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생 명제가 곧 정의다. ⟪플라톤 국가⟫ ⟪사람, 장소, 환대⟫
자기 만의 정의를 가지고 있다는 건 참 근사한 일입니다. 자기 만의 정의를 가진 사람은 복잡하고 어지러운 시련 속에서도 자기 만의 답을 찾고, 자신이 선택한 길을 뚜벅뚜벅 올곧게 걸어갑니다. 나아가 자기 만의 정의를 한평생 갈고닦으면 위대한 철학자나 스승, 성인으로 인정받아 수많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기도 합니다.
자기 만의 정의를 가지고 싶다면 ‘탄생 명제’를 찾아보세요. 탄생 명제가 곧 정의입니다.
탄생 명제란 어떤 대상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나 목적을 담은 명제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신호등의 탄생 명제는 ‘운전자와 보행자의 안전하고 원활한 통행을 위한 (초록불에 가고 빨간불에 멈춘다는) 신호 약속’입니다. 따라서 초록불에 가고 빨간불에 멈추는 게 신호등에 담긴 정의입니다. 만약 초록불인데도 가지 않거나 빨간불인데도 멈추지 않으면 안전하고 원활한 통행을 방해하기에 불의가 됩니다.
⟪플라톤 국가⟫에서 소크라테스는 국가의 정의란 자신의 적성에 전념하는 것, 즉 자기 할 일을 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국가의 탄생 명제이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왜 탄생했을까요? 혼자서는 자기에게 필요한 많은 것을 공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각자가 자신의 적성에 전념하면 어떻게 될까요? 농부는 농업에만, 축산업자는 축산업에만, 각자 자기 일에만 전념하면 국가에 필요한 많은 것을 ‘효율적’으로 공급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소크라테스에게 국가 정의란 ‘자신의 적성에 전념하는 것’입니다. 만약 자신의 일에 집중하지 않거나,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일을 하거나, 다른 사람의 일에 참견하면 불의가 됩니다.
책 ⟪사람, 장소, 환대⟫의 저자 김현경 님은 사회의 정의란 ‘절대적 환대’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공동체의 탄생 명제이기 때문입니다.
공동체는 왜 탄생했을까요? 인간은 다른 인간에게 인정받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타인의 인정은 꼭 필요합니다. 들어주는 사람 없이는 말하는 사람이 될 수 없듯이, 다른 사람의 인정 없이 우리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인정을 주고받기 위해, 다시 말해 매일매일 존재하기 위해 공동체를 만들었습니다.
공동체가 시작되려면, 최초의 두 인간 중 한 명이 먼저 상대를 환대해야 합니다. 환대받은 상대가 무시하거나 도망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누군가는 먼저 상대를 조건 없이 환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가 마침내 화답할 때 공동체가 탄생합니다. 따라서 김현경 님은 조건 없는 환대, 즉 ‘절대적 환대’가 공동체의 탄생 명제라고 말합니다. ‘절대적 환대’ 없이는 공동체가 탄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김현경 님에게 사회 정의란 ‘사람을 절대적으로 환대하는 일’입니다. 흑인이어도, 동양인이어도, 여자여도, 경제적 지위가 낮아도, 외국인 노동자여도, 전쟁 난민이어도, 이혼 가정이어도 조건을 따지지 않고 환대하는 사회야말로 정의로운 사회입니다.
탄생 명제가 곧 정의입니다. 다시 말해 탄생 명제를 무엇으로 보는지에 따라 정의는 달라집니다.
플라톤은 국가의 탄생 명제를 ‘자신의 적성에 전념하는 것’으로 보았고, 김현경 님은 사회의 탄생 명제를 ‘절대적 환대’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플라톤과 김현경 님이 생각하는 정의는 서로 다릅니다.
탄생 명제가 곧 정의라면 저는 어떤 정의를 가진 사람일까요? 과거 저를 탄생시킨 명제는 ‘정답을 찾아라.’였습니다. 지금은 아닙니다. 즉 다시 태어났습니다. 현재 저를 탄생시킨 명제는 ‘책의 핵심을 꿰뚫어 고유한 관점을 창조하라.’입니다. 따라서 저의 정의도 바뀌었습니다. 과거에는 ‘뛰어난 사람의 말을 따르는 게 저의 정의’였지만, 지금은 ‘스스로 창조한 관점으로 선택하는 게 저의 정의’입니다.
지금 당신을 있게 한 ‘탄생 명제’는 무엇인가요? 당신은 어떤 정의를 가지고 있나요? 당신은 당신의 정의가 마음에 드나요?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당신의 ‘탄생 명제’를 바꿔보세요. 그 순간 당신은 다시 태어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