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 잠수

나의 기준에게

by 이공계 문과

아주 오래전, 물에 빠진 적이 있었다. 아무 방향에서도 잡을 것이 없고, 입과 코로 물이 사정없이 밀고 들어온다. 밖은 분명 따뜻할 테지만 온몸은 추위에 잠겨있다. 아빠가 나를 발견하기까지 걸린 10초가 그토록 길게 느껴진 것은 처음이었다. 기침 몇 번과 헛구역질 몇 번을 하고, 다시 물에 멀쩡하게 들어갔지만 벽에서 그리 멀리 가고 싶지는 않게 되었다.


나는 방향이 없는 것을 싫어한다. 정확히는 견디지 못한다. 만약 정말로 신이 인간을 만들었다면,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은 감각기관일 것이다. 무언가를 보고, 상황이 더 잘못되지 않게 조치를 취할 기회를 준 것이다. 불행히도 나는, 기회를 꼭 잡아야 하고 싶은 사람이다.


내가 이전까지 살아왔던 공간은 기준이 늘 있었다. 학기말 성적 90점 이상은 A. A가 많으면 그만큼 서류 심사가 더 수월해지고, 면접에 갈 수 있겠지. 모두에게 적용되는 기준과 그곳에 잘 맞춰 살고 있는 나. 딱딱 맞아떨어지는 것이 그리 편안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기준이라는 것이 있었으니까.


고등학교는 좀 달랐다. 기준은 늘 움직였다. 이 점수가 끝이 아니고, 이 평균은 평균일 뿐이다. 내 위치는 정해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유지되지도 않았다. 남들이 움직이는 것에 따라, 나도 힘없이 흔들릴 뿐이었다. 물속 플랑크톤이 된 기분이었다. 운이 나쁘면 다른 플랑크톤이 내가 먹을 먹이를 먹어버리지만 그렇다고 내가 운이 나쁜 플랑크톤이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누군가와 함께 있지만 항상 혼자 흔들렸던 내가 있는 곳은, 일종의 수중 생태계였다.


하찮은 원생생물이 된 김에 발악이라도 해보고자 했다. 열심히 꿈틀거리는 특이한 플랑크톤을 대학이 안 좋아할 리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최선을 다해 발버둥을 친다. 유당불내증이 있으면 유제품을 먹지 않으면 된다. 카페인이 몸에 잘 안 받으면 마시지 않고 허벅지를 찌르며 버티면 된다. 벼락치기가 힘들면 자습시간을 쪼개 복습을 하는 루틴을 만든다. 자극과 반응. 딱 원생생물 같은 삶이다. 아주 원시적인 삶. 그것도 모자랐는지 내가 잘 꿈틀거릴 수 있는 곳을 찾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은 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깊은 심해였다.


더 깊이 내려가고자 했던 마음은 없었다. 사실,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남들과 같은 곳에서 같은 행위를 해 봤자 아무것도 안 될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가진 것이 어중간한 내신밖에 없는 학생. 그 뒤에는 엄청난 노력이 있겠지만, 그래도 남들보다 눈에 띄지 않는 학생. 저주 같은 말이다. 본능적인 직감이 말했다. 저 말은 내게 붙어서는 안 된다고.


다른 사람들은 심해로 가기 두려워했다. 정확히는, 무언가를 더 하기 두려워했다. 내가 들어갔던 곳은, 그전 해에 맥이 끊긴 올림피아드였다. 맥이 끊겼다는 생각 때문인지, 충분한 실력이 있었음에도 실패하게 된 당사자 때문인지 아무도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았다. 나와 함께 출발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내신과 대외활동 모두를 잡으려는 생각을 대부분 접었다. 전공에 맞지 않아서, 성적이 떨어질까 봐, 될 확률이 희박하다 생각해서. 모두 타당한 생각이라고 느꼈다. 내게는 그렇지 않기를 바랐다.


올림피아드도 기준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느 절벽에서 돌을 관찰한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멈추지 않는다. 저 낡고 오래된 돌의 이야기를 읽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다. 이 개념을 이해한 사람이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얼마나?'라는 물음은 항상 해결되지 않았다. 그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하면 된다는 것뿐이었다.


