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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맑음 Aug 28. 2023

나는 어떤 딸이었을까

이제서야 생각해 보는

이제야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최근 몇 주 동안 엄마에게서 계속 전화가 왔던 이유를.


엄마에게 이야기를 듣기 몇 주 전, 나는 인턴 준비에 내 모든 시간을 쏟고 있었다. 내 머릿속엔 '인턴', '인턴에 합격해서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스펙을 쌓아야 해'라는 생각, 그러니 이 인턴에 반드시 합격해야 한다는 강박에 한껏 예민해져 있었다. 그렇게 머리를 싸매고 자기소개서를 쓸 때, 그즈음 엄마에게서 계속 연락이 왔었다.


'어, 엄마 왜'

그냥 전화해 봤지. 많이 바빠?

'응 나 자기소개서 써야 해서. 무슨 일 있어?'

아니야. 그냥 전화해 봤어. 바쁘면 끊어~

'응 끊을게'


... 연락 좀 해~

'알았어'


그때 엄마와 내가 나눴던 대화였다.


엄마가 귀찮았다.

뻔히 내가 인턴 준비 하느라 바쁘다는 걸 아는 엄마가 왜 계속 전화가 오는 걸까. 그냥 좀 내버려 두지.

이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알게 됐다.

엄마의 이 전화들은 몸에 이상이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홀로 다시 받은 건강 검진 결과를 기다리는 그 기간에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려 나에게 한 전화들이었다는 걸.


그랬구나.

그랬던 거였구나.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냥 내 생각만 했던 거였구나...


나는 엄마에게 항상 그런 딸이구나...




큰딸인 난 살가운 딸이 아니었다.


사춘기가 막 시작될 때 태어났던 9살 차이가 나는 둘째 동생, 사춘기의 절정에 태어난 13살 차이가 나는 막내동생은 그때의 나에게 너무나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일을 하며 바깥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던 아빠, 그 때문에 일과 육아를 항상 병행해야 했던 엄마. 그 사이에서 나는 모든 걸 알아서 해야 하는 큰딸이자 두 동생을 돌봐야 하는 엄마의 역할을 함께해야 했다.


'나도 엄마 아빠에게 보호받고 싶은 딸인데, 난 동생을 챙기는 사람이 아닌데 왜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지?' 하는 억울함이 나를 가득 채웠다.


그렇게 참 많이 혼란스러웠던, 방황하는 사춘기의 마음의 화살은 오롯이 엄마를 향했다. 그래서 그 길고 긴 사춘기 시절 나는 엄마에게 참 못되게 굴었다.


엄마는 이런 나를 위해, 내 맘을 되돌리기 위해 참 많은 노력을 했다. 학교에 다녀왔다는 말 한마디 없이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리는 딸을 위해 저녁밥을 방 안으로 넣어주며, 정신없이 등굣길에 나선 큰 딸의 방을 닦고 또 닦으면서 내게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그 노력이 무색할 만큼 나는 엄마에게 보란 듯이 더 못되게 굴었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된 나를 휩쓴 방황은 고등학교까지 이어졌고 대학을 다니기 시작하며 서서히 나는 나의 마음과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참 많이 후회했다. 내가 왜 그랬을까, 자책도 많이 했다.

그리고 이젠 그런 딱딱하고 못된 큰 딸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나는 뭘 해야 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시간은 너무 많이 흘러버렸다. 다시 살가운 큰 딸로 돌아가기엔, 그 사이에 스스로가 쌓아버린 엄마와 나 사이의 벽은 너무도 단단했다.


그래서 난 빨리 취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얼른 돈을 벌어 엄마랑 먹고 싶은 것도 먹고, 같이 가고 싶은 데도 가고 함께 정다운 시간을 보내며 그렇게 엄마에게 속죄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취업을 위해서는 스펙을 쌓아야 하니 반드시 이 인턴에 합격해야 한다는 강박이 나를 사로잡은 거였다.


그러나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불안한 엄마에게 인턴 준비를 하느라 바쁘다고 따뜻한 전화 한 통 하지 못했던 나는, 엄마를 위한 일을 한답시고 다시 엄마에게 상처를 주는 일을 했던 거다.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이젠 더 이상 엄마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이젠 그 후회의 고리를 끊고 싶었다.


당장 내가 해야 하는 건 최종합격한 인턴이 아니라 하루빨리 제주도에 내려가 엄마와 가족들의 옆에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에 내려갈 거라는 내 말을 들은 친구들은 합격한 인턴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나는 포기 각서를 쓰게 될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친구들은 힘들게 합격한 인턴의 포기 각서를 쓰는 건 너무 아깝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나는 제주도에 가야 했다.


사춘기 시절 큰딸이 끈질기게 괴롭혔던 엄마를 이제는 옆에서 돌보기 위해.

가족들과 함께 보내야 했던 시절을, 서로 도와야 했던 시절을 이기적으로 흘려보낸 벌을 받기 위해.


그렇게 모든 마음을 내려놓은 나는 자취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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