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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Dec 22. 2022

한겨울의 낯선 온기

마음의 허기

  제주의 겨울은 아버지 같은 데가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늘 표정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냉랭한 모습으로 나를 대하던 아버지도, 가끔은 내가 잠들어 있을 때 머리와 등허리를 쓰다듬어주곤 했습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은 그 손이 두려워, 나도 모르게 몸을 잔뜩 움츠리곤 했습니다. 하지만 생각보다 따뜻한 아버지의 손에 잠깐 놀랐을 뿐, 조금 후엔 그 손이 영영 떠나버리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차가운 벽을 마주하듯 지내는 내게 미안해서였을까요. 어쨌든 저는 그 낯선 온기에 기대어 잠이 들곤 했습니다.


  바로 어제까지도 찬바람이 몰아치던 한겨울의 그날이 그랬습니다. 출근 첫날이었고, 쏟아지는 낯선 온기에 두터운 파카가 무색하도록 등줄기에 땀이 맺히는 날이었습니다. 당시 제 방에는 거울이 없었습니다. 대신 고장 난 검은색 텔레비전이 한 대 있었습니다. 저는 그 앞에 서서 감은 머리를 손질했습니다. 기분이 묘했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나를 드러내지 않는 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래로 향한 콧날과 약간 찢어진 눈, 앞으로 튀어나온 턱, 기껏해야 손톱만큼만 자랐다가 빠져버리는 머리카락. 이 모든 걸 대할 때마다 거울 앞에선 똑바로 마주 본 적 없던 제 얼굴을, 검은 브라운관 앞에서는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어졌습니다. 사실 꽤나 괜찮아 보이기도 했습니다.     


  출근시간보다 조금 일찍, 저는 기숙사 방을 나서서 요양원 본관으로 이어진 산책로를 걸었습니다. 정원을 끼고 여기저기 길이 난 산책로 한쪽에는 담장을 따라 귤나무 몇 그루가 심겨 있었습니다. 잔디를 가로질러 다가가 보니 주먹 두 개만 한 귤이 대여섯 개씩 달려 있었습니다. 처음 보는 귤나무가 신기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크기만 크고, 여드름이 잔뜩 난 사춘기 소년의 얼굴처럼 껍질이 울퉁불퉁한 게 썩 맛있어 보이진 않았어요. 저는 다시 발길을 옮겨 정원 가운데에 있는 정자로 향했습니다.

  이른 아침의 햇볕이 정자 지붕 위에 누워있었고 그 아래 바닥 한쪽에도 살그머니 다가와 자리를 덥히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자리에 앉아 기둥에 몸을 기댔습니다. 추위에 굳었던 몸과 속이 훤히 벗어진 머리에 닿는 햇볕이, 아버지의 그 뜨거운 손길처럼 느껴졌습니다. 한겨울에 찾아온 낯선 온기에 기대, 저는 그대로 잠이 들고 싶었습니다.     


  원내로 바람을 들이는 일은 늘 당신의 일이었습니다. 그날 아침에도 당신은 창문을 모두 열고 복도에 놓인 소파 중 하나에 앉아있었습니다. 오래된 요양원 건물의 외벽이 그랬듯이, 가뭄이 심한 밭처럼 곳곳이 갈라지고 뜯겨 나간 갈색 비닐 소파였습니다. 가무칙칙한 바탕에 붉은 장미와 노릇한 겨자 꽃이 어지럽게 수놓아진 누빔 조끼를 입고 앉아, 한동안 제가 바라보고 있는 걸 알지 못하는 듯했습니다. 근무 첫날이라서 그랬을까요. 저는 당신의 관심을 끌고 싶어 어설픈 제주어로 물었습니다.     


  "어르신.. 조반 맛있게 드셥데가?"     


  당신은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한쪽 호주머니에서 휴지 뭉치를 꺼내 조심스레 한 칸을 떼어내더니, 캭캭거리며 누런 가래를 뱉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곤 가래가 뭉개지지 않게 조심스레 휴지를 접어 다른 쪽 호주머니에 찔러 넣었습니다. 당신은 그걸로 자기 할 말은 다 했다는 듯, 소파 깊숙이 몸을 묻었습니다. 등받이에 기댄다는 게 심하게 굽은 등 때문에 몸을 찔러 넣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곤 눈을 감은 채로 바닥에 닿지 않는 두 발을 엇갈리게 흔들며 말했습니다.

