모금 마셨다. 차가운 게 들어가니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뒤이어 시각장애인이 영화를 보는 방법과 휴대전화기 글을 읽는 기계, 자판 입력, 사진을 읽어 주는 걸 자세히 설명해준다. 음료수 제품명을 손가락으로 만졌다. 점자가 만져졌다.
대한민국 장애인 비율은 5.2%, 그중 후천적 장애인 비율이 88.1%다. 10명 중 9명은 잠재적 장애인인 셈이다. 미국은 12.8%, 스웨덴 16.8%, 호주 18.3%다. 선진국일수록 장애인 비율이 높다. 그 이유는 암, 에이즈, 알코올중독도 질병에 포함하기 때문이다. 이민자를 포함하는 국가도 있다. 말과 생활환경이 변해 소통되지 않으니 장애인으로 본다.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과 범주를 다르게 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나올 수 있도록 사회적 환경을 개선하라는 권고를 유엔으로부터 받았다.
시각장애인 인구는 25만 명 정도이며, 점자 표기는 63%로 2022년 기준이다. 음료수 제품명도 겨우 기재되어 있다. 유통기한, 알레르기 정보도 없어 안전에 취약하다. 현행법에 표기 의무가 없으며 지정된 것은 의약품뿐이다. 갑뚜기라 불리는 컵라면에는 전 제품에 점자가 표기돼 있다. 컵밥 14종, 용기, 죽 8종에는 제품명, 물 붓는 선, 전자레인지 사용 여부까지 점자로 표기했다. 마시는 음료에도 음료, 탄산으로 점자가 표기되어 있지만, 유통기한은 아직 되어 있지 않다.
암흑카페에서 시각장애인을 설명하는 그녀는 고등학교 때 문학 동아리였던 ‘세리을’ 후배다. 색소 망막증을 앓아 시각을 상실했다. 유명한 모 대학 문예창작학과를 나온 그녀의 시 낭송을 시민단체 모임 발대식에서 들었다. 몸에 소름이 돋았다. “김민서의 시 낭송”이라는 제목으로 “붉은색 옷을 입고 간다” 시집에 시를 실었다. 오영수 문학관 기념회를 하면 단편 소설 한 권을 외워서 낭독한다. 경이로울 뿐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넘어 다양한 시각과 경험을 통해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어려운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고 끈기와 인내를 발휘하여, 직면한 도전들을 극복하는 그녀를 보면 늘 경외감을 느낀다.
감각의 전환이 이뤄졌다. 난 장애인이 되고, 시각장애인은 비장애인이 된다. 시각을 잃은 대신 청각과 촉각, 후각 등 다른 감각에 의존한다. 경험을 체험함으로써 일상적인 어려움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어둠 속에서는 시각적 요소가 중요하지 않아 상대방을 판단할 때 내면적인 특성과 대화의 내용에 더 귀를 기울여 집중했다. 그래서 사람 간의 협력과 의사소통이 명확해졌다.
행사를 마치고 불을 켰다. 헬렌 켈러의 “3일만 볼 수 있다면” 문장이 떠올랐다. 첫째 날은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보겠다. 둘째 날은 밤이 아침으로 변하는 기적을 보리라. 셋째 날은 사람들이 오가는 평범한 거리를 보고 싶다. 단언컨대, 본다는 건 가장 큰 축복이다.
울산은 세계 3대 자동차 생산, 판매 회사를 보유하고 있는 도시다. 공업 도시라 산업재해로 후천적 장애인도 많다. 그렇지만 저상버스 보급률 전국 최하위권이다.
어느 영화에서 본 장면이 생각났다. 장애인 한 분이 내린다고 벨을 누르자, 운전기사는 버스를 정차하고 내려와 휠체어를 조심스럽게 내리고 손을 흔들고 버스는 떠났다. 울산에도 그런 날이 오리라 기대하며 희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