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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Jul 09. 2024

푸른 고요(Blue Serenity) 작업 이야기



곡을 쓰고 만들어갔던 과정의 이야기 한 컷을 나누어보려고 합니다.

더불어 피아노 가상악기로 녹음해서 음원을 출시하는 정보를 담은 글을 별도의 시리즈로 발행할 예정입니다.



시작은 스케치로부터

어느 날 녹음했던 이 스케치는 유독 영감이 깊이 오는 스케치였어요. 이미 완성곡에 준하여 주선율의 90%가 담겨 있었습니다. 삶의 고단함이 쓸쓸하게 녹아나 있지만, 일상을 우직하게 꾹꾹 눌러 담고 단단하게 살아가는 존재들에게 고요함 속의 따스한 위안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런 마음에 젖어 당시 스케치를 녹음했습니다.

이 곡은 산책하며 모니터링을 많이 했었는데, 아무도 없는 정적속의 공간보다는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풍경이 훨씬 더 잘 어우러지기도 했습니다.

스케치 녹음 이후 수시로 이 곡을 꺼내어 자유롭게 연주해 보곤 했는데, 계속 마음에 와닿았어요. 언젠간 이것을 완성시켜야겠다는 열망이 점점 커져갔습니다.



스케치를 미디 녹음으로 발전시키기

그렇게 계절이 지나고 첫 녹음은 작년 11월 말에 시작되었습니다. 바쁜 연말을 지나 해가 바뀌고 1월 중순부터 녹음을 본격적으로 하면서 곡을 빌드업시켜 갑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사보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빌드업한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비전공자인 저는 늘 귀에 의존해 작업을 해왔었는데요. 이번엔 피아노 솔로곡인만큼 음을 눈에 보이게 배치하고 이 곡에 맞게 심플하면서도 적확한 음을 쓰고 싶었습니다. 화음을 더 붙이기도 하고 덜어내기도 하고 마디를 추가해서 선율을 조금 바꿔보기도 하면서 계속 만들어 갔습니다. 전업 음악가가 아니기에 시간의 틈을 내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조금씩 만들어 나갔습니다.



악보작업파일과 녹음했던 미디파일들의 흔적





이건 아니란 생각이 들 땐 과감히 멈추기

그렇게 곡을 빌드업시킨 지 3개월째가 되었을 때였어요.  아무리 스스로 모니터링을 많이 하면서 수정해 봐도 곡이 산만하게 느껴졌습니다. 갈수록 산으로 가는 느낌이요. 여러 다른 결의 터치가 중첩된 복잡한 이미지였어요. 결국 제일 중요한 뼈대, 제 연주가 맘에 들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작업을 중지했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음악감상하기

그리고 느린 템포의 피아노 연주곡들을 감상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졌습니다. 같은 곡이어도 템포와 강약을 다르게 해석한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를 비교하며 들었어요. 마르타 아르헤리치, 임윤찬, 호로비츠, 조성진, 마리에 아와디스, 파질 세이, 알렉상드르 타로, 마크 함부르크.. 그리고 라벨 피협 2악장과 쇼팽곡들.. 템포조절과 강약조절이 저의 제일 중요한 화두였습니다.



민아님 귀를 믿으세요!

곡의 보이싱을 수정해 나가는 과정, 곡의 템포와 강약을 보살피는 과정 중에 엔지니어님께서 해 주신 말이었는데 결국은 내 안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 힘겨운 시간들 속에서 많은 격려와 동기가 되었던 고마운 말씀이었습니다.



과학적으로 분석하기

템포표현이 잘 안 돼서 괴로워하고 있으니, 엔지니어님께서 분석방법을 알려 주셨습니다. 템포를 무시하고 친 곡의 템포트랙을 그려주는 기능이 큐베이스의 디텍트 기능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요. 연주가 잘 된 곡의 미디파일을 구해서 큐베이스 안에서 기능으로 돌려주면 템포트랙을 자동으로 그려주는 것인데, 저는 시간상 많이 해 보진 않았고 한 곡을 분석해 보았습니다. 추후 많은 곡들을 이 방법으로 분석해 보려고 합니다. 이번엔 기존 곡들을 감상하며 깨닫는 시간이 제겐 더 유효했던 것 같습니다.



그럼, 전문연주가는 과연 어떻게 칠까?

거기까지 이르다 보니 전문연주가는 제 곡을 어떻게 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4월 초, 김형진 피아니스트를 만났습니다. 악보에 기보 된 템포와 셈여림표를 크게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연주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함께 이야기를 나눠가며 곡의 심상을 나누고 반복해서 저의 곡을 연주해 주었습니다. 그때 숨을 쉬는 프레이즈에 대한 이야기가 제일 인상적이었어요. 아, 그땐 연주를 더욱더 맡기고 싶더라고요.


그렇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해보고 안되면 그때 전문연주자에게 맡기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비전공자의 한계, 나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경계를 세우는 계기가 되었어요. 저는 전문연주자가 아니고 비전공자인 작곡가로서 내가 그려낼 수 있는 표현만 전달된다면  거기서 끝내자고 정리했습니다. 그때 에릭사티의 짐노페디 곡의 템포와 류이치 사카모토의 작곡가로서의 표현을 많이 떠올렸습니다. 과한 템포와 강약의 변화를 줘야 한다는 욕심은 오히려 이 곡의 감상을 해칠 수 있겠다는 깨달음도 얻었습니다. 또 제 역량을 벗어난 영역이라는 인식의 경계가 되기도 했어요.



