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 Lee May 03. 2024

분식집이길 바랐건만

죽어야 사는 경제인가

아들 피아노 학원 가는 길. 휴대폰 가게가 공사중이었다. 그 가게는 아들 학원 옆 건물 1층에 있었다. 나이 지긋한 사장님이 엊그제까지만 해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과연 월세라도 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답이라도 하듯 결국 가게는 문을 닫았다.


휴대폰 가게를 이웃해 2평 남짓한 점포가 하나 더 있었다. 가끔 야채 과일을 저렴하게 파는 상점으로 문을 열곤 했다. 그러나 이곳도 얼마 가지 않아 태권도 홍보 대형 천막으로 가려진 채 침묵하고 말았다.


길 모퉁이에 세워진 건물은, 코너를 싹둑 도려낸 듯 점포 내부는 마치 이등변 삼각형 바닥과 천장으로 연결된 프리즘 같았다. 골조가 드러난 프리즘 점포와 합쳐진 공간은 꽤 널찍해 보였다. 자리를 털고 나간 사장님한테는 미안하지만, (부디, 새로운 곳에서 다시 일어나시길 소망합니다) 어쨌든 낡고 어둑했던 곳에 모처럼 생기가 도는 듯했다. 어떤 업종이 들어오려는 걸까.


초등학교와 고등학교가 바로 옆이고 아파트 대단지가 있으니, 분식집은 어떨까. 학원이 많아 하교 후 아이들과 엄마들의 움직임이 많은 곳인데 비해 간단히 간식을 해결할 수 있는 서민적인 먹거리 공간은 거의 없다. 건널목에 자리한 붕어빵 포장마차가 하나 있긴 했다. 그러나 어묵이라도 하나 먹으려면 줄을 서야 했다. 그래서일까. 손 맛 좋은 사장님의 떡볶이와 김밥 파는 곳이길 내심 바랬건만.


학원 가는 길목이 밝은 노랑으로 바뀐 것과 달리, 길 건너 작은 커피집 사장님 속은 커피콩보다 짙게 타들어가지 않았을까 싶다. 횡단보도만 건너면 바로 맞은편 그 자리에, 자신의 가게보다 두 배는 넓고 게다가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집이 또 들어오다니. 그렇지 않아도 백 미터 안팎에 이미 유명 연예인이 광고하는 커피집이 자리하고 있는데 말이다. (쓰다 보니 몇 발짝 가면 있는 학원 빌딩 1층에도 또 다른 커피체인점이 자리하고 있음이 떠올랐다.)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건강채널에서 커피, 케이크는 물론 심지어 유제품도 건강에 좋지 않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고 있다. (언제는 불가리아 사람들 장수하는 비결이 요구르트 덕분이라더니 ㅠㅠ)


어느 한약사분은 “듣기 좋게 로스팅일 뿐 결국 콩을 태운 게 커피다. 콜라 안 마시면 뭐 하나, 케이크 먹으면 똑같은 것이다” 라 하고. 계란도 삶아 먹어야지 기름에 익혀 먹으면 흡수되지 않는 단백질이 되어 몸에 독이 쌓인다 하니... 대체 이제 무엇을 먹어야 할지 난감할 정도로 혼란스러운 먹거리 정보가 넘쳐난다.


그러나, 믿거나 말거나 이런 건강정보 가득 안고 집 밖을 나가보면 어떤가. 눈만 돌리면 커피와 디저트 가게다. 새로 오픈한 곳에서도 와플, 핫도그를 비롯 여러 디저트가 아이들을 유혹하고 있다. 새로울 것 없는 현실이건만, 새롭게 인지되는 이 현실이 혼란스럽다.


사람들이 커피와 디저트를 열심히 구매해 주어야 이 경제는 살 텐데. 그래야 이동통신 사장님보다 비싼 월세를 낼 새 점포 사장님도, 맞은편에서 맘 졸이고 있을 사장님도 건강을 챙길 수 있을 텐데. 몸속으로 들어간 커피와 디저트는 독이 된다고 하니. 이 몸 바쳐 경제를 살려야 하는 구조인가. 경제에 대한 이해 부족인가.


수요가 한정적인 주거지역에 이렇게 과포화 상태로 문을 여는 커피 체인점들의 미래가 괜찮을지... 그저, 카페인에 약한 나 혼자만의 기우이길 바라야 하나. 분식집이 들어왔다면, 이미 한 집 건너 운영되고 있는 커피집의 생태를 거론했을까. 갑자기 한약사분의 충고와 현실이 충돌을 일으켰을까. 이 또한 스스로에게 먼저 물어봐야겠다.


글을 마무리하려다 문득 영화 한 편이 떠오른다. 우리나라에서는 <흡연, 감사합니다>로 2005년에 개봉한 <Thank You For Smoking>.


담배회사 로비스트의 이야기다. 현재의 일을 즐기는가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영화 마지막도 결국은,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그의 달변으로 재기하게 되니...


CAPTAIN : Do you enjoy your current work, Nick?

NICK: Yes, it's challenging. If you can do Tobacco, you can do anything.  


오픈 기념으로 반값 커피 손에 든 이들이 눈에 많이 띈다. 맞은편 커피집 근황을 물으니, 어제오늘 좀 휑했다고 한다.

부디… 한국시장에서 견뎌낸 자영업자 사장님들은, 어디에서 무얼 해도 거뜬히 해 낼 수 있기를.

'커피가 뭐 어때서'라고 해주는 남편.

내 건강은 알아서 균형 있게 잘 챙기면 된다는 진리.

하늘 아래 새로울 것 없는 한 줄 끼적이며...

금요일 밤을 맞이한다.


photo : 매경 economy

https://m.mk.co.kr/economy/view.php?sc=50000001&year=2022&no=958509









매거진의 이전글 왼손과 마주한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