     

  "미... 미치게 생긴 것들!"    


  쏘아대는 당신의 말에 저는 놀라 자리를 피했습니다. 동네 형에게 용돈을 뺏긴 아이처럼, 저는 씩씩대며 벽 뒤에 숨어버렸습니다. 당신의 이름도 알지 못했던 그때, 첫 만남부터 욕을 먹은 게 억울해서라도 그 이유를 알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고개만 내민 채 당신을 몰래 지켜봤습니다.

  맞은편 창문으로 들어온 햇볕 한 조각이 당신의 우뚝 솟은 배 위에 누워있었습니다. 뭉툭한 바람 한 마디가 거칠게 뻗은 흰 머리칼 사이로 지나갈 때는 잠깐 미소를 지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털털거리는 경운기의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을 때, 당신은 인상을 쭈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얼굴의 모든 주름이 더욱 선명하게 구겨지는 게 무척 힘에 겨워 보였습니다. 마치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깥의 공기를 온 힘을 다해 빨아들이는 것처럼. 조금 더, 조금만 더. 그렇게 비워져 가는 자신의 어떤 공간을 채우려는 듯 보였습니다. 그랬다면 그건 마음의 허기를 채우는 과정이었을 겁니다.     


  당신은 복도를 걸으며 벽에 난 창문을 하나씩 열기 시작했습니다. 원으로 이어진 복도의 안쪽은 바닥부터 천장까지 두꺼운 유리로 돼있었습니다. 당신은 잠깐 걸음을 멈추고 유리벽 가까이에 얼굴을 비춰봤습니다. 그 모습이 제 눈에도 보였습니다. 유리벽 곳곳을 살피는 동안, 이마에는 끊임이 없는 굵은 주름 세 가닥이 깊게 패었고, 겨우 자국만 남은 문신 위로는 흰 눈썹 몇 가닥이 솟아 있었습니다. 부리한 눈과 흔적만 남은 듯이 낮은 코에 비해 도드라진 콧방울이 비쳤고, 다문 입술 끝에는 힘없이 내려간 입 꼬리가 처지는 볼살을 끌어올리며 씰룩거리고 있었습니다. 백발이 뒤덮은 머리를 두 차례 쓸어 넘기는 핏기 없는 손은 당신의 얼굴을 가릴 만큼 크면서도, 부어오른 손가락 관절 때문인지 유난히 가늘어 보였습니다.


  복도를 반쯤 돌다 멈춘 목욕실에는 번호가 달린 자물쇠 통이 걸려 있었습니다. 당신은 자물쇠를 몇 차례 아래로 잡아당겨봤지만, 딸까당거리며 자물쇠 통과 문고리가 힘을 겨루는 소리만 났습니다. 당신은 번호 자물쇠를 여는 법을 모르는 듯했습니다. 어쩌면 잊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무언갈 잊어버렸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도요. 쌀독에 부어지는 낱알들처럼, 그래도 전에는 뭔가가 빠져나간다는 걸 느끼는 때가 있었겠죠. 그러다 당신의 가슴속 무언가가 걷잡을 수 없이 빠져나가고 있음을 알아차렸을 때, 번호 자물쇠를 여는 법도 함께 잊어버렸을지도요.     


  "미치게 생긴 것들... 쯧쯧"     

  당신은 혀를 차며 문을 몇 차례 두드렸습니다.

  쿵, 쿵. 그 모습을 보던 저도 가슴을 두드려 보았습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다 됐을 때쯤, 요양원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당신이 사라진 겁니다. 어디로 갔을까. 저는 당신이 정문을 나가지 않았기만을 바랐습니다. 바깥은 당신에게 위험했으니깐요. 요양원 주위는 인적이 드문 곳이었습니다. 사람이 사는 집은커녕 구멍가게도 차로 10분은 달려야 나오는 외진 곳이었습니다. 직원들 모두가 빈 생활실과 목욕실, 물품창고 등 직원이 상주하지 않는 곳을 중심으로 뒤지기 시작했습니다. 밖으로 나가는 문은 건물 양쪽 계단을 포함해 앞문까지 세 곳이었습니다. 모두 번호와 #버튼을 눌러야 열리는 도어록이 설치되어 있었고 계단 쪽 문은 아예 건전지를 빼놓은 상태라 열쇠가 있어야 나갈 수 있었습니다.