숨과 호흡을 몸에 싣는 프레이즈

프레이즈에 대한 영상들을 유튜브로 공부했습니다. 하나의 프레이즈에 한 숨으로 연결되는 터치가 같은 결의 감정으로 연결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조성진이 쇼팽 발라드 4번을 연주하면서 곡이 이미 시작되고 있는 채 다가오는 첫음을 치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미 시작된 무형의 음을 손짓으로 가져오는 모습이었습니다.  느낌적인 느낌을 가져올 수 있나? 하면서 따라도 해 봤는데, 물론 저는 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첫음, 첫마디 두 마디 왼손을 칠 때 단순한 음이지만, 그때 듣는 이의 마음을 붙들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인트로 왼손만 수백 번은 쳐본 것 같아요.


유니버설뮤직 클래식 유튜브채널과 뮤라벨 유튜브채널


다시 처음부터, 녹음 재도전!

처음 썼을 때의 마음을 잘 가져와서 메트로놈을 끄고 집중해서 3일간 녹음했습니다. 진심으로 고요한 맘을 유지해야 했던 것이었어요. 그중에서 제가 생각하는 베스트컷 파일 하나를 선택했고 4월 16일에 녹음한 파일이 음원으로 발표된 최종 녹음컷이 되었습니다.


연습을 더 해서 더 좋은 연주가 나왔다기보다는 감정의 결을 하나로 이어가는 프레이즈에 신경 썼습니다. 감상평 중에서 감정과 호흡이 잘 녹아있다는 덧글이 있었는데 그 과정이 전달된 것 같아서 기뻤습니다.



믹싱과 마스터링으로 음악을 완성시키기

이 곡의 사운드 이미지는 처음부터 명확하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객석은 300석 정도 되는 작고 오래된 홀, 하지만 층고가 높아서 울림이 좋은 홀.

어두운 홀에 따스한 노란 조명이 그랜드 피아노를 비추는 모습.

거기에서 연주되는 푸른 고요.

그리고 텅 빈 객석이지만 객석의 뒤편 중앙에서 앉아서 듣고 있는 그 소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가상악기로 녹음했지만 실제 홀에서 녹음한 피아노처럼 풍성하게 들릴 것,

음색은 따뜻할 것, 특히 중~고 음역대에서 너무 까랑거리는 음색을 톤다운 시켜 조정할 것,

소리는 요즘 선호하는 넓고 퍼진 꽉 들어찬 큰 음향이 아니라

중간에서 살짝 뒤로 물러난 채로 깊이 울리는 소리일 것,  


엔지니어님께서 사운드 레퍼런스 곡을 분석플러그인으로 분석하셨는데, (임윤찬의 쇼팽 연습곡 앨범, 마리에 아와디스의 발라드곡) 그것은 좌우로는 좁고, 앞뒤로는 긴 소리였습니다. 여러 시행착오 속에서 소통하며 만들어나간 끝에 제가 그렸던 사운드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요즘 대중들이 선호하는 음향과 정반대에 배치하는 사운드이기도 한데, 다이나믹 차이를 거의 그대로 반영해서 음압경쟁도 어느 정도 포기한 푸른 고요는 이 사운드가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여러 케이스를 비교해서 소리를 찾고 선택할 수 있도록 근 한 달 동안 사운드를 만들어주신 하재현 엔지니어님께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믹싱 마스터링 파일들



영상으로 홍보하기

생각지 않게 갑자기 영상을 찍게 되었는데, 제가 연주를 중간에 포기하고 전문연주자에게 맡겼더라면 이 뮤직비디오도 찍기 어려웠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피아노음악을 사랑하시는 카일 감독님 덕분에 OPUS이야기를 나누며 아티스틱한 영상을 찍고 이렇게 더 많이 홍보할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경험으로 성취한 소중한 순간입니다.


푸른 고요를 디자인하기

앞서 두 번의 앨범커버를 디자인해 준 오랜 벗과 이번에도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곡의 심상을 나누면서 무형에서 유형의 그 무엇을 디자인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면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저의 꽉 막힌 사고를 긍정적으로 열리게 하는 소중한 에너지 그녀에게 늘 빚지고 있어요. 날 견뎌줘서 고마워요.


긴 글을 여기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푸른 고요를 다시 들으신다면 조금은 더 다르게 다가갈지도 모르겠어요. 곡을 공유드리며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


https://youtu.be/FAZWoXz-2zE?si=a52SZdEyH7wMyiVf


최민아(Mina Choi) - 푸른 고요 (Blue Serenity)


[앨범소개]

버티며 존재하는 모든 이들의 일상 속 평온한 고요를 피아노 선율로 푸르게 그렸다.  


특별하지 않은 그저 평범해 보이는 일상도 그냥 누릴 수 있는 것은 없다. 그 속엔 삶의 주름진 굴곡과 고단함을 단단하게 눌러 세운 자의 평안이 유유히 흐른다.


내면의 깊은 곳을 바라보며 빛을 비추는 고요한 정적 속으로 귀 기울여본다. 그 고요 안에는 쉼으로 향하는 잔잔하고 따뜻한 길도, 견딤의 버팀목도, 돌아갈 나의 고향도, 빛을 잃은 그리움도, 슬픔도, 꿈과 사랑도 모두 담겨 있다. 이 모든 것들이 평온하게 머무르는 푸른 고요다.  


[CREDIT]

Produced by 최민아 https://www.instagram.com/minamusic_cloud/

Composed by 최민아

Piano by 최민아

Mixed & Mastered by 하재현 https://www.instagram.com/blitzk21/

Music Video Director Kyle https://www.instagram.com/iamkylekyle/

Music Video D.O.P Jrpro

Cover designed by 이신화 https://www.instagram.com/renef_iswe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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