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내 눈이 퉁퉁 붓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오랜 장마가 끝나고 배수로에 흙이 쌓여 토사를 제거하는 작업을 하다 거미줄에 눈이 스쳤는데, 눈동자가 충혈되었습니다. 밭에서 일하다 보면 종종 거미줄에 얼굴이 스치는 경우가 있는데 거미줄이 얼굴에 감기는 느낌이 좋치 않지요. 그렇다고 별다른 이상 증상이 발생하는 것은 아닌데 그날은 아내의 눈동자가 벌겋게 충혈되었습니다. 장연면에는 약국이 없어 이웃 칠성면 약국에 가서 처방받았습니다. 소염제를 먹었으니 자고 나면 좋아지겠지, 기대했지만 다음 날 아침 퉁퉁 부은 눈을 확인해야 했습니다. 네이버에서 검색해 보았지만, 거미줄에 눈이 충혈되거나 붓는 경우는 없습니다. 거미줄에 포획된 벌레에 감염된 것일까, 막연하게 추측해 봅니다. 이럴 때는 의사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충주에서 제일 크다는 성모 안과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진료 시작 전인데도 병원에는 안과 진료를 받으러 온 사람들로 대기실 안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안과 전문 병원에서 처방받았으니, 금방 좋아지리라고 기대했는데 다음 날도 차도가 없었습니다. 아내의 왼쪽 눈이 퉁퉁 부은 게 얼굴을 난타당한 KO 직전의 복서 같았습니다. 충주 성모 병원에서 서울 성모 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소견서를 써 주었습니다. 아내의 얼굴에 어두운 표정이 깃들기 시작했습니다. 평생 퉁퉁 부은 눈으로 살아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걱정합니다.
“설마 붓기 안 빠지는 건 아니겠죠. 근데 충주에서 제일 큰 성모 병원에서 처방을 못 한다는 게 말이 되요. 특별한 질환인가?”
여기저기 아무리 검색을 해 보아도 거미줄에 스쳐서 눈이 그렇게 부은 경우를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서울 성모 병원에 갔더니 친절한 의사가 부은 부위가 딱딱하면 감염된 것인데 말랑한 것을 보니 알레르기라고 차분하게 설명을 해 줍니다. 강력한 항생제를 처방하면 나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강력한 항생제를 투여해도 좋을지를 테스트하는 검사를 했는데 몹시 아팠다고 합니다. 어쨌든 투여해도 좋다는 진단을 받고 센 약을 처방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약을 먹고 나서 3일 만에 완치되었습니다. 충주 성모 병원에는 항생제 테스트 기계가 없었습니다. 확실히 서울의 큰 병원에 가야 치료가 가능하네요^^
세상에 거미줄 알레르기는 처음 들었습니다. 사람마다 독특한 알레르기에는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 것인가요? 아무튼 그 일을 겪고 나서 나는 마당과 텃밭에 있는 거미줄 제거 작전에 돌입했습니다. 그동안 눈에 띄지 않던 거미줄이 일제히 보이기 시작하네요. 사방이 온통 거미줄 투성이입니다. 막대가 긴 칼퀴로 거미줄을 제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칼퀴를 휘두르는 순간 거미들이 혼비백산 달아나기 시작합니다. 바닥에 떨어진 놈을 박멸하기 위해서 발로 지긋이 밟아 죽이는데 섬찟했습니다. 사실 섬찟한 느낌보다 거미를 죽이는 것에 대한 미안한 생각이 앞섭니다. 대여섯 마리의 거미를 밟아 죽이면서 내가 공연히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은 아닌지, 미물에 대한 홀로코스트를 감행하는 것은 아닌지 떨떠름했습니다.
학살을 멈추고 잠시 거미줄을 바라보았습니다. 코앞에서 바라본 거미는 아름다웠습니다. 노랑과 까망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거미의 모습은 예뻤습니다. 게다가 움직임에 기품이 있습니다. 거미줄에 걸려 꼼작 못하는 벌을 잡아먹는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경외심이 느껴집니다. 나는 그 광경을 본 후 거미를 차마 죽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저 슬며시 거미줄만 아래로 늘어뜨렸습니다. 우리가 지나갈 수 있도록 거미줄만 제거했지요. 땅에 떨어진 거미는 다시 거미줄을 칠 것입니다. 나는 다시 또 그 거미줄을 제거하고요. 그렇게 거미와 공생하려고 했는데 이게 잘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 많은 거미를 보이는 대로 다 죽이는 것도 마음이 불편하고, 거미줄만 스치지 않으면 되므로 그 정도 선에서 거미와 타협을 하려고 합니다. 그런 취지를 설명하고 아내에게 보호안경을 쓰자고 했습니다.
“여보~ 거미를 제거하다 보니 마음이 편치 않더라구요. 거미 자세히 들여다보면 죽이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요. 대충 거미줄만 없앴어요”
바깥 외출을 하고 나서 집에 돌아와 텃밭을 둘러보는데 거미들이 다시 왕성하게 여기저기 거미줄을 쳐놓았습니다. 키 높은 나무에 높이 쳐놓은 거미줄을 바라보면, 방사선의 거미줄 사이로 환한 가을 햇살이 비칩니다.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형상입니다. 나는 그냥 그 모습을 씩 웃으며 말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오늘 밤 내가 카프카의 소설 <변신>처럼 벌레로 변해 거미줄에 포획되는 꿈은 꾸지 않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