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Jul 12. 2024

음악소설집 - 우리 삶의 장면 속엔 늘 음악이 있었다

김연수 <수면 위로>와 조성진 연주의 드뷔시 달빛


https://youtu.be/97_VJve7UVc?si=NlUjdxeDxzPQAZPq


조성진 - 드뷔시 달빛 Debussy Clair de lune




“ 은희야, 잠깐만.”

뒤에서 계단을 올라오던 기진이 나를 불렀다. 내가 돌아보며 “ 빨리 가야 해”라고 나지막이 말하자 기진은 검지로 제 입을 가리고는 내 손을 잡아끌었다. 나는 기진의 옆에 나란히 섰다. 우리는 멀리,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들었다. 어두운 밤하늘에 하나둘 별빛이 밝혀지는 듯, 피아노 음들이 하나씩 울렸다.

...

달이 밝아 우리는 집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빛과 어둠, 고요와 소음이 서로 교차하는 여름밤은 그 자체로 완벽한 오케스트라였다.

...



음악소설집에 나오는 김연수 작가의 ‘수면 위로’의 한 장면입니다.

기진과 은희와의 달빛의 날. 지하철과 버스가 끊길 것 같아서 급히 서둘러 공연장을 나오려고 하던 찰나, 기진은 그녀를 돌려세웠고 함께 앙코르곡인 드뷔시의 달빛을 듣게 된 날. 은희와 기진은 그 순간 또 다른 시공간의 달빛으로 향해 갔고, 음과 음들이 유려하고 잔잔하게 이어지는 품으로 안겨 들어갔을 겁니다. 버스를 놓쳐버린 그 길을 달빛과 함께 걸으며 고요와 소란이 공존하는 푸른 여름밤을 아름답게 추억하게 될 그날입니다.  


그리고 이젠 세상에 없는 기진을 떠나보내는 애도의 과정을 힘겹게 걸어가는 은희. 며칠 만에 집에서 겨우 나와 산책을 하다가 세상에 이럴 수도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저희들끼리만 또렷했다는 노랗고 빨갛고 하얀 튤립을 보게 됩니다.


“ 우리는 나란히 서서 바람에 흔들리는 튤립을 바라봤다. 할머니가 떠나고 난 뒤,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드뷔시 ‘ 달빛’을 검색했다. 첫 음과 그다음 음이 이어서 들렸고, 곧이어 유성의 꼬리처럼 다른 일련의 음들이 따라붙었다. 그러자 노천극장의 연주회에서 빠져나와 둘이서 걸어가던, 강변의 쭉 뻗은 길이 떠올랐다. “


은희는 드뷔시의 달빛을 들으며 기진과 사랑했던 한 때를 떠올립니다. 그 음악이 흘렀던 순간들이 고스란히 꺼내어지는 순간이겠죠. 그 순간만큼은 은희에게 위로가 되는 달빛이었기를 바라게 됩니다.

음악이 추억을 사랑하는 순간이자, 음악이 추억을 지배하는 순간입니다. 제게도 바람의 숨결을 전하는 영혼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은 음악인가 봅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음악은 추억을 지배한다’는 블로그 이름을 변함없이 쓰고 있을지도요.  



" 음악은 직접적인 것이라 거기에 언어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반면 언어는 빈틈이 많아 음악이 채워줄 수 있는 여지가 많습니다.

언어로 먼저 접근하고 음악으로 보완하는 게 제게는 더 합당해 보였습니다."


김연수 작가의 말입니다. 그래서일까, 이 '수면 위로'단편소설은 음악이 끌어가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이야기 속에서 음악이 아스라이 빛나다가 아름답게 사라지며 묻어난 채 스쳐 지나갑니다.  

그렇기에 이 조성진연주의 드뷔시 달빛은 더할 나위 없이 합당하게 잘 어울리는 연주라고 생각이 듭니다.








음악소설집에는 그렇게 음악을 소중한 순간으로 맞이하고, 기억하는 조각들의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책제목과 작가이름만 보고 반갑게 고른 이 책을 아직 두 편의 단편만 읽어보았지만 여운을 느끼며 천천히 한 편씩 읽어보려 합니다.


여러분에게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이 있으신가요?

어떤 추억으로 무슨 음악을 가슴으로 기억하시나요?

오늘 밤, 그런 소중한 음악을 꺼내 들으며 가슴속에 달빛이 비치는 아름다운 순간을 만나시기를 바라요.










작가의 이전글 푸른 고요(Blue Serenity) 작업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