  철통보안까진 아니었지만 직원 누구도 번호 자물쇠를 여는 법도 모르는 당신이 앞문으로 나가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문을 연다고 해도 바로 옆엔 사무실이 있었습니다. 도어록이 열리며 나는 소리에 이어, 걸음이 느린 구십 연세의 할머니가 지나가는 걸 아무도 모르기란 쉽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문득 생각나는 게 있던 저는 앞문으로 나와 아침에 걸었던 산책로를 따라 정원을 살폈습니다.


  당신은 정원의 정자에 앉아있었습니다. 분홍색 수면 양말을 정자 위에 가지런히 개어놓고 흙이 묻은 맨발을 엇갈려 흔들어대며 낯선 온기가 가득한 겨울의 오후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정문을 몇 걸음 앞두고도 당신은 눈을 감은 채 여유로워 보였습니다. 탈출이 아니었습니다. 어디 다친 데는 없냐고 묻는 제 말에도 당신은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지금 상황이 재밌다는 듯 킥킥거리며 웃기만 했습니다. 문득 당신이 참 부러웠습니다. 그 많은 직원들을 속이고도 모든 순간이 제 것인 듯 양 즐기고 있는 당신이요. 검은 브라운관의 흐릿한 윤곽을 제 모습인양 만족했던 저보다 훨씬 행복해 보였습니다. 질투였던 걸까요. 저는 그 웃음이 너무 갖고 싶었습니다.     


  퇴근하기 전, 직원 한 명이 생활실로 들어가는 게 보였습니다. 미닫이 문이 스르륵 열리면서 문지방에 달린 나무 팻말이 흔들거렸습니다. 팻말에는 '보시'라고 음각이 새겨있었습니다. 당신이 주무시는 방이었습니다. '남에게 재물이나 불법을 베푼다'는 뜻의 그 이름이 순간 제 가슴을 움켜쥐었습니다. '미치게 생긴 것들'이라 말하는 당신에게도 '보시'와 같은 마음이 남아있겠죠. 단지 표현이 힘들 뿐일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끔찍한 질병이, 당신의 기억은 빼앗을 수 있어도 그 영혼은 그대로란 걸 믿기 시작했으니까요.


  방 안에서 어스름한 취침등 빛이 새어 나왔습니다. 저는 열린 문 밖에서 당신을 찾았습니다. 내복만 입은 당신은 코까지 골며 잠에 들어있었습니다. 아주 편한 표정이었습니다. 작은 창문으로 드는 조각들이 아닌, 날 것 그대로의 온기와 바람이 마음에 가득했던 허기를 달래 줬을 겁니다. 어쩌면 꿈속에서도 정자에 앉아 흙 묻은 발을 흔들고 계셨는지 모르겠어요.   


  저에게 겨울은, 아버지의 뜨거운 손길이 그리워지는 계절입니다. 오늘처럼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겨울에는 당신을 따라 해봅니다. 곧 올 봄을 기다리며, 한겨울의 낯선 온기를 온몸으로 반기던 당신처럼요. 마당 벤치에 앉아 책을 넘기다, 문득 당신이 생각났습니다.

  젊은 것이 남의 똥기저귀나 간다며 타박하다가도 좋아하는 된장 한 숟가락을 가져오면 '성님 먼저 드십서'라고 저를 착각하던 눈빛, 밤이면 된장독 훔쳐간 놈 잡는다고 나를 한 숨도 못 자게 하던 헐떡이는 목소리, 킥킥거리며 어린아이처럼 허공에 젓던 발놀림까지.      

  이젠 누군가의 간호도, 번호 자물쇠도 필요 없겠죠. 바람에 날리는 꽃가루처럼 온 세상을 다니며 꽃 피울 수 있을 테니까요. 마당으로 참새가 포르릉거리며 몰려와 재잘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아침이 오면 저렇게, 게으른 저를 깨워주는 고마운 이들이에요. 슬슬 출근할 시간이 다 되어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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