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 Lee May 23. 2024

싸움의 품격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동네 야채과일 가게에서 싸움이 났다.


이십대로 보이는 체격 좋은 청년과 호리 한 사십 대 후반의 아주머니 사이에 고성의 욕설이 오갔다.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지 않아 다툼의 원인은 알 수 없었다. 다만, 야채가게 계산대 앞에서 저 정도까지 화가 날 수 있는 일이 무엇이었을까 궁금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못 들은 척 자신들의 일만 했다. 그들의 침묵으로 미루어, 아주머니가 실수한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주인 나오라며 역정 내는 아주머니를 다른 손님이 만류하며 그만하라 하니 생각이 한쪽으로 더 기울었다. 그렇다 한들, 야채가게 감자를 다 삶아 먹은 것보다도 많은 양의 욕을 먹을 정도로 대단한 일이었을지는 잘 모르겠다.


청년의 입에서 나오는 욕설은 딱 세 종류였다. 그러나 짧은 시간, 내뱉는 강도는 세지고 횟수는 증가했다. 불구경하듯 그를 바라보았다. 싸움의 원인보다도, 아주머니가 건드리지 말았어야 할 청년의 감정선은 무엇이었을까, 가 궁금해졌다.


<욕, 그 카타르시스의 미학>의 저자 김열규 교수는 말한다. 욕은 발언되는 것이 아니라 폭발된다고. 좌절, 실망, 실의, 분노, 증오등의 감정을 품은 폭탄. 수많은 뇌과학자, 심리학자, 소통 전문가들이, 화가 났을 때 뇌상태를 설명한다. 90초 심호흡만으로도 감정조절에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덧붙인다. 그러나, 이 순간 저 청년에게 그 이론이 통할 리 없다. 그는 이미 세 가지 욕을 번갈아 폭파시키며 분비된 아드레날린에 도취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힘없는 야채가게 점원에서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강자가 된 듯한 쾌감.


<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의 저자 송상호 목사는 나와 다른 남을 인정하지 못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실패를 경험하면 욕이 튀어나온다고 한다. 뜻대로 되는 거 하나 없는 세상에서, 내 맘 같지 않은 손님들.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 자신의 가장 취약한 부분이 건드려졌다면. 청년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욕밖에 없었을 거란 정당성이 생긴다.


김열규 교수와 송상호 목사가 말한 욕의 긍정적 힘 때문이었을까. 은행 갔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본 청년의 기분은 꽤 좋아 보였다. 너스레도 떨고, 이런저런 혼잣말도 꽤 크게 떠들어댔다.  


나와 아무런 관련 없는 야채가게 싸움은 끝이 났는데, 자꾸 석연찮은 마음이 들었다. 단지, 자신보다 스무 살 이상 차이나는 연장자에게 욕을 했다는 것만이 그 이유는 아니었다.


송상호 목사는 욕에도 수준이 있다고 했다. 남의 신체적 장애나 상처를 의도적으로 건드리거나 상처를 주기 위한 하수의 욕. 할만한 할 상황에서 하는 중수의 욕. 김삿갓이나 마당놀이 마당쇠의 욕처럼 시대의 아픔과 공감대가 형성되는 고수의 욕. 그리고 비뚤어진 세상에 일침을 가하는 최고수의 욕.


모세 율법에 “An eye for an eye and a tooth for a tooth.” 란 말은 당한 대로 복수를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과도함과 통제함을 가르친다고 알고 있다. 예를 들어, 눈을 상했으면 그 정도 선에서 갚아야지 눈을 상한 분노와 성냄으로 목숨까지 취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청년이 쏟아내는 하수의 욕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거침과 힘의 과함이 인간 대 인간으로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령 아주머니가 먼저 실수를 했다 해도 그의 행동이 정당하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라면 이 또한 나의 편파적 시선일까. 그래도 아주머니 옆에 풍채 좋은 남편이나 건장한 아들이 있었다면 다른 풍경이 만들어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지울 수가 없었다.


석연치 않음은 바로 여기에서 기인했던 걸까.


Pick on someone your own size!



 



 




 



매거진의 이전글 분식집이길 바랐건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