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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촌부가 된 최선생 Jul 23. 2023

미선로 교동길에서 37

빗속 라이딩


이게 다 원기 때문이다. 원기가 이탈리아 산악 마라톤에 참가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과 충격을 동시에 먹고 나도 뭐라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여 MTB 자전거를 중고로 구매하여 출근길을 자전거로 달리기 시작했다. 사실 여름 무더위에 라이딩은 여러 가지로 힘들다. 햇볕도 문제지만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며 출근하는 것이 불편하다. 괴산고에는 샤워실이 없다.

오늘도 달렸다. 아내는 오후에 비가 온다고 말렸지만, 원기 때문에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퇴근 길에 비가 제법 쏟아졌다. 나는 비가 오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다. 땡볕 라이딩은 정말이지 끔찍하다. 비가 오니 시원한 느낌마져 들었다. 옷이 젖을 것을 각오했지만, 생각보다 빗방울이 거셌다. 나는 우산을 들고 자전거를 타는 모습을 상상하고 즉각 실행에 옮겼다.

우산을 편 채 자전거에 오르는 난도 높은 기술을 거뜬히 구사하고 우아하게 교정 내리막길을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다. 돌발 사태가 발생했다. 도로 위에 설치한 턱이 생각보다 높았다. 게다가 물기 때문에 미끄러웠다. 나는 보기 좋게 턱에 부딪쳐 넘어졌다. 손잡이가 꺽이면서 내 복부를 강타했고 묵직한 통증이 밀려왔다. 다행히 지켜보는 시선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원기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씨익 미소를 짓고 다시 자전거에 올라타 전 속력으로 그 현장을 빠져나왔다.

복부의 통증이 얼얼했지만 쏟아지는 빗줄기 때문에 아픈 줄도 모르고 힘차게 페달을 밟았다. 먼 산에 구름 꽃이 흘러가는 것이 보였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장관이다. 원기가 달렸던 산보다 멋있을 것이다. 라고 나는 자꾸만 생각했다. 오천 자전거 길 옆으로 괴강이 흐른다. 강물이 흐르고 내 자전거도 비바람에 흘러가는 것 같다. 신비한 체험이었다. 기어를 한껏 올리고 최고 속도로 달리는데 하나도 힘들지 않고 흘러가는 것만 같다.

그렇게 빗속을 아니 몽환 속을 달리다 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라이딩한 것이 꿈을 꾼 것 같았다. 샤워를 하려고 옷을 벗고 거울을 보니 복부에 짓붉은 상처가 선연하다. 상처가 깊은 것 같은데 하나도 아프지 않다. 이게 다 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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