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체계 획득의 fast track
민간의 빠른 기술변화를 군에 적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신속시범사업"이라는 것이 있다. 겉으로 봤을 때나, 홍보하는 인터넷 글들을 보면 획기적으로 무기체계 획득을 단축할 수 있는 사업처럼 보인다. 그 때문에 방산육성의 현장에서도 미래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에게 자주 추천하고 있는 사업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신속시범사업이 과연 군에 신속 적용이 될까? 의문이 드는 부분이 몇 가지 있다.
신속시범사업은 신속할까
신속시범사업은 신속획득시범사업으로 시작했다. 최초에는 완성된 시제를 구매해서 군에 바로 "시범"하는 사업이었다. 그러다가 신속획득시범사업과 시제개발 기간을 부여하는 신속연구개발사업을 동시에 진행했고, 현재는 신속연구개발사업 형태로만 진행하고 있다. 명칭은 신속시범사업이며 연구기간 2년, 전담기관은 국과연의 신속원이다. 다시 말해 현재 신속시범사업은 "최소 2년의 연구기간을 가지고 있는 사업"이라는 말이다. 이 점이 신속이란 단어를 무색하게 만든다.
우선 신속시범사업은 "소요가 없는 무기체계"를 대상으로 한다. 기획부터 공모, 업체선정까지 1년이 소요되고 연구개발 2년 해서 그냥 3년이 지난다. 이제 군에서 시범사용 및 결과도출까지 1년, 이제부터 합참의 소요에 반영되어야 하는데, "긴급소요"로 반영할 수 있다. 합참에서 긴급소요로 곧바로 결정했다고 해도 소요검증(총 사업비 3,000억 원 이상인 경우)까지 1년, 이후 선행연구는 생략, 사업타당성조사는 총사업비가 500억 원이 넘어야 실시한다. 만약 사업타당성조사를 실시한다고 하면 1년, 이후 중기계획 반영부터 구매까지 또 2년은 걸릴 것이다. 바로 구매가 아닌 추가 연구개발로 획득한다면 2년이 더 소요된다.(이 경우에는 긴급소요로 반영할 수 없다. 왜냐하면 긴급소요는 중기계획 이후 2년 이내 획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두 합하면, 최초 선정 때부터 양산(전력화) 되는 데까지 7~10년은 족히 걸린다.(만약 합참 소요결정단계에서 늦어지면 10년 이상이 걸린다. 이처럼 늦어지는 원인은 획득절차상 "결정된 소요"가 아닌 부분이 크며, 선행연구와 시험평가 정도만 단축될 수 있을 뿐, 전 과정을 동일하게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최초 시범 때부터 7년 이상 흘러버렸는데 민간의 "신기술을 신속하게 획득했다."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렇게 오래 걸리는 사업을 중소기업에 추천하는 게 과연 맞을까? 마지막으로 양산(전력화)은 방산업체에서 할 텐데, 정작 연구개발과 시범을 주관했던 일반 중소기업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이런 점들을 고려해서 보면, 신속시범사업은 중소벤처기업이 하기보다는 방산업체에서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신속획득의 장애물
무기는 군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이 말은 군에서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면, 연구개발로 만들어 놓은 것들이 모두 무의미해진다는 말이기도 하다.(민수에 무기를 팔 수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국방부와 방사청은 별개의 기관이다. 이 때문에 방사청에서 신속시범을 통해 무기 성능을 입증했다고 해도, 군에서 사용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가 된다. 별개의 기관으로 방사청에서 "우리가 개발한 이 무기를 사용해."라고 강제할 수 없다. 더군다나 국방부나 방사청이나 담당자들이 2년 주기로 바뀐다.(이게 한편으로 참 문제인데, 보직변경만 기다리면서 "똥"만 싸질러놓고 가버리는 경우가 있다.) 지속성을 가지고 사업을 공조하여 추진할 수 없는 구조다. 이러한 구조상의 문제는 민간의 신기술을 군에 적용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민수의 기술을 신속하게 획득하기 위해서는 절차의 간소화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인데, 지금의 획득구조에서 얼마나 단축할 수 있을지 어려운 문제다. 예를 들어, 사전개념연구(국과연), 소요검증(국방연), 사업타당성조사(국방연)는 모두 다른 기관에서 하다 보니, 신청기간이 따로 있어서 제때에 신청하지 못하면 기간이 또 늘어날 수 있다. 이처럼 무기체계 획득절차에는 수많은 부서와 기관들이 연결되어 있어 유기적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그만큼 기간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유기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실무자들의 호흡이 중요한데, 보직 순환주기 때문에 실무자들의 호흡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다. 항상 청렴과 투명성을 강조하다 보면, 행정소요가 증가하고 절차가 복잡해지고 늦어진다. 반대로 빠르게 추진하자면 항상 부정부패가 끼어든다. 이 두 요소를 적정선에서 통합하는 게 참 어려운 부분이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소요군의 요구성능(ROC)이 없다. 이렇게 되면 시범적용 이후, 다시 소요제기와 소요결정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것을 장담할 수 없다. 소요결정단계에서 이미 예전에 제기된 수많은 소요들이 중기계획 반영에 줄 서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요결정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황이 신속획득을 가로막고 있다. 물론, 합참의 소요결정이 이루어졌다 해도 넘어야 할 산은 또 있다. 국방연구원(국방연)이다. 소요검증이나 사업타당성조사를 통과해야 중기계획에 반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결정된 소요가 아니기 때문에 신속하지 못할 태생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렇게 저렇게 따져보면, 중소벤처기업 육성을 위해 무기체계 분야의 사업을 추천할 만한 게 없다.(물론,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획득절차가 복잡하고 기간이 오래 걸리는 부분도 있고, 일반업체에서는 방산물자를 양산할 수 없거니와 각 무기체계에는 제조사(체계기업)들이 버티고 있다. 남은 사업은 국산화와 전력지원체계사업 정도이다. 국산화를 통해 관급품(중앙조달)으로 납품하는 방법, 이미 기업에서 "상용화된 제품"을 군에 적용해 보는 사업이 현재 중소벤처기업에게는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다.