이 사태에 지치고 싶었다. 사실 지칠 수 없었다.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다. 이미 내려왔고, 기준이 없는 것을 이미 알았음에도 내려온 내 잘못이다. 다시 올라간 후 그에 대한 값을 지금 치르기에는, 나는 너무 허약하다. 내게는 아무것도 없고, 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질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 그것을 깨닫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의미 없이, 시간 낭비만 하며 다시 '평범한 학생'으로 입시를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무언가를 꼭 남겨야겠다는 강박이 생겼다. 수업을 들을 때마다, 답사를 갈 때마다 그날 들은 모든 것을 정리한다. 이 지층이 왜 이렇게 생겼는지, 이 구조를 뭐라고 하는지 될 때까지 외운다. 비바람이 불 때 보았던 돌을 생각한다. 이미 차갑고 축축해져 버린 손가락 아래, 오히려 부드럽게 느껴지던 암석 조각. 이걸 뭐라고 불렀더라? 아마 셰일이었겠지.


눈이 빠질 때까지 자료를 본다. 여기서 찾아지지 않는 자료는 어떻게든 인터넷을 뒤져야 한다. 하나의 촘촘한 그물처럼 다 연결이 될 때까지 읽는다. 지구과학은 기본적으로 암기다. 하지만 그 너머, 추리와 사고로 넘어갈 그 경계에 내가 서 있었다. 지금은 잘 아는 길을, 그때는 목표를 찾아 미친 듯이 헤매고 다녔다. 끝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기준이 없으면 그 최대치를 보고자 하는 끝장나는 사고를 가진 채.


정상이 아닌 사람이다. 잘하고자 하는 욕심이 있고 뭐가 나오던 끝을 보고자 하는 상태. 지금까지와 다른, 처음 보는 나를 마주쳤다. 지금까지 의미와 기준을 찾으려고 했다면, 이제는 그저 생존하고자 발광하는 불쌍한 생물. 내 한계를 마주할까 봐 전전긍긍하면서도 이상하게만치 두려워하지 않는 내가 낯설었다. 사실 기준을 발견했다. 이 기준도 변한다. '나'의 상한선이, 기준이 되었다.


기준은 변했다. 처음 보는 장소에 가서 풀을 헤집고 다녀도, 외국인들이 어렵게 번역한 말을 한마디도 안 귀담아 들어도, 물을 마시지 않아 눈앞이 노래져도 그저 그랬다. 아직 기준에 닿지 못했고, 기준이 계속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도 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다. 살아남으려고 맛없는 밥을 꾸역꾸역 먹었다. 너무 먹지 않아서 일주일 만에 뼈가 다 드러났다. 처음 겪는 모든 상황이 신기하면서도 이상했다. 분명 고통스러워야 하는데도 무언가를 내가 이뤄낸다는 것이 신기했고, 또 불안했다. 감정이 꾸역꾸역 저 아래 어딘가로 밀려 내려가 있었다. 꺼내 오기 귀찮아서 그냥 두었다. 저 깊은 곳 어딘가에서 집에 가고 싶다고 미친 듯이 소리쳤지만, 아마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8월의 어느 밤, 나의 심해는 끝났다. 올림피아드의 내가 끝났다. 끝났다는 감각조차 없었다. 헐렁해졌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불편했던 단복 단추를 대충 푼 채 아주 얕은 잠을 잤다. 공항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엄마와 아빠가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만큼 얕게. 꽤 오랫동안 얕은 곳에 가고 싶었다는 생각을 그제야 풀어주었다. 그때는, 조금이나마 행복했던 것 같다.


내가 다시 기준에 닿는 일은 없었다. '내' 기준은 어떤 상황에서나, 잘 작동했다. 대학에 있어서, 면접에 있어서, 나에게 있어서 모두. 나는 '평범한 학생'이 되지는 않았다. 대단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눈여겨볼만한, 그런 사람. 특이한 비트로 움직이는, 엷은 햇빛이 드는 곳에서 온 것 같지 않은 원생생물.


물에 빠지면 해야 할 일이 있다. 우선 힘을 뺀다. 발버둥 칠수록 더 물에 빠질 것이다. 몸의 자연스러운 부력으로 물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부력을 몰랐던, 아니 알고도 어딘가 감추어 두었던 나. 그런 나는 지금도 언젠가, 다시 심해가 그리워질 날을 기다릴 것이다. 물론 이제는, 숨이 막히면 내가 왔던 곳을 다시 되돌아볼 수 있다. 내가 지나왔던 곳을 정확히, 잘 알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