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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부터 쓰는 사람 Oct 24. 2024

그녀를 기억하는 가을

자연에 대한 감흥이 별로 없는 사람이지만 가을의 청량하고 상쾌한 바람과 온화하고 따스하게 내리쬐는 가을 햇살을 쬐고 있으면 어딘지 모르게 감성적이 되어 드높은 하늘을 벗삼아 걷기에도 도전해보고 뜨거운 여름 본연의 임무를 다하고 쉼과 휴식을 취하려는 나무에게 다가가 한번 쓰다듬고 수고했노라 말도 건네보게 된다.  

 

아름다운 이 계절 가을이 그녀의 죽음 이후로 소멸과 죽음을 떠올리는 애잔하고 슬픈 계절이 되었었다.  

 엄마가 딸처럼 키워 유년 시절을 함께했던 친구 같고 언니 같았던 철부지 막내고모,   

그런 고모의 너무나 빠르고 갑작스러운 죽음은 삶과 죽음의 경계가 이렇게 가깝고 인간 삶이 이토록 허무하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게 해주었다. 

일상은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고 있었지만 내 마음에는 뭔가 큰 구멍이 생긴 것 같았고, 공허함과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던 그해 가을의 나날들... 


 아이의 유치원 하원을 기다리며 멍하게 서 있었던 그 날,

고모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영혼이 있다면 그 영혼은 자신을 느낄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에 빠져있을 때 문득 얼굴을 스치며 지나가는 특유의 청량하고 온화한 가을바람의 감촉을 느꼈다. 그러나 평소와는 너무나 다른 그 바람의 숨결과 감촉. 마치 고모가 바람이 되어 나에게 다가온 것처럼, 그 순간 가슴 깊이 밀려드는 그리움과 함께 고모가 진짜 떠났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파고들었다.  

슬프고 그립고 애잔했던 그 바람, ‘나 여기 있어, 너무 슬퍼하지마.’ 바람이 되어 나를 찾아와 자신의 죽음을 무척이나 애달파하는 조카의 마음을 따스하게 감싸고 위로하는 듯한 그 바람,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 앞에 눈물이 쏟아졌다. 슬프고 아팠지만 위로와 안도를 주었던 그 바람은 비록 다시 볼 수는 없지만 또 다른 무엇이 되어 존재하는 고모를 느끼게 해주었다.  

 

특별한 그 가을 바람을 만난 며칠 후 거짓말처럼 꿈에 고모가 나타났다. 

죽은 고모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는 나를 보며 고모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 편해~ 나 자유로워~” 너무나 그리운 마음에 와락 끌어안고 울기만 하는 나와 달리 고모는 편하고 자유롭다는 말과 함께 정말로 내가 본 가장 편안한 모습으로 그저 웃으며 나를 안아줬다.  

자신의 죽음이 하나도 억울하지도 이생에 미련도 없어 보이는 그 모습과 말들, 너무도 생생해 꿈에서 깬 이후에도 한참을 멍하게 앉아있었다.  

그래, 죽음이라는 것이 살아있는 자에게는 자기 존재의 소멸이라는 사실 앞에 두렵고 무섭고  

끔찍한 것이겠지만 죽은자에게는 해방과 자유함이 되겠구나 싶었다.  

너무나 청명했던 가을 날 홀연히 사라진 고모의 영원한 부재가 너무나 쓰리고 아팠던 그 가을 날, 그저 죽음을 상징하는 것 같았던 떨어지는 낙엽과 바람은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낙엽이 땅으로 돌아가 흙이 되는 것처럼, 그리고 또 다른 무엇의 자양분이 되어 다른 존재로 거듭나는 것처럼 죽은 자도 단순히 소멸하는 것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그 어떤 존재가 되어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따스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은 영혼의 숨결이 되어 온 우주를 자유롭게 통과하며 모든 존재를 넘나들게 하니 그 얼마나 자유할 것인가!.  


 가을 비가 갠 후, 아름다운 이 계절을 온전히 느낄 수 있었던 오늘,  차가운 바람과 따스한 햇볕을 쬐며 떨어지는 낙엽 아래서 고모를 떠올려본다. 쓸쓸하고 그리운 가운데 자연의 그 어디쯤에서 소생하고 있을 그녀의 존재를 느끼며 따뜻한 위로와 안도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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