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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Lee Sep 11. 2023

마녀인가 엄마인가

Winnie the Witch

제 뜻대로 되지 않자 삐진 아들이 침대 끝에 엎드려 엄마 나빠를 외치고 엄마가 제일 싫다고 노래를 한다. 이럴 땐 대꾸하지 않고 잠시 녀석의 화가 공중분해되길 기다리는 게 상책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손을 뻗어 아들 손에 닿아도 뿌리치지 않으면 마음이 누그러진 것이고, 매몰차게 밀어내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이다. 


엎치락뒤치락. 자그마한 몸으로 스스로 부정적 감정을 털어내고자 애쓰는 게 보인다. 그래도 단번에 달려오는 것은 좀 그런지, 조금씩 거리를 좁힌다. 눈치를 채고, 발을 잡아주면 그제사 가만히 있다가 또 뿌리치고 멀어진다. 그러면 또 내버려 둔다. 결국, 침대 위로 굴러 굴러 돌아누운 등에 제 몸을 붙이고 뾰로통하게 한 마디 한다.


"엄마, 쪼금만 좋아."


서천석 선생님은 <그림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에서, 마녀의 원형은 엄마라고 한다. 서양의 마녀 그리고 동야의 귀신 모두 모성의 한 측면을 상징한다고. 분석심리학자 융 또한 <원형과 무의식>에서 지나치게 걱정하는 엄마를 둔 아이들이 보통 꿈에서 엄마를 악한 동물이나 마녀로 본다고 설명한다.


평소엔 이쁘다 사랑한다 안아주고 뽀뽀해 주던 엄마가 화를 낼 때 아이들은 무서움을 느낀다. 아직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는 아이들은, 설령 자신들의 실수로 일어난 일이어도 엄마가 화내는 상황을 모두 다 이해하기는 어렵다. 평정심을 잃고 웃음기 사라진 얼굴을 바라보기가 두렵다. 서천석 선생님은 이런 아이들의 마음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럼에도 아이는 엄마를 사랑한다. (중략) 그래서 엄마를 자기 머릿속에서 둘로 나눈다. 나쁜 엄마와 좋은 엄마로. 그리고 나쁜 엄마에게 이름을 붙인다. '이건 엄마가 아냐. 그냥 마녀야.' 엄마일 때는 받아들이기가 어렵고 생각만 해도 답답했는데, 마녀라 이름 붙이니 까짓것 받아들이기가 훨씬 수월하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은 마녀 이야기를 좋아한다.


<Winnie the Witch> by Korky Paul and Valerie Thomas


Winnie the Witch 시리즈의 여러 이야기 중에서도, 특히 집 안팎이 모두 까만 이야기가 재미있다. 색깔에 대한 자기 주장이 너무나 뚜렷한 마녀 위니. 집의 모든 가구나 가재도구도 까맣고 심지어 기르는 고양이 윌버도 까맣다. 문제는, 사방이 까맣다 보니 윌버를 깔고 앉거나 윌버에 걸려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일이 심심치 않게 발생한다는 것이다.


윌버를 녹색으로 무지개색으로 변신시켜 문제를 해결해 보려 한다. 그러나 새들에게도 놀림받아 우울해진 무지개 고양이 윌버. 녀석은 나무에서 내려 올 생각을 안 하고 슬픈 나날을 보낸다. 마녀인 위니도 단단히 삐져버린 윌버의 마음을 쉽게 돌리지 못한다. 고민 끝에 위니가 내린 결정은?


ABRACADABRA!


고백하건대, <Winnie the Witch> 마녀 캐릭터를 엄마로 해석해 본 적이 없다. 재미있고 유쾌한 마녀 이야기정도로만 읽고 넘겼다. 그래서 '아이들은 고양이 윌버에 감정을 이입하며 자기에게 걸려 넘어지는 엄마를 통쾌해하기도 하고 엄마가 마침내 마음을 바꿔 자기를 인정해 줄 때 한없이 기뻐한다'는 서천석 선생님의 해석에 또 하나의 세상이 확장된 느낌이다. 이래서 배움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나저나, 엉성한 마녀 흉내 내며 책을 읽어주면 좋아하던 아들. 녀석은 마녀 엄마가 골탕 먹는 통쾌함을 느끼고 있었던 게군. 그것도 몰랐던 엉성한 엄마다. 그러면 어떠랴. '본능대로 다가가서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부모라면 아이는 그 속에서 충분히 잘 자랄 수 있다' 지 않는가. 그래서 여전히 엉성한 마녀가 되어 책을 읽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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