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함, 나, 그리고 내가 모르는 것
나는 - 타인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다.
아주 어렸을 때는 주변 사람들에 대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분명 선생님이 떠들지 말라 하셨을 건데 저 아이들은 왜 그러는 건지 이해를 못 했다. 대쪽 같은 성격의 영향인지, 아무 잘못 없는 내게도 자동으로 연좌제를 적용하는 느낌이었다. 순수하다기보다, 티끌 하나 없다는 말이 어울리던 시기였다. 내게 앉을 수도 있을 법한 티끌 하나가 날 꽤 힘들게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순간부터 무의식적 연좌제는 희미해졌다. 아마 본격적으로 선행과 공부를 하기 시작한 시기였을 것이다. 입시 학원에 다니면서도 그 안에서 일어나는 별별 사건사고와는 멀었다. 원래 친밀함이 생기기 어려운 성격인지,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몰랐다. 그 시절, 내가 느꼈던 것은 모두 내 피부에 닿는 서릿한 위기감뿐이었다. 그 서릿하던 느낌이 온몸을 훑고 가 점점 내 감각들을 얼렸다. 아주 녹아버리지도 않고, 얼어있는 것도 아닌 채. 남들은 잘 모르겠고, 오직 나의 감각만 생생하도록.
고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을 때, 나의 독단적인 감각은 더 힘을 얻었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지금 내가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내 인생이 나도 모르는 어떤 곳으로 가 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지금 내 목이 따끔거리는 것이 누군가의 광대짓보다 중요했다. 내일 있을 수행평가가 두 사람의 묘한 기류보다 중요했다. 사실 어른들이 입이 닳도록 말하는 '학창 시절의 추억'에 대해 공감하지 못했다. 나의 학창 시절은, 무지한 나와 내 미련한 감각 세포의 끝없는 2인 3각이었기에.
어떤 사람을 만났다. 참 밝고 동그란 사람이다. 성격이 동글동글하니 사람들이 딱 좋아할 것 같다.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다. 그저 나와 별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 전의 사람도, 그 이전에도, 지금도. 지루하지만 내가 편안히 느끼는 관계. 내가 무지해도 별 일이 없고, 내 감각 세포가 미련해 타인에게 상처를 줄 일도 없는 관계. 딱 그 정도만을 바랐다.
생각보다 그 사람과 함께 지내는 것은 즐거웠다. 내 주변에도 밝지 않던 내게 별별 소식들을 전해주었다. 자기 전 10분가량 오늘 있었던 일과 어제 있었던 일, 충격적인 일, 재미있는 일을 말해준다. 어떤 반응이 적당할까 고민하는 사이, 마음이 슬쩍 기울어졌다. 내 감각 세포가 말했다. 더 들어보고 싶지 않아?
참 좋은 사람이었다. 내가 잘할 것이라고 이야기해 준다. 뭐, 나도 그랬다. 가끔씩 모르는 것을 대답해 주고, 과일을 나눠 먹고, 그 사람이 머리를 말리는 것을 기다리며 오늘 말하고 들을 것을 생각한다. 요즘 누가 어떻게 살고 무슨 일이 있는지를 그 사람이 말해준다. 어느새 머리끝까지 푹 빠진 느낌이었다. 나와 미래를 바라보고, 같은 곳을 목표하는 동료가 있다는 것이 꽤 기뻤다. 사실 매우 기뻤다. 가끔씩 말하고 싶었다. 나와 친구가 되어 줘서 고마워.
그 시기, 나는 많이 바빴다. 학교를 떠나 있는 일도 허다했고 할 일도 항상 많았다. 기계적인 일정 속에서도 자기 전 몇 분 가량은 항상, 나의 사람인 부분을 위해 남겨두고 있었다. 내가 스스로 공부하는 기계라고 생각하지 않는 짧은 시간들 중 일부. 그러다 보니 더 깊은 말을 할 기회를 주지 못한 걸까. 아니면 그냥 그 사람이 나를 소중하게 생각해서 그런 걸까.
내가 모르는 일이 있었다. 내 또래 여학생들이, 폐쇄적이고 성비가 잘 안 맞는 곳에서 벌일 수 있는 일이었겠지. 비열한 일이다. 실없는 우월감을 위해 인간성을 버린 사람들 사이에서 그 사람이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모든 일이 끝나고 나서, 언젠가 들은 말이다. 내가 한창 바빴을 때, 학교에 없고 기계적으로 살고 작은 인간성을 남겨두고 싶었을 때. 그 속에서 나는 그 사람의 힘듦을 알지 못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내가 제대로 반응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자세한 것은 알지 못한다. 그저 내가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쳤다는 것만, 제대로 뼈저리게. 아주 강하게 알아차린 것뿐이었다.
무지함이 죄라고 생각했다. 이전부터 계속 생각해 왔지만, 그때는 더 그랬다. 어떻게 내가 아끼는 사람의 힘듦을 모르고, 내가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위치인데도 그랬을까. 그 비열한 사람들은 나한테 맥도 못 추리는데, 성적이 곧 권력이었던 그 구조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 왜. 두렵지도 않은지, 역겹지도 않은지. 자신이 죽도록 싫지는 않은지. 성적에서 오는 그 열등함을 그 방식으로밖에 방출하는 자신들이 역하지 않은지. 그리고 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지, 그 상황은 왜 지금 지나가 버린 건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그 사람이 하는 말을 열심히 듣고, 잘 생각해서 말을 해 줬다. 그 사람은 특이했다. 나중에 커서 뭘 하고 싶은지 열심히 생각했다. 지금이 아니라 미래를 바라보는, 그럼에도 지금에 충실한 그 사람이 참 멋졌다. 이상하게도 그 사람은 내가 멋있다고 말해 주었다. 열심히 노력하고, 목표를 향해 달리는 내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이렇게나 무지하고 부족한 내가.
그렇게 잔잔하게, 우리가 좀 친했던 1년이 끝났다. 나는 대학에 갔고, 그 사람은 학교에 남았다. 그래도 걱정되지는 않았다. 이제 더 단단해진 그 사람이 그곳에 남았을 거니까. 그리고, 내 바람이긴 하지만, 내가 그 사람에게 준 일말의 용기가 아주 조금이라도 함께할 테니까. 이제 그 사람과 다시 이야기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나는, 타인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다.
나는 무지하고, 내 감각 세포는 미련하다.
그래도 지금은, 무언가를 찾으려 고개를 내밀어 본다. 예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천천히 알아간다. 하지만 지금도 늦은 것은 마찬가지다.
그래도 이제는, 늦지 않고 싶다. 내가 늦었더라도 똑바로 바라보고 싶다. 다음에는 잘 맞게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상한 희망이, 그리도 고프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